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 그리고 사랑
한 때 유럽 사람들은 토마토를 악마의 음식이라 하며 먹지 않았다. 독성이 있는 맨드레이크와 닮았다고 하여 토마토를 향해 불쾌감을 표하며 손가락질을 해댔다. 그리곤 죽음의 열매라고 불렀다.
꽤나 억울했을 이 토마토의 누명은 미 육군 존슨 대령과 제 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이 백악관 만찬으로 토마토 음식을 대접하면서 그제야 벗겨졌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오늘날, 토마토는 사람들에게 사랑 받고 있다. 비타민 C 하루 권장량의 절반이나 가지고 있는 토마토를 죽음의 열매라 부르며 기피하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다.
오해는 참 무섭다. 한 번 씌워진 그 색안경을 완전히 벗어내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무엇보다도 긴 시간 쌓이고 쌓인 오해를 풀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큰 용기가 필요하다.
토마토는 어떻게 보면 운이 좋았던 걸지도 모른다. 무려 육군대령과 대통령이 용기를 내어 오해를 풀어주었으니까.
- 네가 이런 식이면 그나마 관심 가져주는 마음 이제는 조금밖에 안 남았어.
최근에 엄마한테 장문의 카톡이 왔다. 요약하자면 저 말이었다.
비교적 최근인지 아니면 오래된 일인지 이제는 기억도 잘 안나지만 '아- 엄마는 내 편이 아니었구나.'를 깨달은 이후 내 태도가 많이 달라지긴 했다. 사무치고 사무친 그 깨달음 때문에 근 한달간 집 밖에를 나가지 못했다.
무기력이 심해서 제대로 씻지도 못했고 몸은 납처럼 무거웠고 내내 잠이 쏟아졌었다. 그래도 타고난 생존본능 덕분인지 마음 속에 무성히 올라온 부정의 잡초들을 억지로 쥐뜯어내며 산책을 하고 집을 치우고 내 몸을 게워냈다.
삶의 패턴은 되찾았지만 이후로 부모님 댁을 방문할 때마다 영혼을 갈아 끼워야 했다. 피를 물려주신 부모님에게 이해받지 못할 속마음을 웃음의 가면 뒤로 꽁꽁 숨긴 채로 온전히 있을 수 있는 시간은 딱 하루였다. 24시간 혹은 많으면 32시간정도.
그 이상이 되면 어김없이 무기력해졌다. 웃음이 나오지도 대꾸를 할 힘도 없었다.
이런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웃으며 최선을 다하는 내 모습에 부모님 마음은 활짝 열렸다. 부쩍 살가워진 연락. 너 주려고 챙겨둔 것이 있으니 집에 또 언제 내려오냐는 연락.
겉과 속이 달라 은은하게 쌓이던 스트레스가 어느 날 결국,
터졌다.
타이밍이 좋지 않게도 생리 전 증후군으로 인해 가뜩이나 예민할 때였다.
엄마한테 온갖 냉소와 퉁명스러움을 내비쳤더니 엄마는 매일 같이 보내오던 아침 인사를 끊었다. 이후 생리때문에 예민했다, 죄송했다고 톡을 보냈으나 읽고 답장이 없었다. 엄마는 내 생리증상을 잘 알고 있었다.
엄마한테 연락이 없고 일주일동안은
솔직히
편했다.
이대로 연이 끊기면 어떻게 될까 잠시 생각했다.
배부른 소리다 싶었다.
부모님 돌아가시고 나서 연락 자주 하지 않았던 것, 두 분의 모습을 영상에 많이 담아두지 않은 것 등을 제일 후회한다는 누군가 유튜브에 올린 숏폼을 보며 마음의 밭을 갈았다.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아빠한테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그래도 전화를 걸었다는 명분이 생겼으므로 그 뒤로 나도 하지 않았다.
며칠 더 지나 엄마가 나한테 장문의 카톡을 보냈다.
요약하자면 이거였다.
- 네가 이런 식이면 그나마 관심 가져주는 마음 이제는 조금밖에 안 남았어.
내가 한 답변을 요약하자면 이거였다.
- 이제는 부모님에게 내 마음을 이해 받을 기대가 전혀 없지만 자식으로서 최선을 다하긴 할 것이다.
그 뒤 엄마는 매일 보내는 아침 안부인사를 다시 보내기 시작했지만 프사가 이쁘다는 내 톡에는 답장이 없다.
어렸을 때 엄마가 주던 간식 중에 별미는 '설탕에 절인 토마토'였다. 유행했었던 스테비아 토마토 같은 느낌이랄까.
토마토를 4등분 해서 설탕에 조금 절여두면 토마토 즙에 녺은 설탕물이 생긴다. 절여진 토마토를 먼저 한 입 가득 물고 그 설탕물을 들이켜서 우적 우적 씹어 먹으면 환상적이었다. 건강하게 불량한 그 맛에 엄마한테 해달라고 종종 졸랐다.
하지만 토마토에 설탕을 버무리면 영양소가 파괴된다는 얘기를 엄마가 어디선가 들은 이후로는 설탕에 절인 토마토가 식탁에서 사라졌다. 대신 생토마토를 갈아서 만든 토마토 쥬스가 나왔다.
달달한 토마토를 못 먹는게 아쉬웠지만 시원한 토마토 쥬스를 꿀꺽 꿀꺽 들이킬 때면 엄마의 사랑을 먹는 기분이었다.
"비타민이니까 쭈욱 들이켜."
토마토 쥬스를 주면서 하는 이 말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보다 더 내 영양을 챙겨주는 사람, 건강을 챙겨주는 사람.
그게 엄마였다.
이제 우리가 서로의 마음을 오해하지 않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용기가 필요했다. 토마토의 오해를 벗겨내주었던 그들처럼
아직 나에게 용기가 남아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난
점점 작아지는 부모님의 모습을 못 본체는 못 할 것이다.
분명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