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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보로 Apr 01. 2021

《카모메 식당》으로 엿보는 로컬창업

뭐든지 보고,書

일본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이 2006년에 만든 영화, 《카모메 식당》. 개봉한 지 벌써 15년이 다 되어가지만 여전히 대중에게 사랑받고 있는 작품이다. 이른바 슬로우무비의 대표격인 《카모메 식당》은 핀란드를 무대로 벌어지는 일본 여성(들)의 이야기다.


음식을 만들어 남에게 대접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치에(코바야시 사토시 분)는 핀란드로 건너가 식당을 차린다. 주먹밥을 전문으로 하는 동네 작은 식당이다. 주먹밥은 일본인에겐 소울 푸드지만 핀란드 사람에겐 낯선 음식이다. 특히 주먹밥을 싸고 있는 김이 시커먼 종이처럼 보이는지 핀란드 사람을 당혹스럽게 한다. 따라서 사치에의 식당을 찾는 손님은 없다. 그저 일본 덕후(?) 청년 토미가 찾아와 커피만 마시고 간다. 그러던 중, 눈물 많고 외로움을 많이 타는 미도리(카타기리 하이리 분)와 노부모를 모시느라 수고 많았던 마사코(모타이 마사코 분) 그리고 집 나간 남편 때문에 우울한 나날을 보내는 핀란드 여성이 차례로 식당을 찾아오면서 카모메 식당은 치유의 공간으로 거듭나게 된다.


얼핏 보면 이민자의 창업 분투기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 영화는 외로운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만나 친구가 되고, 음식을 통해 서로 위로받으며 성장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최근 저 멀리 타국까지는 아니지만 탈도시를 선언하고 지역으로 이주해 카페나 빵집 또는 식당을 차리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이들은 도시의 비싼 임대료를 피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경쟁에 매몰되고 속도에 치이는 삶으로부터 여유를 찾고자 하는 마음이 더 크다. 실제로 도시에서 요식업을 하면 쉴 수 있는 날이 거의 없다. 자신만의 일을 어렵게 만들었지만 정작 자신을 위해 쓸 시간이 사라지는 아이러니. 그래서인지 도시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창업한 로컬 상점은 휴일을 반드시 지키는 경향이 있다. 왜 모처럼 제주까지 가서 소문난 카페를 찾아갔더니 쉬는 날이었던 경험 다들 있지 않나?


영화《카모메 식당》스틸컷. 출처 : 다음영화


나의 지인 중에도 직장을 그만두고 커피 로스팅을 배운 후, 카모메 식당의 사치에처럼 조용한 마을을 찾아가 작은 로스터리 카페를 차린 사람이 있다. 덕분에 가족 여행을 핑계로 가끔 찾아가곤 하는데, 갈 때마다 보여주는 주인장의 얼굴은 평온함 그 자체라 만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예전에 얼굴에서 드러났던 인생의 피곤함은 어느새 눈 녹듯 사라진 것이다. 매출은 도시에서 장사할 때보다 줄었지만 꼬박꼬박 지출해야 하는 고정비가 획기적으로 줄었기에 수익에는 큰 차이가 없다. 무엇보다 남들처럼 주5일을 일하면서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 만족해했다. 맞다. 사람은 휴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로컬로 이주한 가게들이 모두 성공하는 건 아니다. 《카모메 식당》이 자리 잡기까지는 중요한 두 가지 요인이 있었다. 첫째는 동료가 있다는 점. 영화처럼 동료는 반드시 동업자일 필요는 없다. 다만 자신이 추구하는 사업의 철학을 이해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이면 된다. 또 하나는 지역 커뮤니티와의 융화다. 왜 이렇게 맛있는 주먹밥을 안 먹지? 라는 생각보다는 지역 원주민이 좋아하는 시나몬 롤을 구운 것이다. 결국 시나몬 롤로 맺어진 한 핀란드 여성의 적극적 지지로 카모메 식당은 번성하게 된다.


일본 시골빵집 타루마리도 도쿄를 떠나 지역의 산골 마을에 빵집을 차린 경우다. 누가 이런 시골까지 와서 빵을 먹지? 라고 생각할 정도로 오지에 자리 잡았다. 하지만 많은 사람의 예상과 달리 타루마리는 성업 중이다. 이들이 지역에 뿌리내릴 수 있었던 이유는 지역 커뮤니티 융화와 마을경제 순환을 경영 철학으로 내세운 데 있다. 빵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모든 재료를 마을 농가에서 구입했다. 또한 지역 학교 학생을 위해 제빵 기술을 가르치거나 마을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마을 커뮤니티의 지지를 얻었다. 아울러 빵집이 전국에 소문이 나면서 마을을 찾는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게 되었고 타루마리를 좇아 새로운 청년 이주자들이 하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일본에서도 지방소멸 지수가 가장 높은 돗토리 현에 속한 곳이지만 타루마리가 있는 마을은 생기가 돈다.


이처럼 카모메 식당과 타루마리 빵집에서 알 수 있듯이 로컬 창업은 시간을 견뎌야 한다. 그리고 그 시간이란 로컬 커뮤니티를 받아들이는 태도이기도 하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필요한데 도시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는 성찰의 시간은 사치가 되어버린다. 시간이 돈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매출과 비용으로 정리되는 세계에선 마음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하지만 장사에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 이는 다른 말로 ‘얼굴 있는 거래’라고 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거래는 지역의 신뢰 자산이 된다. 이것이 바로 혁신이기도 하다. 카모메 식당을 비롯한 지역의 모든 독립 상점 주인들에게 행운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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