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기록] 6. 에프킬러 마마

지킬 것이 있으면 강해진다

by 겨울해

나는 벌레를 끔찍히도 싫어하고 무서워한다. 그 어둠의 기운(?)을 느끼면 온 몸이 간지럽고 머리털이 곤두선채 일이 손에 안 잡힌다. 그렇기에 어디서든 마주치지 않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어쩔 수 없이 벌레를 발견해버린 나의 루틴은 대개 이렇다.




1. 못 본척 현실도피 하기

2. 끝내는 마주해야하는 현실에 땅이 꺼져라 한숨 쉬기 (지금 못 잡으면 더 끔찍할 것을 알기에)

3. 휴지 혹은 두꺼운 책을 잡은 뒤 어둠의 기운이 있는 곳을 향해 가늘게 실눈을 떠 자체 모자이크 처리하기

4. 한 번 더 현실 도피하며, 타협, 협박, 협상 해보기. '그러게 왜 내 눈 앞에 나타났어. 안나왔으면 너도 좋고 나도 좋잖아. 난 널 죽이고 싶지 않아.' 즉, 미친 사람 처럼 중얼거리기.

5. 이왕이면 빠르고 정확하게 한 방에 원샷 원킬 하기.

6. 실패하면 2번으로 되돌아가기. 조금 더 강력해진 4번을 중얼거리기.




순간의 머뭇거림으로 <5. 이왕이면 원샷 원킬>을 실패해서 원치 않게 두 번정도 이 루틴이 반복되면 그 땐 진정한 킬러로 변신한다. 나를 지키기 위한 분노가 공포를 눌러버리고 누구보다 냉정하고 차가운 킬러가 되어 한 마리의 생명을 무참하게 살생해버리는 것이다. 시중에 있는 여러 살충제를 써 봤지만 별 효과가 없다. 내 손이 곧 확실한 살충제이자 내가 곧 에프킬러다.


방금도 카페에서 왕 파리를 연달아 원샷 원킬로 죽였다. 그것도 세 마리씩이나. 저 루틴을 반복하지도 않았는데 세상 차가운 킬러로 금방 변신했고 쓸데없는 분노는 하지 않았다. 그저 파리를 - 대왕파리를 '얼른 죽여버려야겠다.' 라는 목적 하나만 있었을 뿐이었다. 두꺼운 노트를 능숙하게 휘둘러 원샷 원킬. 파리 옆에 있던 정체를 알 수 없는 벌레는 덤으로 죽였다. 와우. 이게 나야? 놀랍다.


내가 에프킬러가 된 이유는 단 하나. 카페에 올 손님의 안전과 힐링을 지키기 위하야.


우리 가게 앞에는 풀숲이 있어서 멍 때리고 그 푸릇함을 보기에 참 좋지만 대신 벌레들이 많이 출몰했다. 이 좋은 봄 날씨에 벌레의 침입을 막고자 문을 닫아 놓자니 카페 감성이 사라지고 문을 열자니 달콤한 디저트에 몰려드는 벌레 때문에 적잖이 골머리였다.


결국 지켜야 할 이를 위해 벌레 트랩을 곳곳에 설치한 뒤, 눈에 보이는 벌레들은 원샷 원킬로 죽여버렸다. 킬러는 생각하지 않는다. 몸이 먼저 반응할 뿐.


안개 낀 새벽에 바바리 코트를 입고 시가 한대 물고 있는 것 마냥 시니컬하게 죽은 벌레의 시체를 치우다가 문득 내가 잘 알고 있는 또 다른 킬러가 생각이 났다. 나만큼이나 벌레를 끔찍히도 싫어하는 여인, 바로 우리 엄마였다.






20대 중반, 하고 있던 일에 대해 한 차례 실패를 겪은 나는 월세 낼 돈이 없어 본가로 잠시 내려왔다. 트럭에서 내린 파란색 낡은 이삿짐 박스가 떠난지 오래 되어 이제는 내 방이라 부르기 낯선 곳으로 꾸역 꾸역 자리 잡았다. 가득 들어찬 짐을 보니 막막했다. 1인가구였으면서 짐은 또 왜이리 많은 거야.


'내 일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쓰지마.'를 가훈처럼 외치던 내가 이대로 돌아오기엔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그렇지만 서울의 방값은 비쌌고 수중에 돈은 없었다. 심리적으로 경제적으로 독립한 성인인 줄 알았던 나는 다시 힘 없는 아이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서울 자취방을 정리할 때 늘어진 마음까지 같이 싸맸다고 생각했는데 또 그런것만도 아니었나보다. 뭣부터 시작해야 할지, 한숨이 절로 나왔다. 다시금 풀어야 하는 마음의 짐들이 엉망진창이었다.


받아들이자. 속으로 되뇌었다. 괜찮아, 지금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과정인거야. 버릴 건 버리고, 가져갈 것만 가져가자. 인생은 여행이야. 앞으로 짐은 되도록이면 가볍게 싸.


...야, 어디서 괜찮은 척이야. 웃기고 있네. 객관적으로 봐봐. 지금 네 힘으로 이룬 게 아무것도 없어. 여행? 웃기고 있네. 낭만이 밥 먹여주냐? 돈도 없고 결과도 없는 주제에.


코끝이 시큰해졌다. 짐 정리는 해도 해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세상과 나에 대한 울분이 치밀어올라 거친 숨을 몰아 쉬었다.


그 때 엄마가 불쑥 들어왔다.


"방 정리 좀 도와줄까."


그녀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그 표정을 보자 숨겨놓은 내 실패를 들킨 것 같아 수치스러웠다.


"괜찮아."


혼자 있고 싶다는 말을 삼키며 고개를 저었다. 나조차 정리가 안된 이 곳을 침범받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는 방 안으로 성큼 들어와 내가 가지고 온 책 뭉치들을 책장에 꽂기 시작했다. 나는 꾹 참으며 박스에서 다른 짐들을 꺼냈다. 제발 엄마가 이 이상 그 어떤 말을 이 곳에 얹지 않기를 바라면서.


"서울에서 무슨 일 있었어?"


내 인상이 구겨진 캔마냥 확 접혀졌다.


"지금은 좀 냅둬요, 그냥"


나는 박스에 붙은 테이프를 거칠게 뜯었다. 엄마는 달래는 어투로 말을 이어갔다.


"아니, 생전 집에 잘 오지도 않던 애가 갑자기 들어온다고 하니까 무슨 일 있었나 걱정되서 그렇지."


"아악!!!'


나는 비명을 질렀다. 파란색 낡은 이삿짐 박스 밑에서 다리 많은 그것이 스물 스물 보였다. 돈벌레였다.


"저거 좀 잡아줘! 얼른! 아!아!악!"


나는 경기를 일으키며 미친년처럼 소리를 질렀다. 왜, 왜 불쑥 불쑥 들어오고 난리야, 나 좀 내버려두라니까!


불청객들의 방문이 지긋지긋했다. 심지어 돈벌레라니. 누구 놀려?! 실성한 것 처럼 몸을 파닥거리며 당장이라도 게거품을 물 것 같은 나를 보며 엄마는 휴지를 돌돌 말아 돈벌레를 향해 손을 뻗었다. 다리 많은 그 녀석이 빠르게 몸을 피하더니 그대로 엄마의 손을 타고 넘어갔다.


"윽!"


엄마가 숨 참은 비명을 낮게 질렀다. 다리 많은 그 녀석은 때를 놓치지 않고 책상 속으로 쏙 들어갔다. 나는 이성을 잃은 채 가지고 온 짐들을 파헤치고 책상을 밀며 난리 부르스를 쳤다. 어디갔어, 어디갔어. 내가 죽여버릴거야.


그 녀석이 다시 파르르거리며 나왔다. 이런. 마주한 그 놈은 생각보다 꽤 컸고 길었다. 아뿔싸. 순간 주저하고 말았다. 나는 벌레와의 기싸움에서도 졌다.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었다. 그 놈은 뽈뽈 거리며 제 집인양 의기양양 돌아다녔다. 억울함이 나를 덮쳤다. 왜 그래, 진짜 나한테 왜그래. 내가 뭘 잘못했는데, 나 좀 내버려둬 제발-


다 큰 딸이 엉엉 울어대자 엄마의 눈빛이 변했다. 지켜야 할 자식을 위해서 엄마는 기꺼이 킬러로 변했다. 2차전이 시작 되었다. 그녀는 주먹을 내리꽂듯 먼저 그 놈을 공격했다. 그 놈도 만만치 않았다. 몸도 길면서 어찌나 재빠르던지 킬러의 손을 타고 올라오려고 했다. 엄마는 또 다시 낮은 숨을 참았지만 이내 경이로운 스피드로 그 놈을 휴지 안에 가둘 수 있었다.


"눌러, 꾹 눌러!"


나는 두려움에 떨며 킬러에게 확인 사살을 요구했다. 마지막 한방. 휴지 뭉치를 방바댁에 짓뭉갠 킬러가 헝크러진 머리를 한 채 자신이 지켜낸 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해일처럼 밀려오던 억울함은 엄마와 눈이 마주치자 슬그머니 가라앉았다. 세상이 나를 등져도 내 편이 되어줄 사람, 그게 엄마였다.


엄마는 못된 벌레노무시키가 우리 딸을 놀래키냐며 휴지를 쥐어박았다.


“그래도 돈벌레 봤으니 돈 많이 벌겠네. 우리딸.”


나는 엄마한테 돈이 싫다고 한참을 징징거렸다. 엄마는 한참을 내 곁을 지켜주었다.






대빵 큰 나방이 가게에 들어왔지만 나는 킬러로 변신하지 못했다. 매장에 지켜야 할 손님이 없어서였을까. 마음을 다잡고 다가갔지만 어우야, 너 너무 커.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날 덮치고 있을 때- 딸랑. 단골 손님이 들어왔다.


"으악, 어서오세요. 잠시만요. 제가 저것 빨리 잡을게요."


"이리 줘봐요."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휘휘 저어 그 놈을 잡았다.


"아직 미혼인가봐요?"


그녀는 휴지로 나방시체를 치우며 나에게 물었다. 그랬다. 그녀도 누군가의 엄마였다.


이 세상에 진정한 에프킬러는 엄마들이다. 지킬 게 있는 어른인 척 했지만 역시 나는, 아직 그쪽 세계에 명함도 못 들이미는 쫄보였다.


에프킬러 마마들... 정말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