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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해 Feb 23. 2024

철학의 맛, 성취

무언가 하고있다는 과정

요즘 새벽 수영을 하고 있는 나는 수영이 끝난 다음에는 꼭 편의점에 들러 김밥을 사먹는다. GS편의점 김밥을 좋아하지만 수영이 끝난 뒤 내 동선상에는 CU밖에 없어서 조금 아쉽다.


그래도 기쁜 마음으로 편의점에 들어가 통통한 김밥을 하나 산다. 곧바로 전자레인지에 데운 다음 윗 껍질을 돌돌 벗겨 통김밥 먹듯 우적우적 씹어먹는데 이 맛이 참 별미다.


절여진 감미료와 자극적인 향신료의 맛인데 운동이 끝난 뒤라 그런가 아니면 눈 뜨고 먹는 첫끼라 그런가 이게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더 신경 쓰는 것 중 하나가 전자레인지 돌리는 시간이다. 30초만 돌리면 간혹 구석까지 열이 전달되지 않아 밥알이 딱딱할 때가 있다. 그렇다고 40초를 데우면 너무 뜨거워서 김밥이 흐물흐물해진다. 고로 나에게 35초가 딱 적당한 시간이다.


참 웃기다. 원래 편의점 냉장고에서 바로 꺼내 먹는 찬 김밥을 좋아했던 나인데 이제는 찬 음식이 바로바로 안 들어간다. 역시 음식 선호도도 취향도 세월 따라 변하는가보다.


더군다나 요즘같이 수영을 하고 난 뒤에는 아무래도 속을 좀 따뜻하게 데워주고 싶어진다. 그래서 오늘도 35초정도 데운 김밥을 우걱 우걱 씹으며 잠시 산책을 한다.


거 참 왜 유독 이 때 먹는 김밥이 더욱 맛있지? 운동을 한 다음이라 그런가?


운동이라...


헬스, 필라테스 같은 운동과 달리 수영은 물 속에서 하는 지라 땀이 잘 안난다. 체력 소모는 물론 있으나 땀이 나지 않기 때문에 뭔가 운동으로 땀 한 바가지 쏟고 난 다음에 어, 시원하다 하는 느낌이 적긴하다. 조금 다른 느낌의 어, 시원하다 운동이다.


무엇보다 초보인 나는 이제서야 수영이 끝나고 허기짐을 느낀다. 이전까지는 수영이 끝나고도 배가 딱히 고프진 않았다. 그만큼 체력을 잘 못 썼다는 거다.


그렇기에 이 김밥이 맛있는 이유는  단지 운동 뒤에 먹는 음식이라서가 아니다.


김밥 한 알을 입에 쏙 넣으며 다시 생각해본다. 왜, 이 편의점 김밥은 나에게 달콤한 행복을 줄까.


내가 이 맛을 또 어디서 느꼈지?


어. 이거 그 때 먹은 김밥 맛이랑 똑같다.


한 때 정신없이 일을 한 적이 있었다. 밥 먹는 것도 잊고 열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그 때 참 재미있었다. 당장 눈 앞에 보이는 성과는 없었다. 그럼에도 뭔갈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즐거웠고 설레였다.


열심히 일하다보면 어디선가 천둥 소리가 들렸다. 뱃 속이었다. 우르르쾅쾅 꼬르륵 거리는 소리에 뭐라도 입에 넣어야겠다 싶어 편의점에 들러 간단히 먹을 김밥을 샀다.


그리고 와앙 하고 한 입 입에 넣었다. 순간 씹는다는 행위, 혀에서 맛을 느낀다는 감각등에 진짜 번개라도 맞은듯 짜릿한 자극이 온 몸을 관통했다.


아, 내가 살아있구나.

이게 삶이구나.


살아있음을 찬미한 순간이었다. 웃기지만 진짜 그랬다. 힘들지만 내 힘으로 뭔가를 하고 그 과정 속에서 보람과 성취를 느끼고 그 보상으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잠시 숨을 돌리고...


김밥이 너무너무 맛있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공장에서 만든 몇 천원짜리 김밥이 아니라 몇십만원, 아니 몇백만원 하는 식사를 대접받은 기분이었다.


그리웠던 맛이었다. 그 때의 열정은 이미 다른 모양으로 변했기 때문에 열심히 일을 하다가 먹는 김밥은 더 이상 그 맛을 내지 못한다.


대신 다른 모양으로 찾아와주었다.


물을 무서워하던 내가 이겨내기 위해 도전하고

꾸준히 운동을 하기 위해 노력하며

새로운 것을 배우는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 것.


이 과정을 통해 지금의 나를 또 다시 발견하고 만들어간다는 성취의 맛.


편의점 김밥을 먹는데 걸리는 시간은 길어봤자 10분이다. 그러나 이 어찌 이렇게도 행복하고 달콤할 수 있을까!


고개를 끄덕이며 김밥을 손에 꼭 쥔 채 밥알 한 알 한 알을 더 깊이 음미했다.


언젠가 이 김밥도 더 이상 그 맛이 나지 않겠지.

하지만 괜찮다. 또 다른 성취의 맛을 찾으면 되니까.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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