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스로를 단거리 선수라고 믿어온 커피집 사장이다. 어떤 것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하고 쉽사리 중단해 오던 내가, 같은 일을 25년 가까이 지속 했다는 사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문장이 떠다니는 머리를 안고, 도자기를 빚다가도, 그림을 그리고 기타를 치다가도 이내 중단하곤 했다. 하물며 글쓰기는 말할 것도 없다. 반면 사람을 상대로 하는 커피집만은 20년 넘게 끌어오고 있는 것이다.
4년전 쯤인가 나는, 가게입구에 “안식년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붙여두고 몇달이나 쉰 적이 있다. 월세를 지불하는 한 가게가 수입이 들어오지 않는 상태로 몇달을 지내는 것은 교수들이 월급을 받으면서 1년을 쉬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손님들은 내가 아프거나, 가족 중 누군가가 힘든 일을 겪고 있거나, 산티아고를 걷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추측하곤 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내가 부자라고 단정지었다.
분명 그 시기는 내게 커다란 삶의 변곡점이었다.
사람들은 내가 삶의 다른 영역으로 넘어갔거나, 해외로 삶의 터전을 바꿨을지도 모른다고 상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개월 후 나는 리뉴얼을 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 무렵, 미용일을 그만두고 통영에 집을 사서 이사를 했던 A와 책만드는 일을 임기까지 마치고 다른 사업을 진행했던 B도 어느새 기존에 해 왔던 일들로 돌아와 있었다.
그녀들과 마찬가지로 나의 삶도 쉽사리 바뀌지 않았다. 페소아의 <불안의 서> 일부를 바꾸니 내 이야기가 된다.
‘종종 나는 생각한다. 커피스트를 영영 떠나지 못할 거라고. 글을 쓰자마자 이 생각은 마치 영원처럼 느껴진다.
커피라는 망상을 피해
글쓰기라는 망상으로 달아나는 것은
감옥을 바꾸며 수감되는 일에 불과하다.
개성을 발현하기 위해
개성을 잃는 것
즐거움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며
권력도 아니다.
자유 오직 자유 뿐이다.”
안식년 이후의 삶은 분명 이전의 삶과는 다르다. 바뀐 것은 상황이 아니고 나의 태도였다. 나는 알아차렸다. 인생이란 아무리 큰 계기를 마련해도 한순간에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새로운 인생을 살기 원했던 나는 리뉴얼을 하는 동안, 가게의 기계 부품 하나까지 바꿨다. 그 후 긴 코로나의 시기가 왔고, 아파서 수술을 하고 몇달을 쉬었고, 작업실을 정리했지만 일상은 여전히 그대로다.
나는 이제 조금씩 글을 쓰고, 더 많이 책을 읽는다. 변화는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나의 작은 움직임에서 시작되는 것이었다. 책이 나오고 유명해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더 자주 초록들 사이를 산보 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웃고, 몸에게 이로운 음식을 먹으려고 애쓴다. 삶이 이곳에서 저곳으로 넘어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나의 매 순간을 따뜻한 것으로 채우고, 조금씩 기록하는 일이 중요하다.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르면 나의 얼굴이 아기 부처처럼 맑아져 있기를 기도하면서. 커피와 글쓰기는 나에게 수행의 도구이며, 안식월은 나의 긴 쉼이었다. 나는 오늘도 평소처럼 일어나 책을 읽고 일하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