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겨울해 Feb 22. 2024

왜 안돼? 수영(4)

발차기

수영장에서는 기초반이나 초급반이 가장 끝 레일을 사용한다. 다른 수영장은 안가봤지만 그럴거라고 확신 아닌 확신을 한다. 왜냐하면 중간 레일은 초보가 수영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양 옆으로 화려한 영법을 펼치시는 분들로 인해 크고 작은 파도가 밀어닥쳐 마치 해일 속에 있는 기분이다. 나도 그 기분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아무튼 우리도 끝레일 두 개를 사용하는데 강사님이 수영장 벽에 일렬로 세우시더니 위로 올라가서 앉으라 하셨다. 그리고는 발차기를 시키셨다.


"자, 발차기 100개 시작!"


기초반이 아닌 초급반부터 시작한 나였기에 발차기는 처음이었다. 오오- 본격적으로 배우는 느낌이야! 하며 혼자 신나서 싱글벙글 웃어댔다.


첨벙첨벙첨벙첨벙


신나게 물장구(?)를 치며 연습을 하고 있는데 이어서 강사님이 외치셨다. 발차기 100개 더!


나는 신나서 하고 있는데 누군가 표정이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강사님이 어르고 달래는 투로 말씀하셨다.


"발차기 재미없고 힘든거 알아요, 그치만 수영에서 가장 중요한 게 발차기예요. 기초부터 튼튼하게 해야지 나중에 실력이 쑥쑥 자라요! 힘냅시다!"


세월이 흐를수록 뭐든지 기초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이 발차기 훈련이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속으로 강사님 말씀에 크게 동의하며 열심히 허벅지를 움직이고 무릎이 벌어지지 않도록 신경쓰고 발목을 포인한채로 발차기를 해댔다.


촘벙촘벙촘벙촘벙


하지만 점점 나도 모르게 힘이 빠져서 물장구가 작아졌다.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물장구 역시 확연히 작아지자 강사님이


"왜 소리가 작아져요~~~!"


하면서 회원들 발목을 잡고 발이 물 위로 나오게끔 흔들었다. 물 속에서 빼꼼 빼꼼 보이는 내 발등이 '꿱 뭐하는거야, 살려줘~!' 하며 외치는 기분이었다.


앉아서 발차기를 하려니 코어에도 힘이 많이 들어가서 그간 코어운동을 안한 걸 후회했다. 200개가 끝나자...


마지막 100개가 우리를 또 기다리고 있었다. 강사님은 우리의 속마음을 읽기라도 하듯 마지막이니 아까처럼 하지 말고 있는 힘껏 더 크게 물장구를 치라고 하셨다.


참방참방참방참방!!


젖 먹던 힘까지 짜내며 물장구를 치면서 다른 레일을 구경했는데 (와중에 그럴 정신이 있었나보다) 중급, 상급, 연수반등에서는 휘황찬란한 영법으로 수영을 하고 있는게 보였다. 문득 우리 기초반이 너무 귀여웠다.


너나 할 것 없이 다 큰 성인인데 이제 막 아장 아장 걷는 아이들처럼 걸음마를 배우고 있다니. 그것도 빤쮸차림 같은 수영복을 입고서. 저 분들이 입고 있는 수영복은 휘황찬란한 금벨트로 보이고 우리들은 기저귀를 차고 있는 것처럼 보이자 더 귀엽게 느껴졌다.


하기사, 뭔가를 처음 배운다는 행위 앞에서 나이가 무슨 소용이고, 체면이 무슨 상관인가. 어린아이같이 순수하게 두 눈 반짝이며 이끌어주는대로 잘 따라야지.


아장아장아장


다시 아장거리며 발차기를 하다가 문득 진짜로 나 어릴 적 내 두 다리에 힘주며 땅을 딛던 때 어땠을까? 싶었다. 부모님이야 기뻐하셨을거고, 나는? 내 기분은 어땠을까?


스스로 고양감에 취했을까, 아니면 뭔지 모르겠고 그냥 어른들이 좋아하니 내가 뭔가 했나봐 했을까.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확실한 건 어린아이가 땅을 딛고 일어선다는 건 어마어마한 일이었으리라.


그리고 내게 이 물은 단단한 땅과는 다른 무언가였다. 물은 지면처럼 딛고 일어설 수는 없기에 물에 스며들어 흘러가는 힘을 주는 걸 배워야했다.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앞으로 물이 나에게 어떤 상징성을 줄지 설렌다.


기저귀 해질정도로 발차기를 다 하고 나자 강사님은 배에 감싸는 두꺼운 키판 같은 걸 착용하라고 하셨다. 특히 남자분들은 근육때문에 물에서 잘 안 뜨는 분들이 있기에 이걸 끼고 하면 뜨는 느낌을 잘 받을거라 하셨다. 그리고 수영은 그 느낌에 적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셨다.


확실히 키판도 들고 허리에도 부력을 하나 착용하니 몸이 아주 가벼웠다. 물에서 수영을 하는데도 둥둥 잘 떠서 하늘을 나는 새가 된 기분 같았다.


그 상태로 우리는 자유형 팔 돌리기를 배웠다. 4박자로 쪼개며 진행하다가 2박자로 돌리며 자유형을 했다. 박자륻 쪼개는데 은근하게 급한 성격이 좀 나오는 것 같았다. 하나, 둘쉣, 넷 이런 느낌..!? 그래도 속으로 천천히 박자를 세면서 하니 금방 익숙해졌다.


일상 생활에서는 이렇게 어깨를 크게 돌리며 팔을 앞뒤로 휘두를 일이 없다보니 물 속에서 휘젓고 있는 두 팔이 마치 날개가 된 것 같았다. 신선한 이질감이 들면서도 몸이 쫙쫙 펴지는 스트레칭이 되는 것 같아 혼자 시원해했다. 아닌가, 그냥 물이 시원한건가.


오늘도 무사히 강습을 끝내고 물 밖으로 나왔다. 육지 생물로 돌아가 발을 딛자마자 거대한 추가 위에서 떨어진 듯 쿵 하고 나를 짓눌렀다. 하긴, 발차기도 하고 팔도 열심히 휘둘러댔으니 뭐.


그래도 젖은 솜마냥 무거운 몸뚱아리와 별개로 기분은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다. 이 은은한 도파민 때문에라도 점점 새벽수영을 사랑하고 있는지도.


아장아장아장 잘 걸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