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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해 Apr 03. 2024

철학의 맛, 선택

김치찌개냐, 된장찌개냐.

물냉이냐, 비냉이냐.

후라이드냐, 양념이냐.

팥붕이냐, 슈붕이냐


언제부터인가 메뉴 선택에 신중을 가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단 하나,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이제는 먹을 수 있는 양이 한정적이었다.


음식을 다 먹고 접시까지도 씹어 먹던 영광스러운 옛 시절과 달리 하루 종일 빨빨 거리며 돌아다녀야 그나마 소화가 되는 위장을 가져버린 탓이었다. 세월 따라 육체의 기능들이 약해지고 있다.


한계가 명확해진만큼 선택은 신중해졌다. 이는 비단 식사 메뉴에서만 해당하는 일은 아니었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하고 싶은 일과 먹고 살기 위해 해야만 하는 일,

포기할 용기와 견뎌낼 용기

감당해야 할 무게와 떠나보내야 할 무게


두 갈래의 간극 속에서 선택은 늘 신중해졌다.


기면 기고 아니면 말고!


별 고민 없이 직진하던 예전과 달리 선택에 따른 책임감을 배운 뒤부터 더 조심스러워졌다. 이로 인해 명확해진 한계는 두 가지 다 잡을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는 분명히 있었고 또 잘못된 선택을 수정할 시간과 기회가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점점 없어져감을 느꼈다.   


만약 지금 한 선택이 틀리기라도 한다면 그것은 곧장 낭비로 이어졌다.


시간 낭비,

에너지 낭비,

감정 낭비,

인력 낭비


낭비였음을 깨닫고 다시 우회해서 돌아오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다른 사람들은 저 만치 앞서가고 있는데 나만 다시 원점 같을 땐 좌절스럽기도 했다.


그래서 조금 더 익숙한 길을 택하며 마음을 사리기도 한다.


늘 먹던걸로 주세요.


사실 이게 어떻게 보면 제일 편한 길이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보다 늘상 하던 걸 하고 반은 성공하는 것. 실패할 확률을 줄이는 효율적인 선택이자 지름길이다.  


그렇게 택한 길을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 또 남들에게 아쉬운 소리 하기 싫어서 내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해내야 하는데 이게 여간 쉬운 게 아니다. 결국 최종 선택을 미루고 또 미루다가 상황이 날 이끌어가주는 소소한 기적을 바랄 때가 잦아졌다.


그러나 나의 염치없음을 눈치 챈 기적이 속삭인다.


이건 네 선택이 아니었기 때문에 편할지언정 만족하지는 못할거야. 그리곤 날 탓하겠지.


그 속삭임을 모르쇠 하고 뻗대다가 끝내 철 없는 투정을 부린다.


사실은 내가 원하던 건 이게 아니었어!


남 탓, 상황 탓을 잔뜩 해보다가



혼자 부끄러워진다.






*깨알 김치찌개 맛집 추천*

강화도에 있는 “ 주연통삼겹 ” 삼겹살 맛있고 가격도 저렴해 현지인 맛집이다.

(밑반찬으로 나오는 꼬막무침도 굿이나 단품메뉴로 시켜먹는 건 추천하지 않음. 양념 맛이 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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