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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보로 Jun 15. 2022

나는 잘 살고 있습니다

《서울이 아니라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오늘날 한국인에게 서울은 도시로서의 공간과 장소 개념을 떠나 삶을 장악한 거대한 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다. 서울에 살지 않아도 그 시스템의 영향에서 자유롭긴 쉽지 않다. 그래서 지역이주는 쉬운 일이 아니다. 《서울이 아니라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의 저자 김희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서울이 아닌 곳에서 사는 게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어려운 일이기는 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데 저자는 그 누구보다 쉽게 지역이주를 결정한(것처럼 보이는) 사람이다. 양양으로 여행 갔다가 우연히 둘러본 아파트 모델하우스에 들어갔다 덜컥 아파트를 계약했으니까. 그 아파트는 저자 부부가 대출 없이 마련할 수 있는 범위에 있었다고 한다. 서울에서 하숙, 옥탑방, 셰어하우스를 거쳐 빌라에 임대아파트까지 온갖 주거 형태를 경험했던 저자는 난생 처음으로 자신의 집을 연고도 없는 양양에서 마련하게 된 것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모처럼 지역으로 갔는데 또 아파트에서 산다고? 로컬에서 산다고 해서 모두가 마당 넓은 단독주택에서 살 순 없다. 로컬의 삶에서 중요한 건 주거 형태가 아니라 로컬 지향적 삶의 태도이다. 마찬가지로 로컬의 단독주택에 살면서도 도시 지향적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하(려)는 사람도 많은 게 현실이다.


다시 말해 지역이주에는 서울 시스템으로부터의 해방을 원하는 이주와 그렇지 않은 지역이주가 있다. 전자의 경우는 삶의 OS를 갈아타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탈서울’이자 ‘탈도시’라 할 수 있다. 물론 해방이라는 거창한 이유까지도 필요 없다. 맥과 윈도우 두 가지 모두를 사용하듯이 도시와 로컬 두 곳에 삶의 이중거점을 마련하는 것도 가능하니까.



김희주 저 / 일토


아무튼, 《서울이 아니라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는 제목대로 지역이주에서 일자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여기서 중요성이란 직업을 갖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느냐, 하고 싶은 일을 하느냐이다. 이 책의 저자는 기자부터 광고대행사, 에디터, 공방 운영 등 많은 직업을 거치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도전해왔다. 현재는 양양군 도시재생지원센터에서 로컬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는데 이제야 하고 싶은 일과 잘 할 수 있는 일이 딱 맞아떨어진 셈이다. 양양에 놀러갔다가 서핑 보드를 산 것도 아니고 덜컥 아파트를 살 정도로 시작은 충동적이었지만 아파트가 지어지고 입주까지 남은 2년의 기간 동안 지역에서 무얼 하면서 살아가야할지를 치열하게 고민한 것이다.


한편, 《탈서울 지망생입니다》의 저자 김미향 기자는 지역이주를 자신과 ‘온도’가 맞는 곳을 찾는 일이라고 말했는데 《서울이 아니라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의 저자는 나만의 ‘속도’를 이야기한다.


나는 딱히 느리게 살고 싶은 건 아니었다. 다만 내 속도로 살고 싶었다. 그것이 세상의 속도, 도시의 속도보다 느릴 수는 있다. 하지만 사는 곳이 달라지면 어떨까. 내 속도가 그곳의 속도보다 느리지 않을 수도 있다.


온도는 쾌적함을 속도는 편안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들리는데 결국 장소가 내게 주는 다정함이 중요하다. 도시는 냉정하고 가차 없는 대신 도시인에게 익명성을 준다. 가장 밀집한 구조로 모여 살지만 익명의 섬이나 다름없는 도시, 서울. 이렇게 대도시 시스템은 커뮤니티를 싫어한다. 돈이 안 되기 때문이다. 자본은 어떻게 해서든지 커뮤니티를 해체해 소비 단위를 계속 분열시킨다. 반면 로컬에서는 커뮤니티가 중요하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서비스가 많기 때문에 함께 해결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열악한 생활 인프라에서 오는 자구책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만큼 서로의 관계는 공고해지고 관계는 삶의 터전에 고스란히 무늬를 남긴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의 많은 등장인물은 서로 이어져있다. 저렇게 관계에 치이면 피곤해서 어떻게 살까? 할 정도로 가족 이상의 유대관계(오지랖)가 드라마를 이끌어 간다. 물론 지역이라고 해서 모두 그렇진 않지만 서로를 보살펴주는 관계를 유지하는 일은 중요하다. 유사가족이라고 불러도 좋고 커뮤니티라고 해도 좋다. 크게 보면 느슨한 연대로 이루어진 로컬 공동체의 존재는 지역이주자에게 반드시 필요하다. 다시 말해 로컬은 ‘기회’가 아니라 ‘방향’이다. 영덕의 청년마을 ‘뚜벅이’처럼 같은 방향으로 함께 걷다보면 기회는 생길 것이다. 모쪼록 지역이주를 고려하는 분들이 저마다 나의 해방일지를 완성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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