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기록] 11. 파아란 시간 속에서

어느 카페 사장의 징징거림 위주의 시퍼런 글

by 겨울해

드디어 여름 휴가를 가게 되었다. 드.디.어.


1인 자영업자에게 휴가란, 그렇게 달가운 일만은 아니다. 남들 쉴 때 하는 장사가 평소보다 몇 배는 잘되기 때문이다. 참 서러운 일이다. 남들 쉴 때 못 쉬고 남들 일할 때도 일하는 게 자영업자의 현실이다. 다시 한 번 짚고 넘어가지만 '나만의 카페 차리기'는 로망이 될 수 없다. 더욱이 소자본 카페는 지독한 노동의 현장이다.


매출을 위해서 휴가철 성수기가 아니라 한참 지난 비수기 때 가게를 닫고 쉬려고 했지만 두 가지 이유로 인해 8월달 극성수기 어느 날, 5일의 휴가를 선언해버렸다.


첫번째, 번아웃이 오기 직전이었다. 정말 끔찍했다. 아침에 눈 뜨는게 몸서릴쳐질 정도로 싫었고 끝없이 잠이 쏟아졌으며 물에 젖은 솜처럼 모든 기력이 무거워 긍정에너지가 도저히 나오지 않았다. 한계가 온 내 몸과 마음에 '쉼'이 절실히 필요함을 느꼈다.


두번째, 누군가와 속 터놓고 지금의 내 인생에 대해 의논하고 싶었다. 갑작스럽게 틀어버린 인생의 방향이 가끔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맞는가. 아니다 싶을 때 시원하게 사직서를 낼 수 있다면 좋으련만. 사직서를 내는데도 돈이 드는 소자본 자영업자는 임대차계약이라는 굳건한 몇 년의 시간 안에 갇혀 버린 기분이었다.


이런 나와 이야기를 나눌 상대방은, 아마도 엄마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결국 인생의 가장 가까운 동업자는 가족이라는 사실이 가게를 운영하면서 더 와닿았기 때문이다. 세상에 아무것도 없이 몸을 던졌을 때 진심으로 나의 안위를 걱정해주는 존재는 피를 나누고 세월을 나눴던 가족이었다.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당연했을 이 사실이 내가 가게를 하게 되면서부터 비로소 피부 위로 뚜렷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나의 가정사 위에 불안정하게 세워진 그 사실은 한 편으로는 꽤 버거웠다.


어쨌든 이러한 이유로 나는 진작부터 엄마와의 휴가를 계획했다. 아빠와는 일정이 맞지 않았기에 엄마와 둘이서 멋진 풍경을 여유로이 즐기며 진득허니 인생상담 좀 하려고 했다. 그런데 곧바로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바로 일곱 살짜리 조카의 동행이었다.


인생 8개월차 둘째 조카로 인해 멀리 여행을 가지 못하는 오빠네 부부를 대신해서 첫째 조카의 휴가를 책임지기로 한 것이다. 유유자적 아무것도 안하고 오롯이 나에 대해서만 생각하려던 나의 휴가가 일곱살짜리를 위한 어느정도의 헌신이 불가피함이 예고되었다.


그래도 여행 몇 주전부터 유치원에다가 '할머니랑 고모랑 제주도 간다.'고 온갖 자랑을 했다는 조카의 귀여운 소식을 듣고 난 이후, 자라날 새싹을 위해 이 몸뚱아리 한 번 잘 바쳐보리라 다짐했다.


그리고 대망의 휴가날.



제주도의 파란 하늘, 에메랄드 빛 바다, 푸르른 나무를 생각해서 시밀러룩으로 [파란색]을 택했다. 엄마를 위해 선뜻 구매한, 하얀 바탕에 파란색 꽃 원피스는 생각 이상으로 엄마에게 잘 어울렸고 곱게 땋은 머리에 선글라스를 야무지게 쓰고 온 사랑스러운 조카는 파란 줄무늬 원피스를 입고 왔다. 나는 사두고 한 번도 입지 못했던 파아란 테투리 색상이 포인트인 니트 반팔티와 연청바지를 코디해 파란 인간이 되어 등장했다.


오랜만에 꾸민 덕에 나는 한층 더 신이 났다. 가게에서 근무할 때는 줄곧 트레이닝 복 같은 편한 옷만 입으니 옷을 살 일도 꾸미고 나갈 일도 없었다. 나만의 스타일로 가득찼던 옷장은 굳게 닫힌지 오래였고 매번 비슷한 옷만 돌려 입었다. 매일 코디할 여력도 화장을 할 체력도 쉬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샤랄라 프릴 달린 블라우스를 입고 풀 메이크업으로 카페 브이로그를 찍어 올리는 사장님들은 대체 체력이 얼마나 대단한 걸까 하고 늘 감탄한다.


어쨌든, 이번 여행에서는 기필코 카톡 프로필 사진을 건지리 하며 다른 날 입을 촤르륵 원피스도 챙겨왔다.


물론, 이 원피스도 사두고 한 번도 입지 못했던 원피스였다. 카페 사장(+그 중에서도 디저트카페)이라는 직업은 절대 우아하지 않음을 뼈저리게 느끼며 나머지 짐을 챙겼다.



"고모고모고모고모고모"


여행내내 어린조카는 고모의 껌딱지가 되었다. 멋진 풍경 앞에서 내가 독사진을 찍으려 할 때마다 어디선가 도도도도 달려와서 찰싹 달라붙어 고목나무에 매미가 되었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였다. 카톡 프로필 사진 건지기는 개뿔... 내 인생에 대한 깊은 고찰이나 할 시간이 있으면 다행이겠다. 나는 조카의 든든한 고목나무가 되어 조카의 귀여운 얼굴을 핸드폰에 연신 담아대며 스스로 위로했다. 짜식. 귀여워라.



"꺄르르!"


곽지 해수욕장의 에메랄드 빛 바다 앞에서 벌개진 얼굴로 신나게 뛰어 노는 조카의 파아란 줄무늬 원피스가 한시도 쉬지않고 생기발랄하게 움직였다. 물 만난 고기처럼 펄떡 펄떡 뛰는 조카를 보며 엄마와 나도 잠시동안 어린 아이처럼 신나게 깔깔 거렸다.


넓은 모래사장에서 예쁜 조개를 찾는 조카의 작은 정수리가 뜨거운 햇빛에 달궈졌다. 모자로 그늘을 만들어주며 나한테 밀려오는 햇빛을 스스로 덜어내는데 문득, 이 작은 아이의 뒷모습에서 나의 어린 시절이 아지랑이처럼 일렁거렸다.


알록달록한 조개, 흐물대는 미역, 넘실대는 파도 그리그 그 앞에서 세상을 다 가진 듯 웃고 있는 나.


하고 싶은 것도, 해보고 싶은 것도 많던 그 때 그 어린 아이. 아무런 근거도 없이 뭐든 될 수 있다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고 머리 아픈 조건과 계산 없이 마음껏 꿈도 꿔보고, 되도 않는 상상을 현실로 끌어와 펼쳐 내 보이던 그 때 그 시절의 향수가 밀물처럼 밀려왔다.


그 아이는 아직도 내 속에 남아있던가. 주섬 주섬 바라본 지금의 나의 모습은 끝을 알 수 없는 바다 속에 빠진 것처럼 퍼렇게 질려있었다.


누군가 '너는 꿈이 뭐야?' 라고 했을 때 단 한 번도 '카페 사장'이라고 답해 본 적이 없었다. 나이는 점점 먹어가고 돈은 벌어야겠는데 내 꿈은 돈이 되지 않아서 선택한 길이었다. 오래된 카페 아르바이트 경력을 담보삼아 양수받은 카페. 그러나 남의 사업장에서 일하는 것과 나의 사업장에서 일하는 것은 천지차이였다.


애초에 꿈 대신 택한 현실이라는 시작점에서부터 틀렸던건지, 아니면 내가 경력직이라고 카페를 만만하게 본 것이 잘못이었는지 어쨌든 종종 손님보다도 내가 카페에서 이방인인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더러 있었다. 나라는 존재가 붕 뜨다 못해 안개 낀 것 처럼 희미하게 느껴졌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


-그냥 참고 하는거지.

-다들 하기 싫어도 돈 때문에 하는거지.

-먹고 살아야하니까 하는 거지.


주변에서 늘 들었지만 이해할 수 없었던 결의 문장들이 내 머릿속을 휘저으며 성난 파도처럼 흔들어 제꼈다.


-너는 다를 줄 알았어? 이젠 정신차려.


성난 파도에 몸을 맡긴 채 하루에도 수십번씩 오르락 내리락 거리는 감정의 해일을 고스란히 맞았다. 카페 매출이 잘 나오지 않은 날에는 무기력감에 휩싸였고 디저트가 많이 남은 날에는 무거운 한숨을 몰아쉬었다. '장사라는 게 대중 없는 일이지.' 하고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순간 순간 즐길 수 있는 것을 찾으며 최선을 다했다.


매출이 잘 나온 날에도 불쑥 불쑥 '이게 맞나?' 싶었다. 만족스러운 그 이상의 숫자가 포스기에 찍힌 날에도 '나, 여기서 이러고 있어도 되는 건가? 이게 내가 원하던 삶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나의 꿈이 아니었던 '카페 사장'이라는 자리가 진저리날 때가 있었다. 열정, 흥미, 설렘이 떨어진 그 자리엔 메마른 현실만이 존재했다. 여기 저기서 자극점을 끌고와 애써 촉촉하게 만들어놓아도 금방 말라 건조해졌다.


'투자한 돈을 다 회수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오늘 통장에서 빠져나갈 돈이 얼마였지?'


시퍼렇게 날 선 현실적인 생각들이 나를 짙게 짓누를 때는 물에 빠진 듯 숨 쉬기가 답답해 일부러 한숨을 크게 내뱉어 보곤 했다. 언젠가부터 머릿 속에 깊은 바다를 지닌채 살아가고 있었다. 투명하지 않은 그 바다는 들여다 보기 무서웠다. 금방이라도 나를 집어 삼키고 놓아주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나 꿈이 많던 어린아이는 시퍼런 현실 속에서 그저 그런 어른으로 자라나고 있었다.



"조개 예쁘지!"


조카가 에메랄드 빛 바다처럼 눈부시게 웃으며 조개를 건넸다.


"응, 예쁘네."


티없이 맑고 깨끗한 조카의 목소리에 애써 지어보인 내 미소는 잔파도처럼 금세 부숴졌다.


잃어버린 내 어린 시절을 닮은 조카를 바라보면서 알 수 없는 울컥함이 푸른 바다의 짠 내음에 뒤섞여 코로 들어왔다가 나가길 반복했다.


-아직 너는 뭐든 할 수 있어. 잊지마.


눈 앞에 있는 제주도의 푸른 바다가 커버린 나를 보며 애잔하게 속삭였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가 생각났다. 나는 여느 노인처럼 폭삭 늙어버려 더 이상 힘이 없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힘이 다 빠진 와중에도 내가 잡으려는 청새치는 무엇일까? 끝내 어떻게든 잡아도 상어떼에 다 물어뜯겨버리지 않을까? 아니, 애초에 노인은 굳이 바다로 나아갔어야 했을까?


제주도의 푸른 바다와 내 머릿속에 있는 바다가 끊임없이 철썩대며 뭐라뭐라 대답을 해주는 것 같았지만 나는 80일 넘게 헛탕을 친 평범한 노인의 심정이 되어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코 끝만 계속 찡해서 그 매운 맛에 속수무책으로 젖어들까봐 고개를 젖혀 태양과 맞섰다. 혼자 온 여행이 아니었기에 우선은 이 마음을 삼켜야 했다.



그때 엄마가 속삭였다.


"지금 서봐. 얼른 독사진 찍어 줄게."


조카에겐 할머니이자 내게는 엄마인 그리고 무릎 연골이 다 닳아 버린 중년 여성은 딸내미의 독사진을 건져 주기 위해서 두터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나는 크게 숨을 들이쉬며 엄마 쪽을 바라봤다.


한 때는 중국 황산까지 갔다 올 정도로 등산이 취미였지만 이제는 낮은 오르막길조차 버거워진 엄마를 위해 이번 여행에서는 '오름' 코스는 다 빼버렸다. 무릎에서 물을 빼고 왔다는 엄마의 전화를 받자마자 오랜 시간 미뤄뒀던 운전 연수를 받았고 무리해서 중대형차로 빌렸다. 어깨 수술도 한차례 받았던 엄마에게 무거운 짐을 매게 하는 것도 싫었기 때문이었다.


편안하고 안전한 여행을 엄마에게 주고 싶어 여러 노력을 기울였는데 정작 엄마는 어린 조카의 에너지에 맞춰주느라고 제대로 앉아 있을 틈이 없었다. 복잡한 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픈 무릎으로 어린 조카와 열심히 뛰어노는 엄마는 옷이 날개라더니 한 20년은 더 젊어 보였다. 예쁜 옷 몇 벌 더 사드릴 걸.



엄마에게 현재 나의 고민을 언제 어떤식으로 꺼내야 할지 몰라 기회만 엿봤다.


'엄마, 나 카페 그만둘까?'


조카 몰래 한껏 포즈를 취하면서 속으로 말을 골라 봤다. 아니지, 이건 너무 철 없어 보이는 멘트다.


'엄마, 나 인생의 방향성을 조금 더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것 같아.'


엄마가 '그걸 꼭 카페를 그만두어야 할 수 있는거야? 카페를 하면서 생각 할 순 없는거야?' 라고 대답할 것만 같다.


'장사가 내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아.'


'그러면 앞으로 뭐 해 먹고 살게?' 라고 하겠지. 그런데 잠깐만, 왜 내가 엄마를 설득하려고 하고 있지?


엄마에게 이런 나는 청새치일까, 상어떼일까, 바다일까, 아니면 노인 옆에 있던 아이일까 궁금해졌다.


늙어버린 엄마는 어떤 마음으로 삶 속에서 일궈낸 것들을 지켜내고 있을까? 그리고 그 지켜낸 결과가 혹시 나일까?



"...119 안 불렀어?"


나를 찍다 말고 잠시 전화를 받던 엄마 목소리가 심각해졌다. 무슨 일인가 싶어 뒤를 봤더니 나를 의식한건지 뭔지 엄마는 '으응'하고 말을 얼버무리며 전화를 끊었다. 내가 '뭔데.' 하고 두어 번 묻자 그제서야 대답했다.


고혈압 약을 먹던 아빠가 어지럼증을 계속 호소해서 약을 끊고 아침마다 산에 올라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도 산에 올라가다가 혈압이 급격히 떨어져서 거의 죽겠다 싶을 정도로 정신을 잃었다가 겨우 깼다는 것이었다.


"엄마가 산에 올라가지 말라고 그렇게 말려도 말을 안들어."


끝없이 펼쳐진 바다 너머를 보면서 말하는 엄마의 눈빛에는 해탈과 걱정- 또 짐작조차 가지 않는 몇몇의 감정들이 뒤섞여 있었다.


아빠는 꽤 오래전에 허리 디스크가 터졌을 때에도 정신력으로 버텨온 사람이었다. 병원비가 비싸다 하시며 현대의학의 도움을 받으려 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수술을 하게 되면 회사에 못 나갈까봐 두려워하셨다. 가난과 늘 싸우던 아빠에게 이제 세월조차 아군이 되어주지 않았다. 켜켜히 쌓인 가장의 무게가 아빠의 몸과 마음 여기저기를 고장을 내고 있었다.

-그냥 참고 하는거지.

-다들 하기 싫어도 돈 때문에 하는거지.

-먹고 살아야 하니까 하는 거지.


아아- 내가 늘 이해할 수 없었던 이 말을 제일 잘 하는 사람이 바로, 아빠였던게 기억났다. 나는 저 말이 패배자의 말이 아니었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저 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인내와 포기가 있었을까. 그리고 나는 그런 아빠를 위해 병원비 한 번이라도 제대로 대 준 적이 있는가.


아-

머릿 속에서 파도가 거세게 몰아쳤다.




엄마와 나는 모래사장에 주저 앉아 수평선을 함께 바라보았다. 어린 시절의 나는 수평선 너머를 곧잘 상상했는데 지금은 수평선을 통해 하늘과 바다를 잘 구분 짓고 있었다. 현실 그대로 보는 어른이 되어 가고 있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여기까지가 하늘이고 여기부터가 바다야라고 선으로 한계를 긋는 것 같아서 지금은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았다. 저 선을 넘어가면 바다와 하늘이 뒤집어지는거야. 하고 정답이 없이 마음껏 상상하던 그 어린 시절의 믿음을 아직 놓고 싶지 않았다.


저 경계선은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 걸까. 아니지, 이 둥그런 지구에 시작점과 끝을 정할 수 있기는 한 걸까? 어쩌면 부던히 이어지고 있는 중간 과정만이 있는 것이 아닐까?


내 인생도 시작과 끝을 모르는 하나의 원으로 보면 어떨까?


이제 시작인 줄 알았는데 끝나버린 것도 있고 이제 끝인 줄 알았는데 또 다른 시작인 것도 있었다. 카페를 그만둬도 인생이 새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고, 카페를 계속해도 인생이 곧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 모든 게 인생의 중간과정이라 생각하며 받아들이면 조금은 버티기 쉽고 조금은 가벼워지지 않을까.


한결 비워진 마음으로 나는 어린 시절의 나와 어른이 된 나의 손을 한 쪽씩 꼭 붙들었다.


다시 눈을 떠보니 내 앞에는 수평선같은 파아란 선이 그어진 줄무늬 원피스를 입은 조카가 여전히 조개를 줍고 있었고 그 옆에는 엄마의 파아란 꽃이 바람에 살랑살랑 흩날렸다.


일단은 나도 그들처럼 파아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