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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 라 Jul 16. 2024

낯선 이방인에게 이유 없는 사랑

작은 친절의 나비효과


모르는 사람에게 베푸는 친절은, 그것을 받는 사람에게 수용됨을 경험하게 해 준다. 그 경험을 통해 우리는 자신과 타인을 수용하는 용기와 힘을 얻는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 연결되고, 서로 영향을 끼치기에 ‘우리’이다.


거리에서 만난 두 천사, 두 남자


프랑스에 유학 온 지 얼마 되지 않던 시절, 13구에 사는 지인과 이태리 광장, 한 카페에서 약속이 있었다. 플라스 디탈리 역에서 내려 출구로 나가는 통로를 걸어가던 중이었다. 몸이 휘청거리더니 나의 의식이 머리로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순간 팔의 폭신함을 느끼면서 나는 그대로 의식을 잃고 말았다.


눈을 떴을 때는 지하철 통로를 벗어나 이태리 광장을 향한 입구에, 사람들에 둘러싸여 앉아 있었다.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어떤 사람은 지하철 구조대를 부르러 달려가고 어떤 사람은 나를 양 옆에서 부축하며 보살폈다.


사람들은 내게 걱정 말라며 우리가 구조대를 불렀고 너를 간호할 사람들이 오고 있다고 했다. 어떠냐? 괜찮냐? 우리가 병원에 데려다주겠다 등 질문이 쏟아졌다. 당황한 나는 무조건 여길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사람들에게 정말 고맙다고, 바로 앞에서 친구와 약속이 있으니 괜찮다고 안심시킨 후 창피한 마음에 서둘러 카페를 향했다.


카페에 도착하여 지인이 나를 반기자 갑자기 두 명의 남자가 지인 앞에 불쑥 나타났다. 지인에게 불어로 뭐라 뭐라 한참 이야기를 하더니 카페를 다시 나갔다. 지인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괜찮냐고, 놀랍다는 표정으로 이야기를 전했다.


 ‘’ 프랑스에 20년 살았지만 이런 일은 처음인데.. 조금 전 두 남자가 네가 지하철에서 쓰러졌는데 병원에 안 가고 그냥 길을 나섰다고, 혹시 가다가 다시 쓰러질까 봐 네 뒤를 따라왔노라고’’


두 남자는 나의 지인에게 나를 부탁하고는 카페를 나갔다.

나는 얼른 카페 밖으로 나가 두 사람을 찾아보았다. 저 멀리 걸어가는 건장한 두 명의 남자가 보였다. 순간 내가 혹시 천사를 만난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학교에서 만난 다른 천사, 교수님


천사는 거리뿐 아니라 불어 연수를 하는 어학교에도 있었다.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소르본느 대학 부설 어학원 초급반에 등록을 했다. 초급반임에도 미국이나 유럽에서 온 친구들은 불어로 교수님께 질문이 가능했다. 수업시간만 되면 실제로 전에 느껴본 적 없던 뒷골의 통증이 시작되었다. 거기에 유럽친구들은 첫 수업부터 불어로 질문을 해 데니 불어 왕초보인 나의 기는 더 죽어 있었다.  


개똥이 사방에 돌아다니는 거리들, 유부녀 가리지 않고 던지는 남성들의 추파, 지나치게 자유분방해 보이는 분위기, 한국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만 더욱 커져갔다. 그러다 보니 가능한 프랑스어를 배우지 않겠다는 이상한 의지까지 생겨났다.


어학연수는 필수라 학교는 갔지만 불어에 일말의 관심도 생기지 않았다. 그렇게 교실에는 몸만 갖다 두었을 뿐, 내 영혼은 새로운 학교에서 나처럼 힘겹게 적응하고 있을 나의 아이들 곁에 가 있었다.


교수님은 어느 날부터인가 내가 힘들어하고 있음을 눈치채시고는, 내가 답할 차례가 되면 슬며시 내 책상 앞에 오셔서 책에서 답해야 할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르켜 주시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교수님은 수업이 끝나고 조심스레 내게 말을 걸어오셨다.


‘’혹시 네가 허락한다면 매주 수요일마다 수업 끝나고 네게 불어를 따로 가르쳐주어도 되겠니? ‘

6개월만 나와 이렇게 불어를 한다면 분명 너는 불어를 잘 말하게 될 거야. 수업 끝나고 한 시간만 내게 시간을 주겠니? ‘’


그렇게 몇 개월인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내가 수업에 빠지지 않는 한, 매주 수요일마다 수업이 끝나면 교수님은 소르본느 대학 정문이 보이는 카페에서 한 시간씩 불어를 가르쳐주셨다. 교수님은 자신이 나를 초대한 시간이기에, 반드시 본인이 값을 치러야 한다는 설득과 함께 특히 내가 커피 값을 절대 내지 못하게 하셨다.


교수님은 발음에서부터 기초를 하나하나 영어로 친절히 가르쳐주셨다. 또 한국인으로서의 이곳에서의 나의 삶에 대해서도 관심 있게 살펴주셨다.


사실 안타깝게도 교수님의 이름조차 나는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교수님과의 마지막은 그저 학기 방학이 되면서 수업이 끝났고, 다음 학기에 다른 대학에 어학연수를 등록하게 되면서 더 뵙지 못하게 된 것이 마지막이었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할 기회를 그렇게 놓쳐버리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면 적응하기 힘들었던 나의 파리 생활을 살펴주며 아무 이유도, 목적도 없이 친절을 베풀고 도와주신 천사 같은 분이셨다.


한국을 그리워하며, 향수병을 앓던 나의 초기 파리 생활은, 이렇듯 사방에서 나타난 천사들의 친절로 조금씩 안정을 찾으며 프랑스에 대한 마음을 열 수 있게 해 주었다.    


무거운 걸 들고 길을 걷고 있으면 어느새 누군가 내 짐을 들어주고, 문을 열려고 힘을 쓰고 있으면 누군가 뒤에서 문을 밀어주고, 갑작스러운 비에 처마 밑에 동동 서있으면 누군가 머리 위에 우산을 씌어주고, 울고 있으면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은 두 배가 된데...라고 말을 건네주던 수많은 알지 못하는 거리의 누군가들...


나는 그중 누구도 알지 못한다. 모두 그저 지나 가는 거리의 낯선 행인들이었고 거리의 천사들이었다. 그리고 나는 누가 봐도 파리생활에 익숙지 못한 한 이방인이었다.


파리에서 이렇게 낯선 사람들로부터 이유 없는 친절과 ‘받아들여짐’을 경험 함으로 내가 얻은 또 하나의 큰 선물은 ‘자유’였다.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자유. 나를 수용함으로 다른 사람을 두려움 없이 수용할 수 있는 자유..


어제 아침 뉴스에서 한국에 온 탈북학생들이 북한에서 받은 협박보다도 한국인의 탈북자들에 대한 편견이 더 고통스럽다는 인터뷰를 들었다. 같은 민족일 뿐 아니라 어떤 현실에서 그들이 여기까지 왔는지 누구보다도 우리가 잘 알고, 그래서 누구보다도 이해받고 수용되어야 할 사람들이 탈북민 동포들이다.


우리의 작은 친절이, 이웃에게 수용됨을 경험하게 해 주고, 이 경험을 통해 자신을 수용하는 용기와 힘을 얻게 된다면, 그리고 그 힘이 자신에 대한 신뢰를 구축해 주고, 자신에 대한 신뢰는 다시 타인에 대한 신뢰의 기초가 된다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사회적 영향력이 얼마나 큰 지를 알 수 있게 된다.  


내가 만났던 프랑스의 수많은 천사들은 프랑스인의 핵심 가치 중 하나인 ‘박애’ 정신*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행동이었다고 생각한다. (박애는 프랑스혁명의 이념 중 하나로 모든 국민이 하나의 공동체로서 서로 돌보고 협력해야 한다는 사상, 국민 간의 형제애와 연대, 상호협력과 지원을 의미한다)


  이렇게 비록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우리는 서로 연결되고, 서로 영향을 끼치기에 ‘우리’이다. 이웃에게 하는 작은 행동은 나비효과가 되어 언젠가 우리 자신에게 돌아온다. 나를 사랑하듯 이웃을 사랑함이 결국 나를 사랑함이 된다.


내게 이유 없는 사랑과 친절을 베풀어주었던 프랑스의 천사들을 기억하며, 감사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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