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싫은 짓을 네가 하잖아.

연인의 눈썹

by 겨울해

카페에서 어떤 연인이 싸웠다. 눈썹 때문이었다. 여자는 눈썹칼을 들고 남자의 눈썹을 깎으려 했고 남자는 싫다고 했다. 그들은 팔을 엎치락뒤치락하며 눈썹의 생명을 두고 격하게 싸웠다. 여자가 살짝 삐친 듯 콧바람을 크게 내쉬었다.


는 "내가 싫다고 얘기했는데 지금 oo가 자꾸 강요하잖아"

여자는 "나한테 맞춰주지를 않네."

남자 "다른 남자 만나면 이러지 마."

여자 "지금 그 말 뭔데? 나랑 계속 안 만난다는 거야?"

남자 "아니, 혹시 또 모르잖아. 계속 oo가 이런다면."


그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에 따라 노트북으로 다른 일을 하고 있던 내 손이 점점 느려졌다. 저러다 몸싸움 나는 거 아니겠지? 슬며시 내 아메리카노를 보호하기 위해 컵을 안쪽으로 당겼다.


여자는 아무 말 없었다. 남자도 아무 말 없었다. 두 손은 맞잡은 상태였고 여자는 눈썹칼을 들고 있었다. 둘은 서로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니, 살다 살다 카페에서 눈썹을 깎아주네 마네로 싸우는 커플은 또 처음 보네.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찰나에 여자가 기습적으로 눈썹칼을 갖다 댔다. 남자가 아이씨 거리며 손을 당기려고 했지만 여자의 손이 야무졌다. 이번엔 남자가 콧바람을 내쉬며 포기한 듯 눈을 감았다.


여자가 "너 더 멋있어지라고."라고 하는 걸 보니 억지로 눈썹을 미는 게 조금은 미안했나 보다. 그런데 뒤이어 "그래야 다른 여자 만날 수 있지. 이게 나 좋다고 하는 거냐?"라고 하는 걸 보니 또 아닌가 보다. 그들의 2차전이 시작된 것 같다. 그야말로 손에 (눈썹) 칼을 달콤 살벌한 커플이다.


남자는 "지금도 충분히 괜찮거든?"

여자는"야, 나니까 너를 만나주는 거지."

남자는 "나니까 네 성격을 받아주는 거지."


창과 창의 싸움이었다. 매서운 말로 서로를 찌르고 후벼 파면서도 막상 눈썹을 깎아주는 손길은 그렇게 다정다감할 수가 없다. 아프지 않도록 조심조심 1mm씩 깎아주는 그녀의 모습과 언짢아하면서도 또 고개는 잘 들어주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아메리카노를 꿀꺽꿀꺽 마셨다.


사랑은 참 어렵다. 아니지, 연애가 어렵다. 아니지, 관계가 어렵다 어려워. 저 두 사람의 마음이 다 이해간다. 내가 원하는 대로 좋아하는 사람이 찰떡같이 맞춰주면 좋으련만 내 마음처럼 상대방이 움직여 주지 않을 때면 그렇게 실망스러울 수가 없지. 때론 섭섭하다 못해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도 있다. 아니, 자기야. 날 사랑한다면서 이 정도도 못해줘?


이 수순이 비단 연인관계에만 해당할까. 가족, 친구를 포함한 친밀한 관계에서도 늘 기대와 실망이 존재한다.


그래, 결국엔 우린 인정해야만 한다. 아무리 정신적, 육체적으로 가깝더라도 타인은 타인이고 나는 나라는 사실을. 끝내는 다른 사람이다. 우리 서로 사랑하잖아, 그러니까 네 마음이 곧 내 마음이라는 게 아니라는 거다.


핏줄로 연결된 가족끼리도 마음이 그렇게 다른데 하물며 몇십 년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두 남녀가 만났으니 오죽하랴. 서로 양보하고 깎여가며 맞춰야 하는 지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 협의점을 경청과 공감을 기반한 대화로 풀어가느냐, 살아온 내 성질대로 밀고 가느냐의 차이로...


여기까지 의식의 흐름대로 생각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여자가 갑자기 두 주먹으로 남자의 머리를 세게 내리쳤다. 꽤 아프게 맞았는데도 불구하고 남자의 반응을 보면 남자가 또 말로 여자를 후벼 판 모양 인다. 뭐라고 했는지는 듣지 못해서 모르겠지만 깜짝 놀라 내가 쳐다봤는데도 남자는 익숙한 상황인지 아무렇지 않게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이게 과연 이별의 현장인가 데이트의 현장인가 하며 다시 아메리카노를 안쪽으로 당기고 있는데 여자가 '나 화장실' 하고 자리를 떠나버렸다.


나는 짐짓 아, 저 여자분 눈물을 닦으러 갔나 싶었는데 이윽고 돌아온 여자가 아무렇지 않게 겉옷을 챙겨 입으며 말했다.


여자가 "밥 뭐 먹을 건데?" 하자 남자도 겉옷을 입으며 "너 고기 먹고 싶다며. 삼겹살 먹자." 했다.


그렇게 그들은 아직은 연인인 채로 카페를 나갔다. 폭풍같은 옆자리 커플의 뒷모습을 보며 내 의식의 흐름이 마저 이어졌다.


상처를 주고받는 것에 있어 사랑이라는 허울 좋은 이유를 갖다 붙이지 않으려면 먼저는 '아, 이 사람은 나와는 다른 사람이구나.'를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내 것을 강요하지 않고 상대방의 요구도 존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눈썹을 밀 수도, 안 밀 수도 있는 거는 여자가 아닌 남자의 선택인거고, 근데 또 남자도 여자에게 말을 그렇게 하면 안 됐지.


... 근데 이것들이 카페에서 뭐하는 짓들이여. 증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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