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틀리지 않았는데요

난 좀 많이 틀린 듯요

by 겨울해

회사란 다양한 이해관계가 존재하는 곳이다. 오피스 상권의 카페에서 일하며 마주친 그 관계들은 드라마 미생을 떠올리게도 하고 먹이사슬을 다룬 자연 다큐멘터리를 떠올리게도 한다. 다양한 이해관계가 있는 그곳에서는 정해진 자신의 위치를 치열하게 지키려는 사람들이 카페인 수혈을 하러 많이 온다.


아침 출근길엔 혼자 오는 분들이 많고 점심 직후에는 직급의 높낮이가 있는 회사 선, 후배 (직급과 직책이 다양하니 편의상 이렇게 통일하겠다.) 함께 다.


사적으로 친밀한 관계끼리 오기도 하지만 개 중엔 어떤 이해관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함께 식사를 끝내고 선배가 자발적으로 커피를 쏘겠다 하여 온 젊은 팀들이 있다. 서로 웃고는 있으나 묘한 어색한 예의와 선긋기가 있는 그런 분위기다.


"헤이즐넛 아메리카노 따뜻한 거랑요, 뭐 먹을래?"

"아, 사주시는 겁니까?"

"먹고 싶은 걸로 드세요."


대충 이런 결의 대화가 하... 하... 호... 호 그들 사이에 오간다. 그럼 나는 헤이즐넛 아메리카노 따뜻한 걸 포스에 찍고서 고를 때까지 기다릴 수 있다는 표정을 지어준다. 이럴 땐 보통 너도 나도 눈치 보느라 즉각 즉각 주문을 안 할 때가 많 때문이다. 음료를 쏘려는 선배는 카운터 앞에서 손짓하지만 나머지 대접받는 사람들은 멀찌감치 떨어져 머뭇 거린다.


"아... 그럼 저는 아메리카노요."

"아... 저도 똑같은 거 먹겠습니다."

"저는 복숭아 아이스티요."

"먹고 싶은 걸로 드세요~ 이거 맛있어 보이는데."

"저는 카페 오면 원래 이것밖에 안 먹어요."


나는 그들이 나눈 대화를 주워 담아 포스기에 찍는다. 아메리카노 두 개와 복숭아 아이스티... 그동안에 선배는 한 차례 더 비싼 걸 먹으라고 권한다. 하지만 후배들은 괜찮다며 손사래를 치며 뒷걸음질 치며 카운터에서 점점 멀어진다. 이 즈음에 나는 오지랖을 부리며 한 차례 질문을 던지며 주문을 진행한다. 그러지 않으면 창과 방패처럼 '먹어라.' '아니다.' 하는 그들의 대화가 끝이 나질 않는다.


"아메리카노는 차가운 걸로 드릴까요 뜨거운 걸로 드릴까요?"


그러면 선배가 '뭘로 할래?'라고 계속 뒷걸음질 치던 후배들에게 다시 묻는 동시에 카드를 포스기 옆으로 들이민다.


카드를 건넨 선배가 나에게 집중할 확률은 열에 홉으로 없다. 배에게 이 음료를 쏘는 행위는 선배로서의 위신과 체면을 차리는 일이어서 집중할 대상은 후배들이고 후배들도 원만한 사회생활을 위해 선배에게 집중하고 있다. 어쨌든 서로가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나 역시 카페지기 NPC로서 최선을 다해 들은 대로 정확히 차가운 거 한 잔, 뜨거운 거 한 잔을 포스에 찍어 계산을 한 뒤 서둘러 음료를 제조한다. 샷을 뽑고, 아이스티를 열심히 저은 후에 픽업대에 올려놓는다.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를 AI마냥 외치려는데 들려오는 불안한 목소리.


"어? 뜨거운 거?"


불안하다. 불안해.


"전 아이스."

"저도 아이스인데..."


음료를 대접받은 후배들이 눈치를 보며 말을 얼버무리면, 선배 해결사 같은 든든한 표정으로 나에게 짧은 반말로 쏘아붙인다.


"저기요, 아이스로 두 잔 시켰는데."


자, 이제 이 컴플레인에 대한 선택은 내 몫이다. 정색을 하며 '아닙니다. 고객님. 고객님께서는 분명히 아이스와 뜨거운 거 한 잔 씩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못 믿으시겠다면 우리 조금 전 상황으로 돌아가 볼까요?' 라며 시간을 돌리는 마법사가 되거나, 그게 아니면 후배의 음료를 지키지 못한 선배가 되어버 이 사태에 대해 무한한 안타까움을 표하면서 '어머, 그래요? 분명히 아이스 한 잔, 뜨거운 거 한 잔 시키셨는데...'


대충 여기까지의 프로세스를 밟으면 선배들은 두 가지 타입이 나뉜다. 후배들에게 '미안하다, 내가 잘못 시켰나 보다.' 하고 시인하며 '어떡하지.' 하며 난감해하는 타입과 '괜찮습니다. 그냥 마실게요.'라고 하는 후배 앞을 열정적으로 가로막으며 직원한테 '다시 만들어주세요.' 하고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타입이다. 뭐가 됐든 나는 선배들의 체면을 차려주기 위해 웬만하면 음료를 다시 만들어드린다.


후자의 타입 중에서 유독 기억에 남는 선배 손님이 있었다. 자신의 주문 실수를 인지하지 못한 작은 체구의 그녀는 정색을 하며 내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아이스 맞는데? 나는 틀. 리. 지 않았는데요?"


'나는 틀리지 않았다.'를 스타카토로 찍은 그녀는 새로운 샷을 추출하고 있는 내 뒤에서 다시금 중얼거렸다.


"분명히 아이스 두 잔이라고 말했는데, 난 안 틀. 렸. 는. 데."


그리고 그녀는 다가온 후배에게 지막으로 한 글자 한 글자 힘주어 말을 했다.


"난 진짜 안. 틀. 렸. 어. 제대로 말했는데 저분이 잘못 들었네."


정색을 하며 말하는 그녀의 틀리지 않았다는 주장이 참 의아해서 어떤 식으로 대꾸를 해야 하는지 감이 안 잡혔다. 누구의 잘못이건 간에 이 작은 실수가 자신이 '맞고 틀리고'라는 단어를 선택하면서까지 변호할 일인가 싶었다.


다시 만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드리며 '맛있게 드세요.'라고 인사를 건넸지만 돌아오는 대답 대신에 그녀는 일회용 컵을 들더니 음료를 요리조리 살펴봤다. 대로 맞게 나왔는지 검수를 끝낸 선배는 후배들을 이끌며 떠나갔고 나는 완전히 틀리고 또 틀려버린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싱크대에 부어 버렸다.


그녀는 일 할 때도 후배들의 작은 실수를 용납하지 못할까? 니면 배 앞이라 그랬을까?아니, 쩌면 후배들에게 제대로 맞는 음료를 주고 싶었던 좋우 선배 수도 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지만 그래도 왜인지 그녀의 '절대 틀리지 않았다.'라는 주장이 마음이 아팠다. 마치 그녀는 틀리기라도 하면 선배로서, 사람으로서 큰일이라도 나는 것 같았다. 가 '맞아요, 당신은 틀린 적 없어요.''라고 말해주었다면 그녀의 여유 없는 눈빛이 조금은 풀렸을까 싶다.


그런데 인생에 정답이 어디 있겠는가. 많이 틀리고 실패하면서 찾은 나만의 오답노트를 쌓아가는 게 인생이자 경험 아니겠는가. 차츰 실수를 줄여나가며 마침내 이룬 작은 성공을 쌓아가는 것, 그리고 그런 하루하루가 쌓이는 것, 이게 올바른 답에 가까운 것 아닐까. 작은 체구의 선배가 지키고자 했던 정답은 뭔진 모르겠지만 아이스 아메리카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선배, 오늘도 나는 완전히 틀렸는걸요. 니까 인생 선배들도 다 틀리더만요. 어쩌겠어요~ 우리 내일은 덜 틀려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