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카페를 오픈 한지 한달이 지났다. 그리고 순이익을 계산하고 현타가 왔다. 승모근이 바짝 올라가며 뒷목이 뻐근해졌다. 운 좋게 받은 단체주문이 아니었다면 이보다 더 마이너스였을거라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다음달에도 단체 주문이 있으리란 보장이 없으므로 출혈이 컸던 배달료를 올렸다. 배달앱은 수수료를 떼고 나니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가져가는 격이었다. 일처리라도 깔끔하면 그에 따른 값어치겠거니 하고 위안했을텐데 그건 또 더더욱 아닌지라 제일 열통 터졌다.
첫 달은 요령이 없어서 솔직히 손해보는 장사를 했다. 그래도 손님을 맞이하고 음료와 디저트를 신나게 팔았다. 그렇게 장사를 할 때는 몰랐는데 들인 시간과 노동에 대한 결과값을 보고나니 정말로, 현타가 세게 왔다. 죽어라 일했는데 남는 게 없다니. 이게 뭐람?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카페를 운영하는 지인들의 만류, 아버지의 현실적인 이야기, 아르바이트생일 적 만났던 속 좁던 사장님 등등 별의 별 사람들이 다 떠올랐다. 그리고 그 생각의 끝은 나를 향한 비웃음으로 가득찼다.
'너는 뭐가 그리 잘나서 그 사람들의 말을 흘려들었니. 잘난 척 하더니 꼴 좋다.'
흘러나오는 비웃음을 막을 수 없었다. '당연히 삼개월은 지나야 알 수 있지' 하고 속 깊은 어른인척 떠들어 대던 내 입술도 가소로웠다. 끽해야 한 달하고 이렇게 힘들줄이야.
충분히 비웃고 나니까 꽤 아픈 깨달음이 스멀 스멀 올라왔는데. 이제야 비로소 아버지의 인생이 이해 된다는 거였다. 그렇게 싫어했던 아버지의 돈돈돈 거리던 입버릇, 한숨, 찌푸린 미간에 정당성이 부여가 되자 마음이 찢어지게 아팠다.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건 꽤 슬픈 일이었고 그게 내 부모님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중학생 시절, 나는 늘 '돈 없어.'가 입버릇이었고 그 때문에 친구들과 종종 싸웠다. 하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많던 그 시절, 서러울때면 아버지를 마음껏 원망했다. 돈이 없는 현실보다 내 마음을 가난하게 만들고 쪼그라지게 내버려 둔 것에 대한 원망이었다.
훗날 알았지만 우리 집은 생각보다 돈이 있었고 충분히 할 수 있던 것들이 많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있다가도 없어질 그 숫자에 항상 불안해 하며 마음까지도 꽁꽁 싸맸다.
나는 '아버지처럼 돈에 집착하며 살지 않을거야.'를 매번 외쳤지만 그렇다고 경제적 자유를 독하게 쌓지도 못했다. 기본 성향 자체가 예술가적 기질이 컸다. 충동적이고 즉흥적인데 경제관념까지 부족해 모은 돈이 없었다. 아버지는 나를 이해 못했고 나는 아버지를 이해 못했다.
이랬던 내가 카페 사장이 되어 비로소 아버지가 이해 되어버렸다는 건, 아버지는 나에게 더이상 악역으로만 남아 있을 수 없다는 의미였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찬란한 내 어린 시절을, 지금의 나보다 고작 몇살 더 많았을 아버지가 찢어놓았던 아픔들을 이제는 털어내야 한다는 거였다.
부모와 친구가 전부였던 그 시절을 생채기를 냈던 건 대부분 경제적 요인들로 인해 초래된 마음들이었다. 그 마음들이 이해가 되다니. 너무 비통했다. 비통이 꽤 묵직한 단어지만 나는 정말로 비통했다. 그간 내가 진짜로 철이 없던 건지, 아버지의 한 섞인 슬픔을 계속 외면하고 싶었던 건지, 아니면 이제는 스스로에게 낡아 없어진 것들을 생생한 척 계속 붙들고 싶었던 건지.
나는 어른이다. 어린 시절 받은 아픔들은 스스로가 성숙하게 안아줘야 한다. 부모님은 해줄 수 없다. 하나 하나 다시 들추고 꼬매기엔 우린 너무 멀리 서툴게 걸어왔다.
돈이 없으면 행복할 기회가 현저히 줄어든다. 내게 떨어지는 이익을 계산하고 난 다음의 내 기분은 밑도 끝도 없이 가라앉았고 열심히 한 만큼 자존감도 바닥이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행복이 찾아와도 그게 행복인지조차 알아차리지 못할 것 같다.
아버지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내 아버지는 전대미문의 IMF를 겪었고 한 순간에 낭떠러지로 고꾸라졌었고 가장이라는 책임감을 붙들고 사업을 했지만 그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렇게 어린 자식들을 몰아 붙였을까. 너희들만큼은 이런 고생 하지말라고 그러는거다 라는 말을 그래서 그렇게 사무치게 토해냈을까. 돈이라는 것의 양면성을 알기에 아버지는 늘 억울함을 안고 살았을까.
누군가는 고작 한 달 운영해놓고서 너무 깊게 생각하는 것 아니냐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켜켜히 쌓인 그 사람의 세월과 무게를 당사자가 아니고서 어찌 가늠할 수 있을까. 아무리 부모 자식이여도 상대방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건 쉽지 않으니 말이다.
철없던 이상주의자였던 내가 아버지가 살아온 현실을 뒤늦게야 비로소 바라보고 있다. 죄송스러웠다. 내가 받은 상처에만 큰 값을 계속 매기고 있었다.
돈이라는 게 없어졌음 좋겠다고 지금도 종종 생각한다. 성경에도 재물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나온다. 돈은 사람의 정신을 갉아 먹기에 누군가의 노동과 노력의 결과값이 돈으로만 치부되어서는 절대 안된다. 하지만 자본주의 시대에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자원이다. 그게 그놈의 지겨운 돈이다.
자,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글쎄,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래도 이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은 분명히 있다. 카페를 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들이다.
한바탕 비웃고 아파했더니 마음의 탄성이 슬슬 돌아왔다. 결심하고 또 결심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나의 시간과 노력의 결과값이 돈으로만 결판나지 않도록 할 것이다.
먼저 주변을 더욱 사랑해야겠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하는 나를 더욱 사랑해야겠다. 어렸을 때 '엄마, 아빠. 세계 일주 시켜드릴게요.' 라고 썼던 그 편지 내용이 문득 기억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