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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보로 Mar 23. 2021

닮은 듯 서로 다른, 디아스포라와 노마드

뭐든지 보고,書

영화 <미나리>가 아카데미 오스카 시상식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면서 화제다. 한국계 미국인 정이삭 감독과 배우 스티브 연을 비롯해 한국인 배우가 출연하여 한국어로 연기하는 영화 <미나리>. 그래서인지 한국영화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미나리>는 브래드 피트가 제작한 미국 영화다. 그럼에도 <미나리>는 적어도 심정적으로는 한국영화처럼 다뤄지고 있다. 아마 영화 자체도 한국인이 미국에서 정착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렇다 보니 사람들은  <미나리>가 작년 <기생충>에 이어 또 한 번의 오스카 돌풍을 일으키기를 기대하고 있다. 물론  <미나리>는 충분히 그럴만한 작품이기도 하다.


그런데 한국 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나리>와 경쟁하는 강력한 후보작품이 있다. 오스카 수상을 조심스럽게 예측할 수 있는 지난 ‘골든 글로브’에서 <미나리>가 ‘최우수외국어영화상’을 받았을 때 작품상과 감독상을 가져간 영화 <노매드랜드>이다. 이 영화도 이번 오스카에서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고 <미나리>와 작품상과 감독상을 두고 경합을 벌일 듯하다. <노매드랜드>의 클로이 자오 감독은 중국 국적자이지만 미국을 무대로 영화 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지난 제77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할 정도로 주목받는 여성 감독이다. 이번 골든 글로브 감독상 수상은 아시아계 여성으로서는 최초의 일이며 최근에는 마동석 배우가 출연한 마블의 새 영화 <이터널스>의 메가폰을 쥐기도 했다.


<노매드랜드> 출처:다음영화


<노매드랜드>는 미국의 저널리스트 제시카 브루더가 쓴 동명의 책(국내 출간 제목은 '노마드랜드')을 원작으로 한다.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가 촉발한 글로벌 금융위기 때 재앙을 겪은 사람들이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만들어 나아가는 이야기를 골자로 한다. 영화 속에서 펀(프란시스 맥도맨드 분)은 일자리를 찾아 떠돌이 삶을 산다. 그러한 과정에서 만나는 노마드 공동체 그리고 그들과 나누는 환대와 유대는 미국 초기 개척기 시대와 닮아있다.


재밌는 건 <노매드랜드>와 <미나리>가 서있는 위치다. <미나리> 또한 이민자의 개척으로 오늘날의 미국이 만들어졌다는 상징이 담겨있는데 두 영화의 시차가 만들어내는 아메리칸 드림의 실체가 흥미롭다. 80년대 레이건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미나리> 속 한국 이민자 가족은 캘리포니아를 떠나 미국 남부 아칸소에서 농사를 지으며 정착하려고 한다. 미나리가 상징하듯이 어디서든 뿌리를 내리려 하는 디아스포라의 삶을 떠올리게 한다. 바로 미국 개척기의 상징이라 <미나리>에 미국인이 감정이입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지점이기도 하다.


한편 <노매드랜드>는 <미나리>로부터 약 30년이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시절을 배경으로 한다. 이른바 레이거노믹스를 지나 더욱 심화한 신자유주의하의 금융자본주의가 폭주하여 일으킨 리먼브라더스 파산은 아메리칸 드림의 종언과도 같은 대사건이었다. <노매드랜드>는 그때 집과 직장을 잃고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내앉게 된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자신의 거점에 뿌리내리고 사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또 공허한지를 노마드의 삶을 통해 말하고 있다.


인류학자 김현경은 《사람, 장소, 환대》라는 책에서 이처럼 자신의 ‘장소’를 잃어버린, 또는 갖지 못하게 된 상황을 ‘장소상실(placelessness)’이라고 정의한다. 이 책에 따르면 비자발적 노마드는 “자신들이 속한 곳이나 있어야 한다고 생각되는 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는 사람들, 또는 그들이 머물러도 좋은 자리, 점유할 수 있는 위치를 이 세계 안에서 발견할 수 없는 사람”에 가깝다. 아메리칸 드림을 좇아 디아스포라의 길을 선택한 <미나리>의 여정이 종국에는 <노매드랜드>에서 노마드(유랑)로 마무리된 셈이다.


또한 김현경은 같은 책에서 “인간은 자신이 한번 의미를 부여한 장소를 쉽게 잊지 못하는 존재”라 장소를 박탈당하지 않기 위해 투쟁을 끊이지 않고 벌인다면서 장소는 우리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라고 강조한다. 이런 측면에서 다시 보자면 <미나리>는 장소 확보 투쟁이며 <노매드랜드>는 장소상실 이후의 삶을 말하는 영화라 할 수 있다.


최근에 ‘디지털 노마드’라는 말이 흔해졌다. 언제 어디로든 원하는 곳에서 일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자유로운 라이프스타일, 디지털 노마드. 그러나 여기에서의 노마드는 <노매드랜드>의 노마드와 확실히 차별된다. 오히려 이들은 코스모폴리탄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점은 인간이 발을 디디고 서 있을 터전(땅)인 ‘장소’는 어느새 ‘자본’이 그 역할을 대치했다는 현실이다. 오늘날 우리는 어쩌면 끊임없이 유랑당하는 ‘장소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전세난민이란 말을 잘 보라!)


<미나리>가 우리의 바람과 달리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기생충>처럼 오스카를 휩쓸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노매드랜드>가 장소상실의 시대에 더욱 울림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미나리>에 열광하는 열혈빠! 이고, 오스카 수상을 당연히 바라지만 <노매드랜드> 또한 만만치 않은 영화임은 틀림없다. 봉준호 감독 말처럼 오스카는 일개 로컬 영화제일 뿐이고 윤여정 배우의 인터뷰처럼 노미네이트된 것만으로도 받은 거나 다름없으니 혹시 만족할 만한 수상을 못해도 너무 실망하지 말자. 여하튼 두 작품 모두 좋은 영화이고 어느 쪽이든 아시아계가 오스카를 쥐락펴락 하는 건 사실이니 마음 편하게 수상 여부를 지켜봐도 좋을 듯하다. 중요한 건 민들레처럼 떠돌다가 미나리처럼 뿌리내려 자신의 장소를 찾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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