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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보로 Jun 14. 2022

열탕과 냉탕사이 어디쯤, 《탈서울 지망생입니다》

뭐든지 보고,書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은 많은 생명뿐 아니라 한 도시를 송두리째 앗아갔다. 살아남은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가족과 동료를 잃은 슬픔뿐 아니라 자신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장소’를 느닷없이 상실한 것이다. 일본의 사상가 우치다 타츠루는 <로컬로 턴!>에서 일본인의 탈도쿄 러시가 이때부터 본격화했다고 말한다. 원자력발전소 폭발로 방사능 오염이 퍼지는 것도 문제이지만 무엇보다 삶이란 무엇인가를 저마다 돌아보게 했다는 것이다. 언제 갑자기 죽을 수도 있는 세계. 특히 자본주의 플랫폼으로서 풍요와 안전을 제공했던 도시가 한 순간에 작동 불능에 빠지자 도시는 민낯을 드러냈다. 다시 말해 탈도쿄는 생존을 위한 본능적 선택이었던 것. 그런 탈도쿄가 촉발한 지방 이주가 지난 10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우치다 타츠루는 일본에서 일어나는 지방 이주 운동을 자본주의 체제의 민낯을 목격한 사람들의 ‘망명’이라고 분석한다.


그렇다면 일본처럼 거대한 자연 재해가 일어나지도 않은 한국에서 부는 일부 젊은 세대의 탈서울 움직임은 어떻게 봐야 할까. 본질적으로 똑같다고 본다. 최근 벌어진 한국의 초현실적 부동산 거품도 누군가에겐 일종의 재앙이나 다름없을 테니까 말이다. 말하자면 탈출구가 안 보이는 삶으로부터의 해방이다. 그럼에도 서울은 여전히 지방 자산을 쏙쏙 흡수하고 있다. 서울을 포함한 경기 수도권의 인구가 전체 인구의 반을 넘어섰다. 누군가는 탈서울을 꿈꾸지만 그만큼 누군가는 인서울을 꿈꾼다. 서울이란 무얼까.


김미향 기자는 《탈서울 지망생입니다》에서 서울은 과연 내게 무엇인지를 되묻는다. 왜냐하면 탈서울은 좀처럼 쉽지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일자리 문제가 있으며 도시가 주는 편리함과 안전함이 있겠다. 하지만 서울이 주는 편리함의 대부분은 소비와 이어져있다. 실제로 지방의 중소도시를 가보면 서울의 복사판이다. 대형마트가 있고 스타벅스가 있고 파리바게트가 있고 올리브영이 있고 CGV가 있다. 서울에 있는 똑같은 브랜드 아파트 단지가 있는 건 물론이다. 다시 말해 진정한 탈서울이 되려면 과연 나는 이런 소비 스타일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저자는 탈서울의 해답을 찾기 위해 탈서울에 성공한 사람들을 찾아가 그들과 인터뷰를 한다. 탈서울의 동기와 시행착오를 비롯해 주거문제와 자녀 교육 문제는 어떻게 해결했는지 실질적 조언을 듣는다. 책에서 저자는 서울을 열탕으로 지역을 냉탕으로 비유하는데, 본인에게 필요한 건 ‘온탕’이라며 바로 온탕 같은 지역을 찾아내려고 고민한다. 스타벅스는 없지만 동네 로스터리 카페가 있고, 교보문고는 없지만 동네 책방이 있으며 동네 빵집과 술집이 있는 곳이 온탕일까? 아무튼 자신의 온도에 맞는 온탕을 찾으면 탈서울의 가능성은 높아진다.

하지만 역시 탈서울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가장 큰 장벽은 바로 일자리 문제이다. 지역에 정말 일자리가 없을까? 농사지으라고? 물론 과거에는 귀농이라는 말로 지역으로 이주하면 무조건 농사를 지어야 먹고 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옛말이다. 농사도 실력이고 재능이다. 아무나 지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탈서울 지망생입니다》에서 저자는 지역의 공공기관 일자리를 알아보거나 창업을 하거나 프리랜서로 살아가는 방법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다만 지역 이주를 결정할 정도의 용기가 있다면 일자리 문제는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탈서울 후의 일자리 문제는 도시적 기준에서 벗어나 바라봐야 한다. 생활을 위한 소비 지출이 적어진다면 소득이 줄어도 크게 상관이 없을 테니까.


지역에서 창업하는 사람을 요즘에는 로컬크리에이터라고 부른다. 지역에서 자신의 재능을 발휘해 지역 자산을 발굴하거나 지역 자산을 일구는 사람이다. 현재 지역 창업을 위한 정부 지원 제도, 예컨대 행안부 청년마을 만들기 사업이나 중기부 로컬크리에이터 양성 프로그램 등 다양한 편이니 이를 활용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농사를 아무나 짓는 게 아니듯 창업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일단 지역살이를 해보라. 《탈서울 지망생입니다》에서도 지역살이 경험을 권장한다. 한두 달 자신의 온탕 지역에서 살아보는 것이다. 온탕을 못 찾겠다면 전국 27개 청년마을의 지역살이 체험 프로그램에 참가해도 된다. 이 프로그램의 장점은 돈이 안 든다는 것이다. 요즘 강원도나 제주에서 한달살이를 할라치면 월세만 백만 원 이상이 순삭(!)이니 말이다.


여하튼 탈서울과 지역 이주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탈서울 지망생입니다》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막연히 동경하는 로컬 살이 꿈을 현실화 하는 데 현실적 조언을 줄 뿐 아니라 탈서울이 ‘서울수저’가 못 되거나 ‘2등 시민’으로의 전락이 아니라 오히려 삶의 전진이란 사실을 알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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