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기록] 13. 내가 사랑한 꽃

사랑했던,사랑할

by 겨울해

우리 가게에는 할아버지 손님이 계신다. 41년생이심에도 불구하고 꽤 정정하신데 다만 한쪽 귀가 잘 안들리셔서 일상 생활에서 불편함이 조금 있으시다.


그럴 때마다 전화라던지, 홈쇼핑 주문이라던지의 필요한 부탁을 하시기 위해 가게에 종종 들르신다. 그런데 어찌나 신사적이신지 내가 일처리를 해드리고 나면 꼭 맛있는 음식을 갖다 주시거나 커피 한 잔을 사드시거나 하신다.


이외에도 여러가지 그의 매너로 미루어 보아 젊은 시절에 얼마나 나이스하셨을지 가늠하게 만드는 할아버지는 인물도 훤하시고 늘씬하시다.


이 동네로 이사를 와서 혼자 살고 계시는 그는 이외에도 종종 말동무가 필요하실 때면 들르셔서 나와 수다를 떤다.






어느날, 할아버지가 새빨간 장미 몇송이를 가지고 오셨다. 밖에서 식사하시고 오시는 길에서 몇 송이 꺾어왔다고 한다. '처자가 다 죽은 꽃을 꽂아놓고 뭐하는거야.' 하시면서 내가 건넨 가위로 가시를 다듬으셨다.


나는 드라이 플라워라는 단어가 생각이 안나서 그냥 너스레를 떨면서 '아이, 왜요~ 이거 나름 분위기 있는데.' 라고 했지만 할아버지가 '그건 갖다 버려.'라고 하셔서 얼른 몰래 숨겨놓았다.


할아버지가 가지고 오신 새빨간 장미에는 단단한 가시가 생각보다 많았다. '아야!' 할아버지 앞에 앉아 같이 가시를 다듬다가 고 놈한테 찔렸다. 아름다운 것에는 가시가 많음을 몸소 증명하는듯 했다. 손가락을 비비면서 나한테는 어떤 가시가 있더라, 내가 지키고 싶은 아름다움은 뭐지 하고 잠시 생각에 잠겨 있었는데 그새 할아버지가 손질을 다 끝냈다.


그는 해맑게 웃으며 '다 됐다.'를 외치셨다.


느닷없이 납치된 빠알간 장미가 두리번 거리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투박한 손길로 꽃을 어루만지며 '이제 훨씬 낫지? 이쁘네!' 하셨다.


나는 웃느라 반달이 된 할아버지의 눈을 보면서 41년생의 오늘 하루의 여정을 상상해보았다.


가시많은 고놈들 사이에서 탐스러운 장미 몇 송이를 조심 조심 꺾고나서 잰걸음을 재촉하며 선물하러 오셨을 모습은 퍽 로맨틱했다.


적적한 이 동네에서 나는 할아버지의 유일한 친구였다. 나는 '진짜 예뻐요. 역시 할아버지 최고!'를 외치며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대접해드렸다. 결제를 하시려는 그에게 선물값이라며 만류했다.


75세까지도 산이란 산은 다 다니셨고 겨울에는 한라산을 두 번이나 올라갔다 왔다는 할아버지셨지만 이제는 몸 이곳 저곳이 고장이 많이 났다고 하셨다.


특히 귀가 잘 안들리시는 할아버지랑 하는 대화는 쉽진 않았다. 종종 흐름도 끊겼고 할아버지는 그냥 알아듣는 척 멋쩍은 웃음을 많이 짓기도 했지만 언제나 그는 나의 가게를 배려해주셨고 나는 할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해드리려 노력했다.


할아버지가 들려준 인생은 장미같았다. 아름다움과 가시가 공존하던 그 때 그 시절을 이야기 하시며 아직도 눈시울이 살짝 붉어지시는 할아버지한테 박수를 쳐드리고 싶었다.


그만의 꽃은 아름다웠다.






할아버지가 꺾어오신 장미꽃은 설탕물에 꽂아놨는데도 하루가 지나자마자 바로 고개를 숙여버렸다.


새빨갛던 장미꽃잎은 검붉게 변했다. 뿌리가 없어진 꽃은 오래가지 못하는 걸 알지만서도 볼 때마다 안타깝다. 나는 물을 갈아주면서 조금만 더 생기를 유지해주길 바랐다.


할아버지가 요즘 자꾸 깜빡한다면서 결국엔 지갑을 통쨰로 잃어버려서 혼났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나는 할아버지의 정갈한 흰 머리를 보면서 그를 위해 기도했다.


내 가게가 있는 동네에는 할아버지 외에도 어르신들이 많이 거주하신다. 그들이 입으시는 알록달록하게 화려한 옷은 한 송이의 꽃을 피운 것처럼 보인다. 특히나 초록 풀 숲 사이로 산책하는 그들을 보면 더욱이 그렇다.


나는 인생이라는 깊은 흙에 단단하게 뿌리 내린 그 꽃들이 앞으로도 계속 찬란하길, 여전히 짙은 향기를 뿜으며 색을 잃지 않기를 빌어보았다.



나의 벗, 할아버지가 준 또 다른 빠알간 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