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했던 오피스 상권의 카페는 낮은 테이블, 그리고 몇 개의 의자만 있어 홀 손님보다는 테이크아웃 손님이 더 많은 작은 카페였다.
오전 8시 30분쯤에 오시는 연세가 지긋하신 아저씨 한 분이 계셨는데 그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시키고는 의자에 앉아 약 20분 정도 영어공부를 하셨다.
핸드폰에서 엄청난 억양을 가진 외국인이 문장을 읽어주면 아저씨는 큼큼! 하며 목을 가다듬고 그 문장을 따라 읽는 식이었다.
분명히 커피를 주문할 때는 조곤조곤한 작은 목소리였는데 희한하게도 영어를 따라 할 땐 우렁차고 굵은 목소리가 되셨다. 처음엔 누가 싸우나? 싶어서 흠칫 놀랐을 정도였다.
작은 카페에서 이어폰 없이 영상을 시청하며 큰 목소리로 떠드는 손님이 진상일 법도 한데, 어쩐지 나는 그 당당하게 큰 목소리가 싫지 않았다. 아저씨의 발음은 썩 좋진 않았으나 억양만큼은 선생님을 따라 명확했는데 그 리듬이 내 귀에는 카페에 흘러나오는 음악보다 감미롭게 들렸다.
이유는 아저씨가 영어공부를 대하는 태도 때문이었다.
정갈하게 자리에 앉아서 목을 가다듬으며 그 짧은 시간 동안 집중할 준비를 하는 그 모습은 주입식 교육으로 이루어진 학교나 학원가의 학생의 모습이 아니었다. 단순한 스펙을 위함이 아닌 자신의 인생을 대하는 진중한 어떤 태도였고 그건 단연 돋보였다. 덩달아 그의 공간에 함께 하게 된 나도 또 한 명의 진중한 학생으로 물들어 어깨 동냥으로 같이 공부를 했다.
아저씨는 공부를 하시다가 손님이 오면 목소리를 줄이거나 금방 자리를 털고 일어나 출근을 하셨는데 생각보다 빨리 가시는 날엔 아쉽기까지 했다. 덕분에 아침을 알차게 보냈기 때문이었다.
아저씨가 가고 나면 그의 열정을 이어받아 오늘 하루 내가 해야 하는 것들을 적어내려 갔다. 그리고 아저씨처럼 허리를 곧추세우고 목청을 가다듬으며 속으로 외쳤다.
오케이! 아이 가릿!
그분이 적지 않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하게 되신 계기야 잘 모르겠지만 그분의 태도는 나에게 정말로 좋은 자극을 주었다.
세월이 쌓일수록 시작하지 못하게 하는 타당한 이유들이 굉장히 많아졌다. 늦은 것 같아서, 시간이 없어서, 해봤자 못 할 것 같아서, 이미 해봤기 때문에, 돈이 부족해서 등등.나도 모르는 사이 정의 내려진 지지부진한 한계를 어느 날 등장한 늦깎이 학생 한 명이 보여준 공부에 임하는 태도가 잘게 깨부숴주었다.
그래, 하려고만 하면 뭔들 못하랴. 또 뭔들 못 즐기랴. "Okay. I got it!"을 크게 외치는 늦깎이 학생의 표정이 저리도 행복해 보이는데 그 누가 못하게 말리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