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기록] 7. 외로움을 견디는 하나의 방법

by 겨울해

카페를 하면서 제일 힘든게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외로움' 이라 답할 것 같다. 나 같은 경우 1인 운영에 개인 카페라서 여러 결의 외로움이 겹치고 겹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압축된 고독감에 밤새 몸부림치다가 울며 잠들었다. 그런데 그 농축된 감정을 추스를 시간이 없다는 것이 차디찬 현실이었다. 장사란, 시간과 영혼을 갈아넣어야 그나마 본전이라도 뽑아 낼 수 있는 업이었다.


감정을 흘려 보내주지 못하는 시간이 쌓이자 슬슬 겁이 났다. 막히고 고였던 감정들 때문에 상담까지 받았었는데 결국 같은 과오를 범한다면 그 때와 지금, 직업만 달라졌을 뿐 나라는 사람은 다시 원점 아닌가. 터지기 전에 미리 약을 칠 필요가 있었다.


감정을 마주하기 위해서 먼저 외로움의 결을 하나하나 뜯어서 정리해 보았다.






1. 동역자의 부재

몸은 하난데, 해야 할 일은 열 가지였다. 버겁다 싶을 땐 일의 우선순위를 잡고 순차적으로 해결해 나가며 '할 수 있다.'고 늘 되새기며 멘탈을 잡아갔지만 무언가를 결정해야 하는 일이 생길때마다 멘탈은 많이 흔들렸다. 나와 머리를 맞대며 함께 의논해주고 그 결정에 확신을 강하게 심어줄 수 있는 동역자가 눈씻고 봐도 없음이 사무치게 외로웠다. 하다못해 신메뉴를 개발했는데 배가 너무 불러서 먹기 싫을 때 혹은 이미 내 입에는 익숙해져서 더 이상 객관적인 판단을 하지 못할 때 옆에서 먹어줄 누군가가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었다. 아, 이게 혼자서 왕관을 쓰려는 자의 무게인가 싶었다. ...사실 왕관도 아니라 생고생의 면류관이지만...


2. 정리 되는 인간관계

의외의 발견인데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가게를 연다는 것은 인생에 있어 생각보다 큰 이벤트였고 친분을 유지해오던 상대방이 내 삶에 새로 생긴 이벤트에 진정한 관심을 가지느냐 아니냐가 태도에서 확연하게 보였다. '아, 이 사람은 말로만 나와 친하다고 했던 사람이었구나.', '아, 이 사람은 자기 필요할 때만 나를 찾았던 거구나.' 그렇게 서로간 깊지 않았던 관계의 선들이 정리가 되었고 나를 조금 더 외롭게 했다.


3. 나에 대한 고찰

위에 언급한 동역자가 있건 없건, 멀리서도 한 걸음에 방문해주는 고마운 지인이 있건 없건 내 인생은 내가 살아간다는 사실은 늘 변함이 없었다. 인생에서 내가 하는 모든 행위는 결국엔 '나'라는 사람에 대해 끊임없이 깨달아가는 과정이였다. 어렴풋이 알고 있던 나의 다양한 면모들이 가게를 운영하면서는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렇게 나는 또 다시 어딘가에 있었던 나에 대해 새롭게 알아가고 있었다. '아, 나는 완벽주의 성향이 확실히 있구나.' '이런 상황을 나는 불편해 하는구나.' 등등 나에 대해서 다시금 이해해 가고 있었다. 그리고 아다시피 이 과정은 무척이나 외롭고 쓸쓸하고 고독하다. 그럴 수 밖에 없다. 그 속엔 나 밖에 없으니까. 나와 대화를 나누고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외로움의 결을 이해하고 난 뒤에 '내 상황에 공감할 수 있으며 나아가 서로 힘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어디있는지 생각을 해봤다.


엥- 잠깐만.

1초만에 풉 하고 웃었다. '그런 사람'을 찾기가 너무나 쉬웠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대한민국에 카페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였다. 점포수는 9만개를 훌쩍 뛰어 넘었다. 바꿔 말하자면 그 말인즉슨 나와 같은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전국 각지에 넘칠 만큼 많다라는 이야기였다.


곧바로 개인카페이면서 1인으로 운영하고 있는 사장님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역시나 서울에서 제주까지 대한민국 전역에는 나의 동지들이 다양하게 분포해있었다. 너무 많은 인원이 모이면 잡음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적절한 숫자가 채워지자 모으기를 마감했다. 거진 한 시간도 안돼서 마감 한 것 같은데 이후에도 함께하고 싶다는 사장님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다들 정말 힘들었구나 싶어 왠지 모르게 애잔해졌다.


모인 분들 중엔 1인 운영자가 아닌분도 있었지만 그 정도야 오케이였다. 부부운영인데 뭐 갈라서라 할 수도 없고 부부일심동체라지만 각자만의 힐링이 필요하기도 하니까.


나는 단톡방을 힐링방이라 명명했다. 이 힐링방에서는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던 소소한 이야기들을 끄집어 낼 수 있었다. 단톡방은 순식간에 300개 이상의 톡이 오고 갔다. 가게를 운영하면서 생기는 크고 작은 일들에 대한 희노애락이 과거형으로 또는 라이브로 생중계가 되었다. 우리는 동지애와 전우애를 가지고 서로 위로해주고 응원해주고 서로의 꿀팁까지도 아낌없이 나눴다.


나도 손님이 없을 때면 단톡방에 "심심해서 정줄 놓음. 도망치고 싶어요." 하며 시덥잖은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낄낄 댔다.


그렇게 만든 방은 아직까진 문제 없이 힐링이 오고 가고 있다. 누군가 '로또 맞으면 카페타운을 열어서 1층은 누구 사장님 2층은 누구 사장님 3층은 누구 사장님 입주해서 같이 카페를 하자.'고까지 한다. 이 지독한 사람들, 카페 하면서 힘들다고 징징 땔 땐 언제고 또 카페 생각을 하는가... 물론 나도 '그렇게 하면 재밌겠다.' 하면서 동조하고 있다. 매도 맞아본 놈이 맞아보고 사랑도 해 본 놈이 해본다는게 틀린 말이 아닌가보다.


이 힐링방은 확실히 선기능을 해주었다. 숨가쁘게 일하다가 잠시 시간이 나서 겨우 앉아 멍 때리고 있을 때 한 손님이 들어오면서 '와, 놀고 있네. 장사 대충하는 거예요?'라며 던지는 농담 한 마디에 울컥하는 일이 줄었던 것이다.


이런 내 상황에 공감해주고 마음을 위로해줄 사람이 있다라는 것이 하루를 보내는데 얼마나 큰 힘이 되는가.


우리는 한 번도 만나본 적은 없지만 비슷한 상황과 입장인 것만으로 서로의 짐을 같이 들고 있었다. 제대로 동병상련중이고 각자가 각자를 긍휼히 여기는 중이었다.


개인적으로 정말 많은 변화였다. '힘든 일 있음 얘기 좀 해.'라는 소리를 듣던 내가 '나 힘든 것 좀 알아줘.' 하며 자진해서 사람들을 찾다니. 카페를 운영하지 않았다면 쉽게 변하지 않았을 면모였다.


'이제 나는 살아가며 누군가의 힘듦과 외로움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겠노라.' 마음 먹는다. 내가 그 사람의 상황이 되지 않는 이상 그 마음을 오롯이 이해할 순 없으리-


그래도 오늘 혼자 외로울,

또 누군가가 곁에 있음에도 외로울 사람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래주기 위해 정호승 시인의 시를 남겨본다.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수선화에게

정호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