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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사유 Jun 03. 2021

지나가는 타성(他星)을 바라볼 때, 그 새벽의 우울

타인의 별(他星)과 나의 떨어진 별(落星) / 사유(思惟)

 사유(思惟) 매거진은 저자 커피사유가 일상 속의 경험으로부터 얻은 느낌과 생각들을 기반으로 작성한 에세이를 자체 선별하여 연재하는 공간입니다.

 더 많은 생각들을 만나보고 싶으시다면, 저자의 블로그를 방문해주세요.


일러두기.


 이 글은 수많은 추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이 글은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인지 불투명해지고 말았습니다. 다시 글을 볼 때 저는 이 사실을 발견하고 분명히 또 인지하였습니다만, 결국 고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이 글에 등장하는 수많은 추상들이 얽힌 것이 보편적인 호소성을 가지는 듯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글을 쓸 당시의 저 자신을 정확히 기억하기 때문에 이 글이 어떤 의도로 쓰였는지 아주 명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의도를 저는 일부로 독자 여러분들께 어떠한 경우에도 발설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독자 여러분들께서 이 글을 나름의 보편적 호소성을 기반으로 여러분들의 경험을 대입하실 때에 이 글은 비로소 완성된다고 생각합니다.


 가능하시다면, 여러분들께서는 이 글을 어떻게 읽으셨는지 공유하여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이 글의 보편적 호소성이 과연 여러분들에게는 어떤 형태로 다가가게 되었는지를 앎으로써 저는 비로소 이 글 자체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나간 추억은 가끔 내가 원하지 않아도 떠오르는 경우가 있다. 그것도 좋은 추억이든 나쁜 추억이든 가리지 않고. 이러한 추억들이 지나가는 순간은, 마치 내가 어릴 적 추석이나 설날 무렵에 시골의 외할머니 댁에 있을 때, 명절 당일의 밤에 주위에는 불빛이라 찾아볼 수 없어, 그들만이 고독하게 빛나고 있는 별무리를 보던 순간의 느낌과 비슷하다. 특히, 그 고독한 무리들 중, 특별히 고독한 어느 하나가 스쳐 떨어지는 경우가 있었다고 상상할 때, 나는 무언가 황홀한 느낌을 그로부터 받기보다는 이상한 동질성을 느낀다. 그리고 그 동질성은 기괴하게도 떨어진 하나의 별이 무언가 고독하게 빛나고 있는 아득한 별무리에 대하여 비난할 자격이라도 부여하는 듯하지만, 사실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일상생활 속에서 종종 발굴되는 이러한 추억이라는 나의 떨어진 별들, 즉 낙성(落星)들은 가끔 아무것도 아니어야 하는 것들, 사회적으로 아주 당연시되는 어떠한 의사소통의 규약, 혹은 도덕적으로 강제되는 규범 사이의 어떤 영역에서 발견되곤 한다. 나는 어떤 깜깜한 밤에 어디인지도 모르는 장소를 하염없이 거닐다가 그러한 별을 발견할 때면, 애써 모른 척하고 싶어 진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결국은 그 별들을 집어 들어 귀를 가까이 대어 보지만, 이미 싸늘하게 식어버린 그들에게서 일련의 고동, 혹은 동질성으로 매개되는 일련의 공명은 더 이상 들리지도 않는다.


 나는 가끔 낙성(落星)들을 힘껏 하늘 높이 던져서 다시금 그들이 자리하고 있던 고독한 밤하늘의 별무리의 자리로 되돌려놓고 싶어 진다. 하지만 낙성(落星)을 보고 있노라면 나는 아주 자연히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그런 경우이면 나는 특히 그 낙성(落星)으로 빙의되어, 밤하늘에 아직도 여전히 그들대로 빛나고 있는 별무리들을 하염없이 올려다보고, 또한 노려보게 된다. 하지만, 사실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타성(他星)이라는 이름의 그들 무리들을 노려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 행위는 낙성(落星)에 대한 결례이자 아직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라는 한 인간의 허물이라는 것을 나는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노려보는 것을 중지(中止)할 수 없는 일련의 굴레에 여전히 속박되어 있는 모양이다. 손에 집어 들고 있는 낙성(落星)들을 나는 들리지 않을 그 공명을 다시 기대하면서, 가슴으로 가까이 가져가 끌어안고 만다. 하지만 식어버린 별이라서 그런지 그 죽은 별들로부터는 그 어떠한 온기도 느낄 수 없고, 다만 나의 온기가 그들로 빠져나가, 그리고 다시 차가운 밤하늘의 공기 속으로 비산(飛散)하는 것만을 느낄 수 있을 뿐이다.


 그렇게 나는 아련하게 그 온기를 되뇌면서 타성(他星)을 올려다보곤 하는 것이다. 적어도 그 온기 때문이라고, 그렇게 믿어야만 하는 것이 나의 낙성(落星)들에 대한 최선의 변명일 것이다.


※ 오늘은 특별하게 글에 사주를 하나 달기로 한다.


 낙성(落星)에 대한 나의 변명에 하나를 덧붙인다. 잘 알려지지 않은 외국 인디 음악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이지만, YonKaGor라는 활동명의 싱어송라이터의 “Mr. Sunfish”라는 곡. 나의 낙성(落星)을 바라보는 모든 순간, 그리고 타성(他星)을 올려다보는 모든 순간에 대하여 이 곡을 헌정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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