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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보로 Mar 30. 2021

로컬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뭐든지 보고,書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됐다. 팬데믹 1년 만에 백신이 개발되어 접종까지 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인류 재난에 온 인류가 힘을 모은 것이리라. 그러나 백신이 개발됐다고 하루아침에 코로나19가 종식되는 건 아니다. 알려졌듯이 집단 면역이 생기기까지 코로나19 감염 및 확산에 계속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문제는 코로나19로 경제적 타격을 받은 계층이다. 물론 오늘날과 같은 초연결 사회 속에서 피해를 받지 않은 사람이 없겠지만 특히 경제적·사회적 약자에게 코로나19는 재앙처럼 다가와 일상의 삶을 파괴했다. 더 큰 문제는 이들에게 아무리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고 피해업종 자영업자 및 소상공인에게 지원을 하더라도 일상을 되찾기는 어려워 보인다는 점이다. 더구나 언택트 문화가 뉴노멀로 자리하면서 코로나19 이후의 사회 모습은 과거 코로나19 이전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일 것이라고 각계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한편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면서 로컬의 재발견이 이뤄지고 있다. 도시 집중화가 초래하는 여러 사회 문제, 예컨대 일자리나 주거 문제의 해법을 로컬에서 찾으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굳이 로컬로 이주를 하지 않더라도 원격근무의 보편화로 로컬에 대한 관심은 증가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러한 라이프스타일을 일컬어 ‘다거점거주’라고 한다. 사회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는 방증이다.


2011년 3·11 동일본대지진을 목도한 일본 젊은 세대는 한번 사는 삶, 경쟁에 치이다가 삶을 낭비하지 말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자며 로컬로 향하기 시작했다. 이들 그룹의 특징은 언제든 떠날 수 있도록 살림을 다이어트 한다는 점이다. 이른바 미니멀리즘 라이프스타일이다. 처음에는 일자리를 찾아 대도시에서 살던 사람들이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기 시작했고 로컬에 연고가 없는 사람들이 뒤를 따랐다. 그런데 코로나19 위기는 일본인에게 또 한 번 일본 로컬을 조명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지금은 일과 휴식을 합성한 워케이션(work+vacation)이란 말이 일상화할 정도로 굳이 로컬로 이주하지 않더라도 로컬의 삶에 발을 걸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사람들을 겨냥해 일본 전국의 빈집을 중개하거나 아니면 여기서 더 나아가 전국의 로컬을 옮겨 다니며 살아갈 수 있게끔 집을 제공하는 소셜벤처도 생겨났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흐름 속에는 로컬 커뮤니티의 환대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도시의 팍팍한 경쟁에서 밀려났건 자발적으로 도시를 떠났건 이들을 로컬에서 환대하지 않는다면 로컬이 이처럼 재조명 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로컬 커뮤니티와 이주자 커뮤니티가 공생하기 위해 서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과정이 있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인류학자 김현경은 《사람, 장소, 환대》에서 우리는 환대에 의해 사회 안에 들어가면서 비로소 사람이 된다고 말한다. 여기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리(장소)를 갖는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환대는 자리(장소)를 주는 행위라고 강조한다.


신자유주의 시스템이 가혹하게 작동하는 도시는 자본이 없는 자에게 결코 환대의 장소가 아니다. 돈이 없으면 사회의 구성원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는 구조. 즉 자신의 장소마저 박탈당하는 장소상실에 이르기까지 한다. 책에 따르면 장소상실은 자신이 머무르고 싶은 곳, 점유하고 싶은 위치를 발견할 수 없는 상태이다. 인간에게 ‘장소’란 시간의 나이테가 켜켜이 쌓이면서 의미가 생긴 ‘공간’을 말한다. 로컬로 향한 청년 그룹이 제일 먼저 자신들만의 거점(장소)을 확보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들은 지역 커뮤니티의 환대로 거점을 만들면서 인간답게 살아갈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을 로컬에 대입해보면, 로컬로 향하는 일은 단순히 로컬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확보한다는 개념을 넘어 각자도생하는 도시의 법칙에서 벗어나 로컬 공동체를 구축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러한 공동체야 말로 재난과 재앙에서 서로를 지켜줄 최후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모욕과 굴욕을 감내해야 하는 도시의 약탈적 시스템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존엄성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정리하자면 《사람, 장소, 환대》는 로컬크리에이터든 지역혁신가든 로컬로 내려가 삶을 재구성하려면 사람과 장소 그리고 환대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해주는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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