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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엉망잔칭 Aug 15. 2023

상처 자국


손톱


- 내 왼손 검지는 손톱의 형태가 약간 이상한데, 이는 군대에서 짧은 취사병 생활을 했을 때 생긴 자국이다. 부조리를 겪으며 그날도 점심 식사를 준비하던 나는 다음날 취사병 교육을 받기 위해 의정부로 4박 5일 파견을 다녀오는 것에 설레는 중이었다. 그러나 설렘이 너무 과했는지 칼질을 하던 나는 문득 손톱에 칼을 대 버렸다. 피가 묻어 나와 정확히 어느 곳을 베었고 어떤 상처가 생겼고 어떤 통증이 있었는지도 느낄 수 없었다. 다만 '망했다'라는 단어만이 머리를 되뇌었다.


- GOP 막사를 특정 주기로 옮겨가며 근무했었다. 손톱을 썰었을 당시 내가 있던 취사장은 하필이면 부대와 거리가 있는 곳이었고, 나는 수화기를 들어 당시 상황병 근무를 서고 있던 허XX상병에게 보고했다. 허 모 상병은 우선 욕을 한마디 했고, 다른 취사병을 보냄과 동시에 나를 막사로 복귀시켰다. 나는 막사로 달려갔고 곧 소대장의 승용차에 탑승해 의무대로 호송됐다. 복잡한 GOP 도로를 휘젓는 승용차 안에서 떠오른 생각은 이기적이게도 '취사병 교육은 가지 못한다'였다.


모포


- 나는 급하게 응급처치 비슷한 것을 받았다. 부대에 복귀하니 소대장은 나 대신에서 점심 식사를 준비하고 있던, 나에게 취사병 업무 인수인계를 해줬던 박XX상병에게 사과하라고 했고, 나는 사과했다. 나는 생활관에 들어가서 대기했다. 생활관 안에 있던 선임들은 내게 여러 질문을 해댔고 나는 대답했다. 어느 정도 열기가 가라앉자, 그들은 TV 소음에 다시 집중했고 나는 자연스레 혼자 있게 됐다.


- 나는 모포를 덮고 누워 소리 죽여 울었다. 손톱이 아파서, 취사병 교육을 가지 못해서, 지옥 같던 그곳이 싫어서 눈물이 난 것은 아니었다. 그냥 눈물이 났다. 눈물이 날 때는 모포를 덮고 소리를 내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이 슬펐다. 상처는 아물고 눈물은 그쳤다. 대신 손톱은 예전과 같은 형태가 아니었다. 하얀 부분이 보통 사람들보다 조금 더 많아졌다. 아마 그 부분이 칼이 닿았던 부분이 아닌가 싶다.


자국


- 가끔씩 손톱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보통은 사람의 손을, 그것도 한 손가락의 손톱까지 자세히 보는 경우는 드물지만 그런 질문이 들어오면 나는 이 짧은 이야기를 더 간략하게 설명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안됐다는 표정을 지으며 손톱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칼질 이후 그렇게 예뻐진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뻔히 바라보는 시선을 받아내고 있다 보면 왠지 부끄러워진다. 그렇게 예쁜 손도 손톱도 아닌걸요.


- 그런 내 손에 자국이 하나 더 생겼다. 이번엔 오른쪽 엄지손가락이다. 새로 구입한 에어프라이어의 세척 기능에도 미처 분리되지 못한 피자 치즈 조각들을 철 수세미로 긁어내는 와중 손가락에서 피가 났다. 피보다 무서웠던 것은 피멍울 옆에 새겨진 검은색 선이었다. 마치 볼펜으로 선을 그은 느낌이다. 소독액이 없어 솜으로 피를 지혈하고 밴드를 붙였다.


해명


- 아침에 밴드를 풀고 샤워를 했을 때 어떤 자국이 나를 반길지는 모르겠으나 걱정이다. 예쁘지는 않아도 모나지도 않은 손이라 생각했는데, 벌써 자국이 두 개나 생겼다. 더군다나 이번 상처는 얽힌 이야기도 없다. 순전히 바보 같은 일이다. 그래도 이런 바보 같은 상처도 웃으며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좋겠다. 그런 사람이 나의 손을 유심히 보고 상처에 대해 물어봤으면 좋겠다. 그러면 이런 상처도 아무렇지 않은 이야기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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