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보로 Mar 25. 2021

당신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로컬단상

일본의 현대 철학자이자 저술가인 우치다 타츠루는 《로컬리즘 선언》이란 책에서 글로벌 자본주의의 종언을 말하며 그 이유를 들었다. 우선 자본주의는 인구 증가와 생산기술의 진화 그리고 경제성장이란 세 가지 전제 조건이 있어야 성립하는데 이미 일본은 인구 증가와 경제성장이라는 두 가지 조건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뿐 아니라 선진국이라면 어디든 경제성장률은 높아야 2%, 대개는 0~1%대를 유지하는 ‘멈춤 경제’ 상태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 시스템은 앞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경제 성장 신화를 경험한 일본과 한국의 기성세대는 아직도 ‘성장’에 초점을 맞추어 정책을 펼치려고만 한다. 과거 고도경제성장 시대에는 성장에 따른 낙수효과가 분명 있긴 했다. 그러나 IMF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시스템이 자리잡자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생산기술의 진화로 일자리는 축소됐으며 남은 일자리마저 계약직, 파견용역 등의 형식으로 불안정 고용이 확대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쟁은 더욱 심화해 심각한 격차 사회의 모습을 낳고 있다. 국가의 GDP 증가는 이제 개인의 사정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 돼버린 지 오래다.


이러한 무한 경쟁 시스템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인생을 찾고자 하는 부류가 늘어나는 현상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른바 로컬을 향하는 사람들은 비단 청년뿐이 아니다. 왜 로컬이 이들에게 발견됐을까? 가장 큰 이유는 탈물질주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이들에게는 성공보다는 성취가, 경쟁보다는 연대가 더욱 친근한 가치로 여겨진다. 로컬에서도 살아가기 위해 일을 해야 하지만 로컬은 누굴 밟고 올라서 살아남는 승자독식의 세상이 아니다.


다만, 흔히 말하는 로컬크리에이터란 멋진 조어 탓인지 자칫 로컬크리에이터만 되면 나도 힙하게 성공할 수 있겠구나! 란 생각을 하기 쉽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로컬 현장은 그런 곳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우치다 타츠루는 도시를 떠나 로컬로 가려면 일단 자본주의 상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탈도시는 탈시장, 탈화폐 경제로의 전환과 성장 모델에서 멈춤 모델로의 전환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삶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지방 소멸 위기를 막기 위해 정부는 도시의 청년들이 혁신적인 아이디어나 기술로 지역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창업을 지원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로컬 벤처가 성공하지는 못한다. 특히 전대미문의 코로나19 펜데믹을 겪으면서 지역의 로컬크리에이터는 물론 커뮤니티 중심의 대면 비즈니스에 의존했던 로컬 벤처는 큰 타격을 입고 힘든 시절을 버티고 있다. 그래도 이들이 버틸 수 있는 건 지역 커뮤니티의 힘이 아닐까 싶다. 고향으로 돌아온 청년들이 지역을 위해 무엇이든 해보겠다는데 누가 말리겠는가.


따라서 힘들다고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아이템에 현혹되거나 지역 활성화와는 거리가 먼 사업 아이템을 만지작거리기 보다는 이럴 때일수록 지역에 더욱 눈을 돌리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내가 서있는 이곳 지역의 자원과 콘텐츠가 무엇인지를 찾아내야 한다. “여기는 아무것도 없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정말 아무것도 없을까? 자원은 반드시 형태를 띠지는 않는다. 그래서 눈에 잘 안 보일 수는 있다. 잠시 멈춰서 내가 딛고 서있는 장소에 집중해보자. 정말 없다고? 그럼 잠시 멈춰서 좀 쉬자. 로컬의 힘은 ‘멈춤’에서도 나오니까.



작가의 이전글 닮은 듯 서로 다른, 디아스포라와 노마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