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흔들며
버스에 앉아 창밖을 보는데 어떤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죽 이어진 길을 걷던 아이들이 손을 흔들었다. 서로를 향한 인사였다. 야무지게 손을 좌우로 흔들던 그들은 이윽고 친구를 맞이하자 걸음을 멈춰세운다.
"안녕!"
"안녕!"
살짝 열어둔 버스 창문 틈으로 아이들의 달콤한 소리가 흘러들어왔다. 부러운 마음에 그 곳에 슬쩍 껴본다.
그래, 안녕
다 큰 어른답게 희미하게 속으로 읊어보고 있는데 인사를 마친 아이들은 서로를 지나쳐 곧장 씩씩하게 길을 떠난다.
아, 이들은 서로를 만나려던 게 아니었구나.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친구와 인사를 나눈 뒤 떠나는 발걸음에는 후회가 없어보인다.
참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만남과 이별이었다.
1초에 족히 10번은 흔든 것 같은 아이들의 손인사가 뇌리에 박혀 떠나지 않았다. 아이들을 지나쳐 버스는 떠났지만 나는 지지부진하게 소녀들을 끌고 오고 있었다.
나는 언제 저렇게 인사를 해본적이 있는가.
아, 있다.
'괜찮아요.'
거절의 의미로 열심히 손사래를 친다. 1초에 그래도 다섯 번은 흔든 것 같은데. 그마저도 이 '괜찮다'가 그 '괜찮다'로 안 받아들여질 때가 있다. 중의적인 의미로 점철된 어른들의 세계는 뿌얗다. 창 밖의 아이들처럼 명확한 세계에서 이사온 뒤론 내내 긴장과 지침의 연속이다.
아이들의 발걸음도 떠올려본다. 오른발, 왼 발 떠나는 걸음에 담긴 경쾌함에는 조금의 아쉬움과 후회는 없다. 깔끔하다. 친구를 보자 떠오른 감정을 모조리 표현한 이들의 후련함까지 보인다.
'안녕.'
다 큰 어른은 언제부턴가 친구와의 만남이 늘 아쉬웠다. ‘언제 또 보자.‘ 해놓고선 그게 언제가 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불확실함을 전제로 건넨 인사에는 반가움과 씁쓸함, 애잔함 범벅이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각자의 삶의 영역은 좁아졌고 우리를 묶어줄 교집합은 옅어져갔다. 애써 지워져가는 반원을 부여잡으며 추억 이야기를 하고 함부로 왈가왈부할 수 없는 각자만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 하고 나면 우린 아무렇지 않은 척 인사를 건넸다.
'안녕.'
이별도 늘 아쉽다. 특히 열렬히 사랑했던 사람과 영영 헤어질 때 유독 그렇다.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 없는 인사를 건넨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안녕이라는 말 뒤로 미안함, 그리움, 분노, 허망함등이 쫓아와 질척거린다. 그 질척거림은 끝내 새벽 금기어인 '자니'까지 소환시키기도 한다.
"안녕!"
오늘 만나서 반가웠고 우린 내일 또 만날거야. 그리고 똑같이 반가울 거야. 아이들의 인사가 왜 그렇게 명확했는지 알겠다. 흐린 안개 같은 풍경 속에서 유독 그 장면이 왜 더 선명하게 그려졌는지 알겠다.
상황따라 흔들리지 않을, 또 변명이 필요없는 그 곧은 마음에 나도 동참하고 싶다. 오랜만에 인사 다운 인사를 본 기분이었다.
그래,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