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는 말이야

라떼는 사실 죄가 없지.

by 겨울해



나 때는 말이야~


소위 꼰대라 불리는 이들이 궁금하지도 않은 지나간 과거에 대해서 일장연설을 늘어뜨릴 때 쓰는 말이다. 듣자마자 네네, 어이구, 아무렴요 하고 반응하게 하는 이 문장을 언어유희의 민족인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주 유쾌하게 바꾸었다.


라떼는 말이야~

부드러운 라떼(편의상 라테보다 라떼로 하겠다.)와 합쳐져도 듣기 싫은 말이다. 그런데 사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못할 말도 아니다. '나 때는 이랬어, 저랬어.' 하며 생색 아닌 생색을 낼 수 있을 정도로 시대는 빠르게 변화하기 때문이다. 하루아침에 달라져 있는 세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먼저는 과거의 발자국들을 이해해볼 필요는 있다. 그때를 지나왔기 때문에 현재가 있을 수 있기에 누군가가' 나 때는 말이야.' 하고 운을 뗀다면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여 봐야 한다. 꼰대가 아닌 경험자의 피가 되고 뼈가 되는 조언일 때도 분명히 있다. 내가 이렇게 길게 밑밥을 깔아 두는 이유는... 고백하건대 내가 '라떼는 말이야.' 였었기 때문이다.



잘 들어, 라떼는 말이야~ 죄가 없어. 그저 고소할 뿐.





내가 일했던 카페 점장님이 바뀌는 일이 있었다. 이전 점장님 계약이 만료되었고 나보다 늦게 들어온 아르바이트생이 새로운 점장님으로 채용되었다. 나에게도 점장 제의가 들어왔지만 당시에는 딱히 생각이 없었기에 뜨뜻미지근한 태도를 취했고 결과적으로 다른 아르바이트생이 점장이 되었다. 여러 모로 그분에게 필요했던 자리였기에 잘되었다며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그런데 이전 점장님과 새로운 점장님 간에 인수인계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뭐, 어떤 이유인지는 그들의 사정이라 치지만 문제는, 내가 애매하게 걸쳐있었다. 이전 점장님과 일했던 시간이 많았던 터라 새로운 점장님보다도 가게 운영 시스템을 더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최대한 '라떼는 말이야.'가 되지 않도록 애를 썼다. 나 땐(이전 점장님 때는) 이렇게 했고 저렇게 했다고 가르치는 꼰대 짓이 되지 않게(아무래도 새 점장님이 내 후임(?) 격으로 들어왔던 아르바이트생이었기에 상대에 따라 예민하게 느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가 실수하거나 어려워할 때면 최대한 배려를 했다. 그때마다 다시 알려드렸고 점장님은 고맙다고 답했다. 그런데 하나둘씩 내가 대답해준 대로 운영을 하지 않길래 이건 이렇게 하는 게 낫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새 점장님은 이전 방식에 대한 불만을 토해냈다. 그땐 그 때고 지금은 지금이지 하면서 필요 이상으로 비꼬는 듯한 감정을 표출하는 그가 불편했지만 어쨌든 머리가 바뀌었으니 그를 따르는 몸도 바뀌는 게 맞다고 생각해 딱히 말을 하진 않았다. 가끔 이해가 되지 않는 운영 방식이 있을 땐 점장님 스스로 시행착오를 겪어 보는 것도 필요하겠지 하고 '나 때 그럴 땐 이렇게 했다.'라고 부러 말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어쩌다가 '옛날에는' 하고 말이 나올 때면 점장님에게서 느껴지는 미묘한 거부감이 있었기에 나는 스스로 정신 승리를 하며 묵언수행을 했다.




다양한 '라떼'들





문제는 오후에 일을 하는 다른 아르바이트생들이었다. 이 아르바이트생들도 새로운 점장님과 비슷한 시기에 들어온 직원들로 매장에 적응 단계였다. 나는 오픈부터 오후까지 점장님과 일을 했고 내가 퇴근하고 나면 점장님과 다른 아르바이트생들만 남았다. 그러면 뼈대가 되는 시스템을 점장님이 잡아주어야 했는데 왜인지 모르겠지만 점장님은 그러질 않았다. 다른 아르바이트생들은 자연스레 각각의 방식대로 일을 꾸려갔다.


그러면 다음날 출근한 나는 당황스러운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마감 타임 때 해주어야 하는 일들이 구멍이 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몇 번 반복되자 점장님에게 부탁을 했다. 이런 건, 마감이 해야 할 일이니 말을 해달라, 그리고 물건 위치를 바꾸면 말을 해달라, 모르고 원래 자리에 있던 재료로 잘못 넣어서 나중에 알게 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면 점장님은 그래, 그건 좀 아니야. 알겠어, 내가 말할게 하면서 오후 타임에게 말을 하지 않았다. 돌이켜보건대 그들에게 사람 좋은 이미지를 유지하고 싶었던 것 같다.


결국 내가 직접 오후 아르바이트생에게 이야기를 하는 일이 많아졌고 나는 점점 가게의 악역인 '라떼는 말이야. 이렇게 했으니 이렇게 이렇게 좀 해'가 되어가고 있었다. 점장님은 그런 나를 보며 그들만의 일하는 스타일이 있는데 왜 그걸 바꾸려 하느냐며 말했다. 아니, 저기요. 그럼 나는요?! 그리고 그런 말을 할 거면 그 아르바이트생 욕을 하지 말던가요?


'라떼'가 지키려 했던 기존 시스템이 날이 갈수록 망가지기 시작했다. 오픈 아르바이트 생이 오픈과 점심 피크를 두 번 치뤄내기에 존중받던 사소한 것들까지 존중받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내가 '라떼는 이렇게 해줬어요.' 하며 불편한 심정을 드러내기도 전에 새로운 점장님은 '지금의 나는 말이야.' 하면서 자신의 첫 점장 역할이 얼마나 힘든지를 나한테 토로하기 시작했다. 아르바이트생들 앞에서 점장의 권위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던 그는 내가 어떤 손님의 말도 안 되는 컴플레인을 받아내고 있을 때 내 바로 등 뒤에 있었음에도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그는 나를 총알받이로 사용하는 비겁한 개혁자였다.


견디다 못한 내가 그에게 이야기를 했는데 철저히 그의 입장에서 바라본 나는,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꼰대였고, 옛날 일까지 들춰내는 생각이 많은 소심한 사람이었고, 감정적인 사람이었다. 반면 그 자신은 첫 점장이라 여러 가지 시도를 하다 보면 실수가 있을 수도 있고, 그럴 땐 바로바로 이야기를 해주면 듣겠다는, 이해심이 넓은 사람이었다.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의 로맨틱한 꼰대 앞에서 내 스트레스는 점점 극에 달했다.


고통스러운 시간은 이어졌다. 바쁜 점심시간 때에는 계산, 제조, 설거지 담당을 빠르게 순환하며 진행했던 나 때의 방식과는 달리 그는 절대로 계산이나 설거지 쪽으로 가지 않았다. 손이 빠른 나는 설거지, 계산, 제조까지 몸이 세 개였다. 커피 머신 앞에 붙박이처럼 서 있던 그는 닦을 것도 없던 머신 앞을 연신 닦았다. 그리고는 나를 불러서 점장으로써의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아무리 바빠도 머신 앞이 깨끗해야 손님들 보기에 좋은 거야.' 이 말은 내가 '라떼는 말이야.' 때 이미 여러 번 설명을 했었던 거였다. 심지어 다른 아르바이트생이 머신 앞을 너무 더럽게 사용해서 점장으로써 말 좀 해달라고 부탁했었던 내용이었다. 그런데 내가 그때 그에게 말했던 것들은 오래 방치해둔, 식어빠진, 비린 맛이 올라오는 텁텁한 라떼였고 그가 이 순간에 말한 건 갓 뽑은 따끈따끈한 에스프레소와 진한 우유가 되는 거였다.



라떼를 섞어 마시느냐, 그냥 마시느냐는 개인 취향. 개인 취향은 존중합니다.





어쩌면 이 사람과 나는 알게 모르게 출발선부터가 어긋났던 관계였을 수도 있다. 이 사람이 기존 방식에 대한 거부감을 보일 때, 나 역시 은연중에서는 '어디 한 번 해봐라. 내가 맞을 테니까.'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사람 역시 '이전 방식보다 내 방식이 맞다는 걸 증명해 보이겠어.'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짐작컨데 전 점장님의 운영 방식을 싫어했다.) 꼰대와 어른의 차이는 크다. '무조건 내가 맞아.'를 주장하는 꼰대와 다르게 어른은 상대방의 의견을 먼저 경청하며 성숙하게 소통하고 조율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어른답지 못했다.


'라떼'는 우유에 샷을 넣은 음료이다. 고소한 우유와 씁쓸한 샷이 어우러져 담백하면서도 맛이 좋다. 커피를 잘하는 집인 걸 알고 싶으면 아메리카노 대신 라떼를 먹어보라는 말도 있다. 그만큼 '라떼는 말이야~' 조화로운 음료이다. 이 라떼처럼 우리의 세상도 지나간 옛 것과 다가온 새 것들이 잘 섞여서 좋은 맛을 낼 수만 있다면 세상은 조금 더 평화로울 것 같다. 부드럽고도 진한 라떼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끝끝내 어른답지 못한 뒤끝을 부리자면 이 경험으로 미루어 뼈저리게 깨달은 것 중 하나는, 꼰대는 본인이 꼰대인 걸 모른다는 것이다. 알려줘도 모른다. 그러니까 그 사람을 바꾼다거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 말자. 특히나 그게 직장이라면 더더군다나. 그냥 당신 마음이나 챙기고 할 것만 하고 마는 것이 훨씬, 훠어어어얼씨이이이인 이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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