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창업의 꿈을 안고 올라온 울산 언니
처음 일했던 대형 프랜차이즈점에 매니저가 새로 들어왔다. 원래는 알바생들로만 이루어진 곳에 점장님은 매니저를 새로 뽑고 본인의 업무를 거의 일임했다. 그리고 그 뒤로 점장님은 카페에 거의 오지 않으셨다. 한창 뜨거울 신혼부부이기도 했고 사실 점장님은 카페 운영에 있어 큰 뜻은 없어 보이셨다. 커피는 참 맛있게 뽑으셨지만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별 개니까.
하지만 새로 들어온 매니저 언니는 달랐다. 울산에서부터 올라온 이 언니는 간호사 일을 하다가 인간관계 때문에 너무 힘들고 지쳐 사표를 던지고 카페 창업을 하기 위하여 무작정 서울로 왔단다. 일이 너무 힘들어 잠깐 떠난 여행에서 먹어본 그 아메리카노의 맛을 도저히 잊을 수가 없더라면서 말이다. 지금이야 카페 창업이라 하면 모두가 한 번쯤은 생각해 본 자영업이겠지만 당시에는 '아메리카노'라는 용어조차도 낯선 그야말로 블루오션이었다. 그런 때에 160도 안 되는 자그마한 키에 젊은 처녀가 커피에 대한 열정과 신념을 가지고 혈혈단신으로 무작정 서울로 온 거였다. "울산에서는 카페 찾기가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야." 하며 두 눈을 빛내는 그녀는 작은 거인이었다. 그녀는 서울에서 카페 운영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워보기로 마음을 먹었고 그 소원대로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점장님은 모든 걸 작은 거인에게 맡기고 자취를 감추셨다.
32살의 작은 거인은 뭐든 열정적이었고 알바생들은 그게 불편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오기 전까지는 아주 자유로운 매장이었다. 점장님은 본인 없이도 매장이 돌아갈 수 있도록 알바생들 사이에 적절한 역할 분배와 큰 원칙을 세워주셨고 알바생들은 그 안에서 암묵적으로 서로 간의 룰을 만들어가며 자신의 근무 환경을 각자의 개성대로 조성해 나갔다. 한 마디로 체제는 있지만 체계는 없는 자유민주주의 같은 그런 조직이었다.
그런 곳에 어느 날 갑자기, 땅에서 작은 거인이 솟아오르더니 채찍을 손에 들고 하나하나 자기 방식대로 바꾸어 가기 시작한 것이다. 독재 정치의 시작이었다.
"아니, 이 스푼은 여기에 두지 말고 저기에 둬야지."
"아니, 이 뚜껑은 여기에 놔야지."
"아니, 지금 말고 5분 뒤에 해야지."
참고로 나를 비롯 모든 알바생들이 20대 초반의 미술, 연기, 음악 등을 공부하는 예술계열의 학생이었다. 이 자유로운 영혼들에게는 그녀의 갑작스러운 구속과 억압이 적잖은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결국 그들은 채찍을 든 작은 거인과 일하기를 싫어했고 어쩔 수 없이 근무 시간이 겹칠 때에는 차라리 일언반구 하거나 돌부처가 되기를 택했다.
알바생들의 침묵과 무표정은 그녀를 메말라가게 했다. 인생을 건 꿈을 펼쳐나가기 이전에 그녀는, 대화가 필요한 외로운 타지인이었다. 설상가상 그녀는 선천적으로 꽤나 수다쟁이였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에게 가장 큰 고문은 말할 상대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녀는 알바생들 중 유일하게 자신과 다섯 마디 이상을 이어 나가주는 나에게 의지했다. 그녀는 우울하게 앉아있다가도 나만 보면 방긋 웃으며 내 이름을 불러댔다. 사실 나는 그녀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그녀가 그랬듯 나 역시 내 꿈을 향해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었고 그 과정 가운데 생계를 위해 일하는 카페라는 곳은 잠시 스쳐 지나가는 곳일 뿐이었다. 그녀 역시도 나에겐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그녀의 잔소리와 억압은 나름 견딜만한 수준이었다.
"너도 버킷 리스트를 꼭 작성해봐. 나는 그걸 간호 일 때려치우고 나이 30이 되어서 작성했는데 못해 본 게 많아서 너무 후회되더라."
나를 보고 어김없이 조잘조잘 떠들어대던 그녀가 스탭실에 들어가 가방에서 뒤지더니 무언가를 꺼내왔다. 아무 생각 없이 네네 하는 나에게 건넨 것은 귀퉁이가 접힌 조그마한 수첩이었다. 꽤 귀여운 글씨체로 1부터 10가지의 버킷 리스트가 빼곡히 적혀있었다. 그중에 [내 카페 차리기]에는 큰 별표와 함께 하트 스티커까지 붙어 있었다. 처음으로 작은 거인이 멋있게 느껴졌다. 울산에 있는 자기 집 방구석에 앉아 버킷 리스트를 작성했을 그녀의 모습이 그려졌다. 반짝이는 눈으로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수첩과 함께 그 먼 거리를 떠나 여기까지 왔구나. 나에겐 잠시 스쳐 지나가는 곳이지만 그녀에게 이 곳은 삶의 표지판이었구나. 내가 진심이 담긴 칭찬 몇 마디를 건네자 작은 거인의 땡그란 귀가 씰룩 씰룩거렸다.
"나 10kg 쪘어."
작은 거인은 침울한 얼굴로 말했다. 새로운 점장님이 오고 난 뒤부터 스트레스로 폭식하는 버릇이 생긴 그녀는 전과 다르게 혈색이 눈에 띄게 안 좋아졌다. 땡그란 귀는 늘 풀이 죽어 있었고 헐렁거리던 유니폼은 팔통이 낑겨 남자 사이즈의 유니폼으로 바꿔야 했다.
카페 운영에 뜻이 없던 전(前) 점장님은 결국 자기만의 다른 길을 찾아 떠났고 우리는 새로운 점장님 부부를 맞이했다. 30대 중반의 신혼부부인 그들은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와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다만, 문제는 카페 업무가 처음인지라 가장 늦게 들어온 알바생보다도 카페에 대한 경력이 없다는 점이었다 전(前) 점장님은 '매니저에게 모든 걸 들으십시오.' 하고 쿨하게 나갔고 매니저 언니는 열정적으로 그들에게 인수인계를 해주었다. 그들 사이에 어떤 인수인계가 오고 갔는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묘한 기류가 카페에 흘렀다.
나만의 카페에 대한 열정 vs 열정. 이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카페에서 일해본 분들이라면 알겠지만 카페는 생각보다 자잘한 업무가 많아 마음만 먹으면 신경 쓸 게 넘쳐나고 음료 제조의 우선순위, 설거지, 재료 채우기 등 동료들과 손 발이 맞아야 일할 맛이 나는 곳이다. 그런데 인수인계 기간 동안 점장님 부부와 매니저 언니는 이 모든 게, 단 하나도, 맞지 않았다. 그들의 기싸움은 점점 커져갔다. 카페 경험이 전무한 점장님과 점장 업무의 경험까지 있는 매니저님, 승리는 누구였겠는가. 결국 진짜 점장님이었다.
"아니, 매니저님, 그건 그렇게 말고요."
"아니, 매니저님, 홀 도는 건 10분에 한 번씩요."
"아니, 매니저님, 몇 번을 말해요. 발주는 아직 안 할 거예요."
작은 거인은 나도 너 따라서 운동이나 갈까 하며 푸석한 얼굴로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헬스장 말고 차라리 자연을 보며 산책할 수 있는 동네 내천을 소개해주었다. 그녀는 너 수업 몇 시에 끝나? 같이 갈래? 하고 물어봤지만 나는 근무 시간 이상의 체력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내가 거절한 뒤로도 계속 매달렸다. 근무처에서 나만 오매불망 바라보는 수다쟁이는 무척이나 고역이었다. 점점 예민해진 나는 그녀를 피하기 시작했고 그녀는 곧 대화 상대를 잃어버렸다. 작은 거인은 누가 건드리기만 하면 콱 물어버릴 것 같은 얼굴로 내내 커피를 만들다가 일이 끝나면 그녀만의 보금자리로 돌아가 폭식을 반복했다.
"나 다시 울산으로 내려가."
카페를 그만두기로 점장님과 이야기를 끝낸 그녀는 며칠 뒤, 나에게 작은 손편지와 작은 선물을 건넸다. 늘 너의 꿈을 응원하고 지지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왠지 미안한 마음에 너스레를 떨며 언니, 근데 요즘 왜 이렇게 예뻐졌어요? 하고 툭 내뱉었다. 그녀는 말없이 웃었다. 내가 최대한 친절한 말투로 점장님 부부도 여기 다른 사람한테 넘기고 해외로 간다고 하니까 언니는 여기서 더 일하는 건 어때요? 하고 묻자, 그녀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내 꿈은 나만의 카페를 차리는 거야."
물론 당장은 카페 차릴 돈이 없겠지만 하고 말을 덧붙이며 그녀는 배시시 웃어 보였다. 돈이야 있다가도 없는 거고 뭐 그런 거죠 하며 내가 괜히 눈썹을 씰룩대자 그녀는 맞아 맞아, 그건 그렇고 나 5킬로 빠져서 그래서 예뻐졌나? 하며 기뻐했다. 울산 가면 살이 저절로 빠질 거야. 원래 나는 소식하는 사람이거든. 하고 말하는 그녀의 귀가 연신 씰룩거렸다.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 작은 거인이 카페를 차렸는지 아니면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 다시 간호 일을 하는지 모른다. 만나면 못 말리는 수다쟁이였지만서도 정작 문자는 잘하지 않는 그녀였다. 핸드폰에서 그녀의 연락처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렇게 까다롭고 참견쟁이였던 그녀에게서 아이러니하게도 커피에 대해 제일 많이 배웠고 카페 일을 할 때마다 가장 유용하게 쓰였다. 그녀의 귀 따가운 잔소리를 문득 떠올릴 때면 전(前) 점장님은 지금 과연 무슨 일을 하고 계시는지 또 해외로 나간 점장님 부부는 자기들만의 꿈을 또 찾았는지도 가끔 궁금하다. 돌이켜보면 그들 모두 자기들만의 꿈을 꿨고 실행에 옮기는 멋진 사람들이었다. 그 과정은 비록 서툴지언정 말이다. 하지만 그건 모두가 그렇지 않겠는가. 어떨 땐 나도 모르게 남에게 상처 주고 또 상처를 받지만 우리 모두는 오늘도 그들처럼 꿈을 꾸며 서툴게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