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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 라 Jun 28. 2024

파리 바둑 카페에서의 작은 승리

뱁새가 황새를 따라잡던 날

종이 한 장으로 이루어진 창작 수업.


한 때 이미지의 매력에 빠져 미술학교를 다닌 적이 있다. 그중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수업이 있다. 미술 수업이었는데 교수님은 들어오시더니 학생들에게 A4용지 하나를 달랑 나눠주시고는 나가셨다. 3시간의 수업이었다. 황당하였다. 황당함을 느낀 건 나뿐만이 아니라 같은 반에 있던 다른 한국인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아무 말없이 미소만 지었다. 그리고 우리는 호기심으로 다른 프랑스 친구들은 무얼 어떻게 하는지 돌아다니며 구경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우리 둘 외에 당황해하는 친구들은 한 명도 없는 것 같았다. 모두들 저마다 진지한 표정으로 각자의 독특한 아이디어를 구상하며 작업에 몰두해 있었다. 어떤 친구는 종이에 무엇인가를 열심히 그리더니 그것을 오려 입체적으로 세워놓고 스케치북에 그것을 그리기 시작했다.


다른 친구는 종이접기를 하여 작품을 만든 후 그것을 소재로 그림을 그리는 등 무한한 창작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우리는 친구들이 만들어내는 흥미로운 창작 과정을 감상하며  3시간이 다 지났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단 한 사람의 작품도 같은 것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교육을 받고 훈련되어 온 이들과 나는 무엇으로 경쟁할 수 있는가?


이들이 어릴 적부터 받아온 창의적 교육과 훈련의 프레임 안에서 생각한다면 나는 답이 별로 없어 보였다. 하루아침에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미술학교에서 확인한 바다.


바둑카페에서의 첫 승리


그러던 어느 날, 수학교수들이 즐겨하는 바둑 카페에 초대를 받았다. 어릴 적 아빠와 바둑을 두었던 기억도 있고 파리에서 바둑을 두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신기해 초대에 응했다. 사실 어릴 적 둔 바둑은 알까기 정도의 수준이었지 깊이는 없었다. 당연히 나는 바둑울 둘 때마다 패배의 연속이었다. 파리에서 바둑은 주로 수학교수들의 취미로, 바둑 이론 책을 읽으며 연구하는 사람들이다. 바둑을 통해 수학 이론을 실험하고 증명한다.


하루는 바둑을 두지 않고 경기를 참관하게 되었다. 이 사람 저 사람, 여러 사람의 바둑 게임을 관찰하다 보니 바둑 전체의 흐름이 이해되었다. 전체를 보는 눈이 열리자 전에 보지 못했던 바둑의 수가 깨달아졌다. 나는 바로 게임을 청했다. 그리고 6개월 만에 첫 승리를 맛보았다.


프랑스인들과 겨루어 처음 얻은 승리였다. 이 날 이후로 나는 몇 달 동안 바둑게임에서 계속 이겼다. 사실 바둑을 두던 사람들은 그랑제꼴이나 높은 수준의 고등대학을 나온 수학자들이어서 이들을 이긴 것이 내게는 작지 않은 의미가 있었다.


한국인의 강점


이 과정에서 나는 한국인으로서 내가 받은 교육의 놀라운 강점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프랑스인들이 받은 교육과는 정 반대의 교육을 받은 것이 나의 약점이라 생각했지만 그 반대로 그것이 바로 나의 강점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프랑스인들에 비해 한국인들에게 월등한 장점, 바로 전체를 볼 줄 아는 눈과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많은 지식을 하나로 통합하고 그것을 빠르게 적용해 내는 순발력이다.


또한 한국인들은 성과를 내는 것에도 훈련되어 있다. 즉 결론과 목적에 대한 포커스를 놓치지 않도록 훈련받는다. 그것은 학교 과정에서 치르는 수많은 시험으로 다져진다. 과정은 목적을 향해 가는 길이고, 길은 여러 길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같은 목적지에 도착해야 한다. 목적지에 이르기까지 긴장을 놓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과정이 훌륭했어도 목적지에 이르지 못했다면 그 과정은 의미가 없어진다. 그렇게 한국은 50년이란 세월 동안 세계가 놀랄만한 성과를 이루어 냈다. 어떻게든 목적지 까지 가는 힘은 한국인들의 특성이다.


 그러기 위해선 과정에서 얻은 경험들과 지식들을 통합하고 엮으며 더 나은 길을 만들고 더 빠르게 도착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내야 한다. 이렇게 한국의 교육은 모두가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내도록 훈련한다. 즉 모두를 리더가 되게 하는 교육이 일반적인 교육 과정에서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오히려 모두가 리더의 능력을 갖고 있어서 리더가 너무 많은 것이 우리 사회의 문제일 수 있다. 리더는 하나하나의 요소들을 파악하면서 전체를 통합하여 하나로 이끌어 가는 사람이다. 저마다 그런 역량들이 있다 보니 한국 속담으로 배가 산으로 갈 때가 많다.


반면 프랑스 교육은 과정을 중요시 여기고 과정 자체가 목적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같은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을 목표로 두지도 않는다. 전체를 특정 목적에 맞게 통합시키고 특정 목적지에 도달하도록 이끄는 것은 리더들의 역할이다. 구성원들의 역할이 아니다.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샘을 깊이 파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한다.


이렇게 자신의 분야에서만 깊은 전문성을 갖추다 보니 이외 분야에 대한 지식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사실 다른 분야의 지식을 습득할 시간에 자신의 분야를 더 깊이 파는 것이 현명하다. 다른 분야의 지식은 다른 분야의 전문가를 의지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프랑스 사회에서는 어릴 때부터 팀워크를 매우 중요하게 교육시킨다.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능력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서로의 퍼즐이 하나로 맞춰줘야 비로소 함께 큰 그림을 완성한다는 것을 배운다.  


그렇게 프랑스는 소수의 엘리트들이 사회를 이끌어 간다. 그들은 주로 그랑제꼴을 통해 배출된다.  오늘날은 그랑제꼴에 대한 접근성이 제한적이라는 지적과 함께 교육과 직업 기회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 특정 배경과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엘리트 사회는 다양한 사회적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해, 일부 사회 계층의 이익이 소외된다는 지적이 있다. 이런 엘리트 사회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프랑스는 교육 시스템 개혁, 사회적 다양성 증진,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민주주의 역사를 따져보면 프랑스는 230년, 한국은 75년이다. 반면 문맹률은 한국이 세계에서 제일 낮다. 프랑스만 해도 기능적 문맹률(일상생활에서 읽고 쓰기가 어려운)이 7%나 된다.


한국인의 교육에 대한 열정은 세계적이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을 겪으면서 교육은 국가 재건과 발전의 중요한 수단이었고 모두가 일당 백을 해내야 하는 시대를 살아내야 했다. 아무것도 없는 잿더미에서 일어나기 위해선 모두가 모든 지식을 두루 갖추고 혼자서 모든 일을 다 처리해 내야 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는 리더로서의 훈련을 받게 되었고 우리가 겪은 역사의 위기는 오히려 기회와 축복이 되어 오늘날 한국을 세계의 리더국으로 이르게 해 주었다.   


한국인의 또 다른 놀라운 장점은 위기에 강하다는 것이다. 위기를 많이 겪은 탓이다.


위기는 기회이다.


우리가 겪는 위기와 실패와 부족함은 결국 그것을 이겨내고 그 위에 서게 하도록 하는 기회와 축복이 되기 위해 우리에게 찾아온 또 다른 선물이다.  

개인적 인생을 보아도 그렇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세 아이의 싱글맘으로서 아이들을 경제적, 정신적, 물리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 큰 위기였지만, 결국 이 위기가 나로 통역이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해 주었고, 넘어져도 뒤돌아볼 새 없이 열심히 앞을 향해 가게 했으며, 나의 무능함을 발견함으로 발전을 위해 노력하도록 용기를 주었다.


세 아이가 없었다면 내가 그렇게 열심히 살았을까?  이들을 부양해야 하는 의무가 없었다면 내가 그렇게 열심히 일했을까? 아이들이 이런 환경에서는 더 불행을 느낄 수 있다는 생각이 없었다면 아이들의 행복을 이렇게나 소중히 생각하고 간절히 노력했을까?


사실 세상에서 내게 제일 어려운 것 하나를 꼽으라면 불어였다. 그 어려움이 불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하게 만들었고 그 열심은 내게 열정을 일으켜줬고 기꺼이 전공보다 불어 통역가의 길을 선택하게 해주었다.


우리에게 불리했던 모든 고난의 환경은 결국 모두 우리 인생의 축복의 재료로 사용된다.


전쟁과 가난을 겪은 우리의 윗세대는 죽음과 배고픔의 고통을 알았기에 우리에게 그들의 아픔을 물려주지 않으려고 몇 배로 일하면서 다음 세대를 위한 부의 기초를 다져주었다.


우리가 한 국가에 속해 경험한 것이든, 한 가정에 속해 경험한 것이든 우리의 모든 쓰고 단 경험들은 우리를 가장 훌륭하게 완성시키기 위한 막대기와 지팡이가 되어준다.  


우리가 가진 것이, 경험한 것이, 다른 사람의 것과 비교하면 항상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바로 이 점이,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것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내가 가진것은 다른 사람에게 소중한 것이 된다. 반대로 다른 사람도 내게 그렇게 소중한 이유다.


그동안 너무 성과 위주의 교육과 다그침을 받아 온 우리의 교육이 단점이기도 하지만 단점이라고 버릴 것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교육을 받지 못한 다른 나라 사람들과 함께 일할 때에는 장점이 되어 준다는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단점을 장점으로 활용하면 단점을 보완해 나갈 수 있다.


글로벌 세계에서 우리의 장점을 잘 알아야 다른 사람을 무엇으로 도울 수 있는지, 또 우리는 어떤 도움을 받아야 하는지도 알 수 있다.


생 텍쥐베리의 명언이 생각난다.


누군가는 성공하고 누군가는 실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차이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 타인과 함께 타인을 통해서 협력할 때에야 비로소 위대한 것이 탄생한다.


우리가 이미 가지고 얻은 것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하지만 우리는 자주 내가 가진 것보다 아직 갖지 못한 것으로 인해 좌절한다. 내가 가진 것을 알아야 가지지 못한 것을 알 수 있고 그것을 알아야 가질 수도 있다.


내가 가진 것이 장점이 되려면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장점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모두가 다름으로 세상은 더 풍요로와 지고 아름다움은 끝을 다할 날이 없으며 우리의 가치는 날마다 더 증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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