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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해 May 11. 2024

왜 안돼? 수영(6)

비워진만큼 채울 수 있다.

유독 수영이 힘든 날이 있어서 왜 그런고 살펴보니 두 가지 요인이 있었다.


첫 째로는 육체의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이다. 전날 잠을 많이 못 잤다거나 월경 전이라 몸이 천근만근일 때가 그렇다. 이런 날은 물에서 뜨는게 기적일 정도다. 물귀신이 잡아끄는 것 같은 모든 저항과 싸워서 겨우 겨우 앞으로 나아간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 물에 어느정도 적응이 되고나면 몸이 조금 가벼워져서 그럭 저럭 견딜만하다.


이보다 더 신경이 쓰이는 두 번째가 바로 심리적 컨디션이다. 물에 대한 두려움, 숨이 부족하다는 압박감부터 시작해서 내가 지금 제대로 영법을 하고 있는건가 하는 의문 등등.


수영에서는 심리적 컨디션이 중요하구나 느꼈던 작은 경험이 있는데 바로 어쩌다가 레일에서 첫번째로 출발 했을 때였다.


자유형, 배영을 하는 내내 나도 모르게 긴장을 했다. 첫 타자라는 부담감, 뒷 사람이 쫓아온다는 압박감에 내 수영을 즐기지 못하고 앞으로 가는데에만 연연해했던 것 같다. 뒷 사람에게 폐가 되지 않게 어떻게든 두 가지 영법은 제 속도로 끝냈는데 제일 자신 없는 평영 차례가 되자 금세 따라잡혀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레일 반바퀴 끝에 도착하자마자 모든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해서 꼴지로 다시 출발했다.


그 뒤로 마음이 너무나 편안해져 수영을 즐길 수 있었다. 웃기게도 안되던 평영이 너무 수월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평상시보다 쭉쭉 앞으로 나아가는 걸 느끼며 앞 사람 발에 걷어 차일까봐 잠시 기다리는 여유까지 부렸다.   


아, 이래서 스포츠는 정신력 싸움인가보다. 마음이 안정이 되자 수영이 잘 되는 바람에(?) 결국 앞에서 세 번째 자리로 복귀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첫 타자로 출발 하는 건 꺼려진다. 그만큼의 실력도 되지 않을 뿐더러 수영을 좀 더 즐기며 몸으로 연구하고 싶어서다.


일단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서 물을 만나면 호흡부터 망가진다. 물 속에서 숨 쉬는 걸 깜빡해 버린다. 즉 날숨을 제대로 뱉지 않은 채 뻐끔대는 붕어처럼 물 밖 숨을 들이킨다. 당현히 입과 코로 공기가 들어올리가 만무하다. 물 속에서 비워내지 못한 호흡주머니에 쓸데 없는 헛 숨이 차버려 호흡이 금세 가빠진다.


다시 물 속에서 숨을 잘 뱉어주면 다행이겠지만 초보는 호흡양 조절에 실패하기 십상이다.


결국 중간에 잠시 서서 숨을 고르고 다시 출발할 수 밖에 없다.




  




물 속 호흡을 위해서 내가 먼저 셋팅한 마인드 값이 있는데 그건 바로, '수영을 하면 당연히 숨이 가쁘다.'는 사실이었다. 자유자재로 쓰던 기능을 상실할 수 밖에 없는 곳에 들어왔는데 어찌 '숨 쉬듯 편안하게' 호흡을 하려고 한단 말인가. 그건 교만이야 라며 자기 암시를 걸었다.


어릴 적 물에 빠져 익사 할 뻔한 나에게는 이 자기 암시가 꽤 효율적이었다. 숨이 가빠지는게 당연하거다라고 인식이 되자 그 뒤로는 숨을 컨트롤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고 나서 '오-!' 하며 깨달은 것이 바로 들숨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날숨이라는 것이다. 잘 내뱉어야 잘 들이마실 수 있다는 것. 즉, '비워낸 만큼 채울 수 있다는 것.'


물 속에서 날숨을 신경쓰고 나니 호흡이 조금은 트인 기분이었다. 사람마다 맞는 방법이 다르겠지만 몇 차례 시도한 결과 나에게 맞는 날숨은 이거였다. 날숨의 타이밍은 왼팔을 돌리고 그 다음 오른손으로 물을 밀을 미는 순간부터 숨을 내뱉는 것. 그리고 한 번에 너무 많은 양을 뱉지 말고 균일하고 적절한 숨을 뱉는 것.


호흡이 잘 되는 날 마시는 물 밖 공기는 아주 달콤하다. 마치 헉헉대며 열심히 산을 오른 뒤 정상에서 맛보는 그런 달콤한 공기같다. 잘 비워낸 만큼 채워진 알맞은 숨은 앞으로 나갈 원동력이 되어준다. 아주 건강한 숨이다.


'비워낸 만큼 채운다.'


너무나 교훈적이고 철학적이지 않은가.

다른 운동보다도 수영이 주는 깨달음은 뭔가 더 인생과 맞닿아있는 것 같다. 내가 아직도 생존수영 중이라서 그런가 싶기도...ㅎ


날숨을 잘해야지, 비워내는 걸 잊지말자를 깨달은 날 수영을 끝내고 집에 가는 길에 요즘 나는 무엇을 꼭 붙잡고 토해내지 못하고 있는가 성찰했다.


이제 안 입는 옷들은 미련 없이 버릴 수 있고 배부르면 수저를 탁 내려놓을 수도 있는데 유독 사람에 대한 회의감이나 나에게 취약한 부정적인 생각은 쉽사리 비어내기가 어렵다. 건강하게 흘려보내지를 못해서 나도 모르는 사이 잠식되고 있던 적이 많다.


그렇게 잠식 된 날에는 기력이 없다. 아무 의욕도 아무 것도 하기 싫어 회피하고 또 회피한다. 가장 좋은 판타지는 꿈 속이다.


도망치듯 달아난 꿈 속에서 나는 수영을 하고 있었다. 안되던 평영을 하고 있는데 꿈 속이라 그런지 선수급으로 잘하고 있는 것 아닌가.


자, 팔은 너무 많이 벌리지 말고 팔꿈치를 세우고 겨드랑이를 붙이고 밀어주기! 발은 발바닥보다는 발 아치 쪽을 이용해 물을 밀어주는 것!


그렇게 개구리마냥 쭉쭉 나가는 모습이 클로즈업 되었는데 꽉 끼는 수모에 꽉 끼는 물 안경을 끼고 있는 내 얼굴도 너무 멋있었다. 그러다 문득 알아차렸다. 어? 나 왜 이렇게 호흡이 편해?


물 밖에서 하는 호흡만큼이나 편하게 할 수 있던 이유는 역시나 날숨이었다. 어찌나 날숨의 위력이 센지 물 속에서 내뱉는 뽀글뽀글뿌글뿌글 공기 방울이 장난이 아니었다. 흥분한 말 같이 거칠게 뱉어낸 뒤 숨을 들이키자 공기가 폐에 가득 들어왔다. 흉식이 아닌 복식으로 숨을 쉬며 그 추친력으로 끝도 없는 레일을 향해 돌진했다. 앞으로 달려나가는데 방해하는 저항은 아무것도 없었다.


마치 물 속을 달리는 경주마같다고 느끼며 잠에서 깼다. 원래 이렇게 회피성의 꿈에 갔다오면 몸이 무겁고 괴로운데 희한하게도 그 날은 뭔가 무척 가벼웠다. 꿈 속에서라도 숨을 잘 비워내서 그런가 아주 개운했다.


눈 뜨자마자 얼른 수영 배우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중얼거렸다.  


요즘도 사람에 대한 회의감이나 부정적인 감정들을 어떻게 해야 잘 비워낼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예전의 방법이 아닌 지금의 나에게 맞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잘 모르겠으니 우선 복잡한 머리를 비우고 힘을 뺀 채 현실의 물살에 몸을 맡기는 중이다.  


그래, 뭐 우선은 숨 쉬는 것만 잊지 말자!


육체적, 심리적 컨디션을 잘 관리하며 오래 오래 수영을 하고 싶다.

왜냐

수영은 재밌으니까!


내 인생도 일단은 재미있으니까 잘 살아가보자!

왜 안돼?

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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