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기록] 17. 누구한테 선물하는 거예요?

우리 따스한 이야기 한 잔 해요

by 겨울해

나 어렸을 적(?)만 해도 선물은 큰 맘 먹고 하는 거였다. 특정한 기념일에만 주고 받았어서 내심 그 날만 기다렸다. 그래서 '오다 주웠다.' 라는 식의 예상치 못한 깜짝 선물은 더 감동이었다. 아무런 날도 아닌데도 내 생각을 해주다닛..?


그런데 요즘에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선물을 주고 받는 것이 자연스러워진 것 같다. 경제적으로나 마음적으로나 조금 여유로워진 사회 분위기가 한 몫 하지 않을까 싶다.


예쁜 포장지에 쌓인 맛있는 디저트는 선물로도 적격이다. 달달한 혹은 담백한 디저트는 남녀노소 무난하게 즐길 수 있기 때문에 호불호 없는 선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 매장도 선물세트를 꾸준히 찾는 손님들이 많았다.




"누구에게 선물하시는 거예요?"


질문을 받아든 손님들의 눈동자가 이리 저리 굴러간다. 이내 선물의 주인공을 떠올린 손님들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퍼진다. '생일인 친구에게' '남자친구와 기념일이라' 라는 대답도 있지만 '평소 고마웠던 친구에게 뭐라도 주고 싶어서' '간식을 좋아하는 친구한테' '미안한 일이 있어서요.' '그냥 오늘따라 선물하고 싶어서요.' 등등의 대답도 있었다.


선물을 하게 된 다양한 이유를 듣다 보면 포장을 하는 손길이 더욱 섬세해진다. 예술가가 작품에 혼을 담듯 선물하는 이의 감정에 이입해 완성하고 나면 빛깔 좋은 꾸러미가 더 빛나 보인다.


받는 이도, 주는 이도, 만드는 이도 기분 좋게 하는 게 선물이 가진 특별한 힘이다.






1. 스윗한 남자친구의 선물

여자친구에게 쿠키를 선물하기 위해 일요일마다 방문하시는 분이 계셨다. 말라도 너무 마른 여자친구는 태생적인 소식좌였는데 남자친구 입장에서 안쓰럽다고하셨다. 그러던 중 놀러온 남자친구 집에서 우연히 발견한 우리 매장 쿠키! 여자친구가 정말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게 되셨다고 한다. 이후로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우리 매장 쿠키를 선물하신다. '이제는 안 사가면 여자친구가 뭐라고 해요. 하하' 하면서 웃는 그에게서 꿀이 뚝뚝 떨어진다. 나는 디저트만큼 스윗한 이 남자친구에게 빙의되어 부드러운 손길로 쿠키를 정성스레 포장한다. 아, 부러워.



2. 회사원의 당충전

우리 가게 찐 단골 손님이 어느 날 구체적인 주문을 넣어주셨다. 같이 일하는 회사 동료들의 당충전을 위해 디저트 선물을 하려는데 모두가 다이어트에 돌입했기 때문에 최대한 덜 달게 해줄 수 있느냐였다. 단골 손님과의 많은 수다 끝에 '사회에 찌들어 행색은 뼈만 남은 좀비 같아졌지만 실상은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 직장인들을 위한 노버터쿠키'를 따로 만들었다. 그리고는 그들의 마음 근육 만큼은 무사하길 바라는 마음에 가벼운 쪽지를 리본에 같이 묶어 포장을 완성했다. 그렇게 양 손 가득 묵직한 선물을 가져간 단골 손님은 모두가 좀비처럼 디저트에 달려들었다는 후기를 전해주었다.



3. 은인되시는 분

앙금쿠키로 카네이션을 만들어서 스승의 날, 어버이날 선물세트를 구상해서 홍보했다. 앙금 카네이션 제작은 손목에 무리가 많이 되기 때문에 감당할 수 있는 양의 주문만 받고 빠르게 마감을 했다. 그런데 며칠 뒤 한 손님에게 온라인으로 문의가 왔다. 카네이션 선물 한 세트를 주문 할 수 있느냐는 연락이었다. 앙금을 다 소진했기에 또 구비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급하게 찾는 듯한 모습에 오케이 했다. 누구에게 선물하실 거냐 했더니 본인에게 도움을 많이 주신 은인되시는 분께 드릴 거라셨다. 점잖은 말투에 왠지 인생의 깊이가 느껴져 카네이션 꽃잎 색을 조금 더 묵직하게 낸 뒤 하나 하나 정성들여 만들어 구웠다. 그리고 어르신들이 좋아할 짙은 색감의 리본으로 마무리했다.


픽업 당일 드디어 손님이 오셨는데 화장과 타투가 화려한 성숙한 분위기의 여자분이셨다. 내가 '은사님께 드리시는 거랬죠?' 하니 돌아오는 대답은 '네, 저희 담임쌤이요!'였다. 아, 요즘 아이들은 진짜 여러 모로 성숙하구나... 스승의 날은 이미 일주일이나 지났지만 어쨌든 은사님을 향한 그 예쁜 마음에 박수를 올린다. 포장 취향이 맞도록 담임선생님 연세가 조금 있으시길...



4. 찐친을 위하여

'사장님, 그냥 대충 해주세요.' 내가 어떤 스티커를 붙일지 고민하고 있자 손님이 손사레를 치며 말했다. '아니, 그래도 오랜만에 보는 친구라면서요.' 라고 말하자 '에이, 우리 서로 선물하는 그런 사이 아닌데 이렇게 오랜만에 보는게 처음이라 그냥 주는 거예요.' 하며 손님이 발랄하게 웃으며 말했다. 소위 찐친에게 선물을 하는 그녀는 '대충 해주세요. 어차피 걔 하루 만에 다 먹을걸요? 포장도 안하고 그냥 줄라다가 만거예요.'를 거듭 말했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라 반가우시죠?' 라고 물어보자 손님은 새침하게 '뭐, 그렇죠.'라고 말했다. 나는 이 츤데레의 반가운 마음을 적극 반영해서 더욱 꼼꼼히 포장하고 '음... 이 위에 편지라도 쓰실래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츤데레는 부끄러운 듯 시선을 떨구며 '아, 편지는 따로 써와가지고 괜찮아요. 감사해요.' 했다. 그리곤 완성된 선물을 받아들더니 추가로 쿠키 몇 개를 더 시켰다. 친구가 좋아하는 맛이라나 뭐라나.



5. 멋진 선물

처음 보는 손님인 그녀는 진열되어 있는 쿠키 맛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며 디저트를 신중하게 골랐다. 그리고는 선물 포장이 되는지 물어보았다. 나는 그녀에게 설명해 주면서 누구에게 선물하는지 물어봤다. 그러자 그녀가 수줍지만 또박또박 '아... 저한테 하려고요.' 라고 했다. 나는 이 대답이 너무 멋져서 선물 하려는 이유가 뭔지 물어봤다. 그랬더니 그녀는 '그동안 너무 고생을 해서 좋아하는 걸로 선물을 주고 싶었는데 고민하다가 디저트가 땡겨서 왔어요.' 어떤 고생인지 물어볼까 했는데 허공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 너무 복합적인 감정이 들어있어서 선뜻 입이 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묵묵히 선물을 포장하며 그녀에게 필요한 어떤 위로 혹은 기쁨, 눈물, 보답이 되길 바랐다. 선물을 받아든 그녀가 옅은 눈웃음을 지으며 '감사합니다.' 하고 매장을 나섰다.




그 날 나는 퇴근 길에 꽃집에 들러 꽃 한 송이를 샀다. 나를 위한 선물이었다. 신중하게 고민하다 좋아하는 보라색이 곱게 물든 꽃 한송이를 골랐다. 매일 다니는 퇴근길이었는데에도 특별한 선물을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활력이 돌았다. 선물에는 이런 힘이 있었다는 걸 나도 오랜만에 실감했다.


집에 돌아와 예쁜 물병에 꽃을 꽂고 가방에서 내가 우리 매장에서 제일 좋아하는 맛의 쿠키를 꺼냈다. 쿠키에는 예쁜 리본이 묶여 있었다. 박스 포장까진 못해도 선물 분위기를 물씬 내주기 위해서 따로 리본을 달아가져왔다. 좋아하는 색의 꽃과 좋아하는 쿠키가 있으니 더할나위 없이 행복한 선물이었다.


평소라면 당충전을 위해 허겁지겁 먹었을 텐데 오늘만큼은 눈으로 먼저 먹고 분위기를 먼저 맛보며 받는 이를 향해 한 마디 건넸다.


"수고했어, 오늘도."


선물은 '나에게 있어 당신이 소중한 존재'임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마음'이었다. 나는 두 팔을 벌려 소중한 나를 토닥 토닥 안아주었다.


소중한 연을 만들고 싶거나 관계를 더 돈독히 유지하고 싶다면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오늘은 선물을 골라보는 건 어떤가? 마음 속에 떠오른 상대방이 궁금해지는 날이다.


(디저트 선물이면 더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