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기록] 9. 님아, 그 선을 넘지 마오

그 선을 지켜주오. 우리를 위해.

by 겨울해

외국 카페에서 일하는 어떤 분의 브이로그 영상을 보았다. 거기에서 마음에 쏙 드는 문화를 발견했는데 바로 "스몰토크(small talk)" 였다. 단순히 바리스타와 손님의 관계를 뛰어넘어 인간 대 인간으로서 소소한 이야기를 주고 받는 그 문화가 보기 좋았다.


우리나라는 여러 편의성으로 인해 키오스크도 많아지고 또 무인카페 역시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기본적으로 '대화'가 줄어든 것 같다. '굳이 대화를 왜 하냐, 필요한 것만 딱 주문하고 나오면 되지.' 라고 하시는 분도 있겠다.


여기서 내가 꽂힌 대화란 쓸데없고 블필요한 그런 수다가 아니라 서로를 사람으로 인식하기 위한 사소한 것이다. 아주 극단적인 예로는 '안녕하세요~' 하면 '네, 안녕하세요.' 하고 응답하는 이런 대화 말이다. 이런 간단한 대화정도만 잘 주고 받아도 사람은 무의식중에 상대를 인격적으로 존중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서오세요~' 하면 돌아오는 것이 보통은 묵묵부답. 티키타카가 이루어지지 않는 형식적인 소통이 결국엔 손님이 종업원들을 NPC로, 종업원이 손님을 돈으로만 보게 만드는 것 같다.





8평짜리 작은 나의 카페에 '스몰토크' 문화를 적용시키기로 했다. 동네의 작은 카페였더니만큼 '스몰토크'에 더 적합했다.


- 오늘 날씨가 많이 덥죠?

- 이 쿠키는 누구한테 선물하실 거예요?

- 오늘 옷이 아주 멋지신데요?


손님들은 처음에 놀란 눈으로 '나한테 말 시킨건가' 하는 표정을 지으며 두리번 거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점점 나와의 스몰토크를 즐기기 시작하는 분들이 늘어났고 먼저 말을 거는 손님도 계셨다.


그렇게 '사장 대 손님' 이전에 지금, 여기서 같이 살아가는 '사람 대 사람'으로 받아들여진 관계가 되었고 나는 단순히 커피 파는 기계가 아닌 것이 참으로 기뻤다. 우리는 순수하게 서로의 하루를 응원하기도 했고 필요한 정보도 공유하며 소통을 했다. 깊은 대화를 나눈 것은 아니었지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어떤 유대감이 쌓이면서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고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양면성이 있듯이 분명히 경계해야 할 점은 있었다. '사람 대 사람' 이자 '사장 대 손님'이라는 점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되었다.


몇 십년지기 친한 지인, 하물며 피를 나눈 가족간에도 물리적, 심리적 거리두기가 반드시 되어야 건강한 관계가 유지되는 법이다. 아무리 가까워도 각각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이건 당연한 것인데 하물며 그 잠깐 본 사이인 '사장 대 손님'은 어떠하랴.


그래서 적절한 관계 이상의 선을 넘지 않으려고 늘 경계했고 역시 그게 맞았구나를 깨닫게 해주는 몇 개의 사건들이 발생했다.


그 중에는 독보적인 한 여인이 있다. 이 여인은 내가 스몰토크를 건네자 굉장히 기뻐하며 나와 카페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표했다. 그런데 이 스몰토크를 시작으로 그녀가 갑자기 선 안쪽으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내가 정말로 작은... 작디 작고 작은 '스몰토크'를 건네면 이 여인은 '빅 토크' 혹은 '딥 토크'로 혼자서 훅 들어가버렸다.


예를 들어,


- 식사 하셨어요?


이 작은 소재에 대한 답이 어떤 식으로 왔냐면,


- 제가 밥에 대해 안 좋은 트라우마가 있어요. 그래서 너무 힘들었어요 저는. 왜냐면...


갑작스럽게 받아들게 된 그녀의 블랙홀 같은 감정은 너무나 거대했다. 유대관계가 충분히 쌓이지 않은 상태에서 훅 들어온 타인의 엄청난 사연과 마음에 어리둥절해져 리액션이 고장나 버렸다. 이후로도 그녀는 자신이 받고 있다던 상담에서 늘어놓아야 할 법한 이야기들을 우리 가게에 종종 들고 와 예고도 없이 풀어놓았다. 들으면서도 '대체 이 이야기를 나한테 왜...?' 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녀의 사연에 이러쿵 저러쿵 댓글을 달기 싫었던 나는 그녀의 감정에 최소한의 공감을 해주다가 결국 블랙홀에 물들기 전에 선전포고를 하기로 했다.


"여기는 업장인지라 제가 그런 마음까지는 들어줄 수가 없어요. 그 이야기는 상담실에서 하시는 게 손님에게도 편하실 거예요."


"요즘에 상담을 안가요. 돈도 없고 힘들어서요."


라고 씁쓸하게 이야기하던 그 여인은 늘어놓았던 것들을 대충 수습한 채 나갔다. '더 이상 이 곳에 오지 못한다. 다이어트를 시작해서 자제하려고 한다.' 라는 말을 덧붙인채.


남겨진 나는 온갖 의문이 더 몰려오기 전에 서둘러 그녀의 존재를 잊고 일에 몰두했다. 그리고 이쯤하면 알아들었을거라고 생각했지만,


불행히도 아니었다.


이제 여인은 오지 않는 대신에 비대면 스몰토크를 시도했다. 당근마켓에 등록해둔 비즈프로필을 통해 꾸준히 채팅을 걸어왔는데 대개 '오늘은 손님 많냐, 이런 식으로 카페를 꾸며 보면 어떠냐, 이 메뉴가 요즘 타카페에서 인기더라. 오늘도 파이팅 하시라.' 등등의 소소한 이야기였다. 우리 가게를 주인처럼 사랑해주는 손님이라니, 굉장히 감사한 이야기였지만 정확히 말해 이건 오지랖이었다. 여인의 정서적 교류는 너무 일방적이었다.


본인의 마음을 억지로 나에게 꿰려고 하는 이 여인에게 선을 두껍게 긋기로 결심했다.


음료와 디저트를 구매하려는 손님과 사장의 대화 이외에는 그 어떠한 '토크'도 차단하였다. 자진해서 키오스크가 되어버렸다. 그러자 나의 태도에 무언가를 느낀 듯한 여인은 '사장님 제가 선물용 디저트를 구매하려는데 보통 어떤 식으로 구매해요?' 하고 말을 걸어왔다.


여인이 디저트를 픽업하고 싶다고 말한 시간은 오픈시간 한참 전이었다. 저혈압인 나는 아침이 힘들어 자신이 없었지만 '개인적으로 너무나 감사한 은인에게 선물하려고요.'는 여인의 말에 '그렇다면 정성껏 준비해보겠습니다.' 이라고 답장을 했는데 몇 시간 뒤, 그녀는 죄송하다며 예약을 취소했다.


그럴 수 있다고 이해했다. 고객 변심이든 일정 변동이든 충분히 사전에 취소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이런 일이 그 뒤로도 몇 번 반복된 게 문제였다. 그녀가 나를 떠보는 것 같은 기분을 지울래야 지울 수가 없었다. 왜냐면 올린 글을 보면 알 수 있는 아주 시시콜콜한 부분까지도 다시 물어보고서는 '아, 근데 제가 이 시간에 살건데 사장님이 문을 못 여시겠죠?' 라고 하는 것 아닌가? 내가 본인을 손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처럼 대하자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는지 아닌지를 지켜보는 것 같았다. 나는 새로운 결의 갑질을 향해 단호하게 말했다.


"네:)"


그럼에도 그녀는 꾸준하게 '스몰토크'를 걸어왔고 귀여운 당근모양이 핸드폰에 뜰 때마다 스트레스가 쌓이기 시작했다.


며칠 뒤 그녀가 매장으로 찾아왔다. 그리곤 또 다시 예고도 없이 감정 폭탄을 던졌다. 이제는 디저트나 음료를 사려는 제스쳐도 없이 오래된 나의 지인처럼 선을 성큼 뛰어넘은 행동을 했다. 외로운 여인은 본인이 겪은 일들에 대해 쉴 새 없이 끄집어내다가 급기야 작은 욕설까지 덧붙였다.


여인의 욕설을 듣자마자 더이상 참을 수 없어졌다. 칼을 빼어 들어 이 관계를 잘라냈다.


"앞으로 이런 이야기를 하실거면 오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른 사람을 찾으세요."


이후 그 여인은 당근마켓에 개설해둔 내 가게 프로필에서 등록했던 단골을 탈퇴했고, 본인이 적은 후기까지 삭제했다. 이렇게 마무리 했으면 좋았으련만 단골을 등록했다가 탈퇴했다가를 몇 번 더 반복했다. 더이상 신경쓰지 말자 하고 잊을만 할 때 쯤에 간혹 '사장님 건강하세요.' 같은 채팅이 오곤 했다.


장사를 하다보면 대놓고 선을 넘는 진상 손님들이 참 많다. 그들은 보통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횡포를 부리기에 마음 놓고 '아으, 진상손놈.' 하며 투덜댈 수 있다. 그리고 그 진상들이 침범한 선은 어떤 규칙들을 세워서 단숨에 더 굵직하게 그어버릴 수 있다.


하지만 뭐랄까. 이 스몰토크는 사장 대 손님 이전에 사람 대 사람으로 교류하고자 했던 시도였기에 한층 더 고차원적인 선 넘기였다. 그 말인즉슨, '아, 화나네.' 하고 마냥 넘겨버릴 수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아, 씁쓸하네.'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긍휼함을 가지고 있는 나는 만약 '사장 대 손님'으로 이 여인을 만난 게 아니었다면 그녀의 애정결핍과 외로움을 넓은 아량으로 들어줄 수 있었을까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나 어쨌든 지금 이 장소, 이 관계에서는 그럴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며칠 뒤, 버스 기사님 두 분이 손님으로 오셨다. 그 중 한 분이 진한 초코라떼를 마시며 울분을 토해냈다. 여러 이유들로 사람이 싫어진다는 것이었다. '나도 처음에는 친절했어. 근데 이젠 사람들이랑 말도 하기 싫어.' 라고 말씀하시는 기사님의 목소리에는 많은 것이 묻어 있었다.


다른 손님이 '그래도 사람을 미워하진 마.' 라고 다독이며 말하신다.


끝도 없이 기다란 선 하나가 전 인류 모두에게 이어져 있는 것 같다. 누군가가 그 줄을 확 잡아당기면 누군가는 넘어지고 줄을 확 끊어내버려도 우루루 넘어지는 것 같다. 함께 배려하며 보폭을 맞추며 적당한 거리에서 줄을 잡고 걷는 것, 그게 현명한 방법일 것 같다.


오늘도 커피와 디저트를 팔면서 사람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리고 여전히 나를 비롯하여 모든 사람을 긍휼히 여기며 '스몰토크'를 포기하진 않아본다.



- 오늘 하루는 어떠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