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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 라 Jun 28. 2024

빵점맞을 각오

프랑스 대학에서 한국 교육의 강점을 발견하다

 빵점 맞을 각오


첫 학기를 모두 빵점 맞을 각오로 예습이란 생각으로 10과목을 무리하게 수강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나는 첫 학기에 모든 과목을 다 이수했다. 그것도 논리학과 컴퓨터 언어는 정답을 다 맞혀 만점이었다. 이외 몇 개의 과목에서도 16점이라는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불어 실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시작한 대학원 공부는 예상한 바였지만 쉽지 않았다. 대 부분의 학우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진학을 했지만 나는 세 아이를 키우면서 10여 년의 단절이 있었고. 더욱이 모국어가 프랑스어인 학우들과 비교하면 모든 면에서 뱁새와 황새의 싸움같이 느껴졌다.


먼저 첫 시험이었던 언어학은 프랑스 학우들도 어려움을 호소해 특별히 교수님은 150페이지가 넘는 자료를 따로 만들어 나눠 주셨다. 하지만 당시 불어실력으로는 그 자료를 다 읽고 이해하기에 역부족이었다. 나는 내 수준에 맞는 자료를 도서관에서 따로 찾아 요약해 두었다. 먼저는 언어학의 전체적 개념을 정리하고 다음은 그것이 어떻게 적용되는가에 대한 이해가 핵심일 거라 판단했다.


대학원 시험이 처음인지라 어떤 식으로 문제가 나올지 전혀 아이디어도 없고 원래 빵점 맞을 생각으로 시작했으니 부담은 없었다. 사실 시험을 보러 가지 않는 것이 맞지 않을까 고민도 했지만 낙제를 하더라도 시험에 응하는 것이 학생의 도의라는 생각으로 시험을 보러 갔다.


시험장에 도착하자 프랑스 학우들은 교수님이 나눠주신 자료들을 열심히 읽고 있었다. 순간 시험장에 온 내가 민망스러웠다. 분위기상 나도 무언가를 봐야 할 것 같아 한심한 마음으로 나의 요약 페이퍼를 훑어보았다.


시험지가 내 앞에 도착했다. 근데 웬일인가? 교수님이 내 페이퍼를 보신 건지 내가 교수님의 페이퍼를 투시한 건지 내가 준비했던 페이퍼의 모든 내용이 시험문제로 나와 있었다.


수업이 끝나면 주제가 무엇이었냐고 물어보던 외국인이었던 나는 높은 점수를 받은 반면 프랑스 학우들 중 적지 않은 수가 10점 이하의 점수로 낙제를 했다.


다음 시험은 논리학으로 마지막 수업 시간에 교수님은 어마하게 꼬이고 꼬인 복잡한 문제를 3시간 동안 풀어내며 논리를 이끄는 과정을 설명하셨다. 수업이 끝나고 나는 속으로 이 이상의 어려운 문제는 없으니 이 유형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공부해야겠구나 생각했다. 그 문제를 풀기 위해선 지금까지 배운 모든 논리가 적용되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 발의 총알로 얻은 승리


나는 프랑스 친구들에 비해 준비할 수 있는 총알이 몇 발 밖에 없는 사람이다. 프랑스 학우들이 10 문제를 준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내겐 그들에 비해 훨씬 적은 문제를 준비할 수 있는 시간과 능력이 있다.


나는 판단한 대로 마지막 수업에 교수님이 풀으셨던 문제를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그리고 시험날, 나의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다. 교수님은 마지막 수업 유형의 문제 하나만을 내셨다. 그 문제를 해결하는데 3시간이 필요했으니 3시간의 시험에 한 문제를 내신 것이다.


 나는 25분 만에 모든 논리를 다 풀어낼 수 있었다. 교수님은 거침없이 논리를 풀어 답을 찾아내는 나의 시험지를 흥미로운 듯이 쳐다보며 내 곁에 몇 분을 머물러 계셨다.  


만점이었다. 그러나 교수님은 나를 따로 부르시더니 만점이지만 평소의 나의 수업 참여도를 고려해 15점을 주었다고 설명해 주셨다. 나는 감사하고 만족스러웠다.


이렇게 과목 과목마다 예상하고 준비한 것들이 적중하면서 10과목을 첫 해에 어렵지 않게 통과했다. 사실 한 해를 이렇게 보내면 공부할 준비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무리해서 10과목을 신청했는데 뜻밖에도 첫해에 총 이수과목을 거의 다 통과하게 된 것이다. 덕분에 불어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다른 대학원 공부를 하나 더 도전해 볼 수 있었다.


엘리트 사회


사실 프랑스 친구들과 함께 공부를 하면서 내가 느낀 두려움이 있었다. 아주 어릴 적부터 이들이 받은 교육과 내가 받은 교육은 너무 다르고 그런 훈련들이 쌓여 성장해 온 이 친구들과 이 시점에서 그들의 라운드에서 세 아이의 엄마였던 내가 경쟁한다는 것은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는 격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일단 어릴 적부터 프랑스인들은 철저한 언어 훈련을 받는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모든 과정에서 불어는 가장 중요한 수업이고 언어를 통해 문학과 철학과 예술이 함께 교육된다.


전 노무현 대통령 임기 시절, 프랑스 방문을 계기로 매일 경제에서 프랑스의 엘리트 사회를 취재하기 위해 경제, 사회, 교육을 움직이는 각 분야의 엘리트들을 만나 인터뷰하는 프로젝트의 통역을 맡게 된 덕에 프랑스의 엘리트 사회를 조금 들여다 볼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중 폴리테크닉 (École Polytechnique 프랑스의 최고 명문 공과대학 중 하나로 과학, 엔지니어링, 기술 및 수학 분야에서 세계적인 연구 중심지로 인정받고 있다)의 총장님을 만나 그랑제꼴인 이 학교의 교육 시스템과 커리큘럼을 설명 들을 수 있었다.


일단 입학한 첫 해에 가장 중요한 수업은 불어와 수학이라는 것이었다. 리더가 될 사람들이기에 국어(불어)를 논리 있게, 완벽하게 훌륭하게 설득력 있게 구사하는 것이 필수적이며 공공연설법, 협상기술, 프레젠테이션 기술 등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받는다고 했다. 공과대이기에 뜻밖이었다. 그리고 또 중요한 과정은 노동자들이 근무하는 현장에서의 인턴십이라 했다. 리더가 되기 위해선 노동자들의 현장을 경험하고 그들의 근무 현장의 현실에 대해 알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셨다.


유치원시절부터 엄격하게 교육받은 국어와 말하기 교육을 그랑제꼴에서 까지 더 철저히 배우다니, 프랑스인들의 불어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기도 하지만 언어의 지배력과 위력을 알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웃으로 또는 교회에서 알게 된 프랑스 친구들 중 그랑제꼴 출신 친구들이 몇 있었다. 교수, 연구자 양성으로 유명한 에꼴 노르말 슈페리어 (École Normale Supérieure ENS) 출신의 수학 교수님, 현 마크롱 대통령이 졸업한 사회 과학 분야의 최고 교육기관인 시엉스포 (Sciences Po -Institut d'Études Politiques de Paris ) 출신의 24세에 5개 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국제 변호사, 파리국립미술학교인 에꼴 데 보자르드파리 (École des Beaux-Arts de Paris) 출신의 문화부 장관상을 받은 유대인 화가.


이들과 대화를 하면서 이들의 어릴 적부터의 교육과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훈련하고 다져온 실력들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철저한 기초교육과 그 기초교육을 바탕으로 한 훈련 위에 자신들만의 고유한 연구와 개발이 끝없이 이어져 오늘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었다. 참고 서적 한 권 없이 백지만 달랑 들고 바캉스를 떠나서는 수학 책을 쓰고 돌아온다는 실력이라면...


다 차려진 밥상 교육


그에 비해 내가 받은 한국의 교육은 기초교육의 비중보다는 그것을 응용하고 가공한 교육들이 더 큰 비중을 차지했다. 선생님들은 열심히 음식을 만들고 학생들은 다 차려놓은 음식을 먹는다. 그러나 남보다 앞서기 위해선 학생들은 더 빠르게 더 많이 흡수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과정에서 헤매며 시간 낭비하지 않도록 선생님들은 결론도 미리 알려준다.


덕분에 빠른 성장을 할 수 있었다. 지식으로도 탁월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처럼 어떤 지식이든 어려움 없이 네이버나 인터넷을 통해 쉽고 빠르고 정확하게 얻을 수 있는 나라는 흔치 않다. 지식을 남들의 수고로 얻었던 만큼 자신의 지식을 공유하는 것에도 너그럽다. 우리는 지식을 나만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식은 공유되어야 한다는 개념이 있다.


그러나 프랑스 인들은 지식을 값없이 공유하지 않는다. 지식은 곧 힘이고 돈이다. 일찍이 지적 소유권에 대한 개념이 교육된 것도 있지만 각자의 서랍과 노트 위에서 본인들의 지식을 길어냈기 때문에 그 지식들은 곧 그들의 정체성의 일부가 된다.


기초 교육을 철저히


대학원에서도 교수님들은 기초 이론은 철저히 나머지는 방향성 정도 만을 제시해 준다. 응용과 개발은 모두 학생들의 몫이다. 정답도 없다. 각자 어떤 이론과 근거를 가지고 그것을 어떻게 적용 발전시켰는지의 과정이 중요하다. 아직 결론을 내지 못했어도 상관없고 아직 완성되지 않아도 상관없다. 언젠가 그 길의 끝에서 결론은 나올 것이고 각자 자신들만의 답을 완성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기초를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기초는 눈에 잘 보이지 않고 성과로 평가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초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높은 건물을 지으려면 그 만큼 깊고 견고한 기초가 세워져야 하듯이 더 높이 더 깊이 가려면 그만큼 기초를 튼튼히 해두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기초 교육을 중요시하는 프랑스의 교육 시스템이 많은 분야에서 더 깊고 더 높이 오를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준다.


결과는 과정의 일부


한 번은 한국에서 인테리어 공부를 하고 유학 온 후배가 기말에 제출할 작품에 대한 불어 설명을 도와달라고 찾아왔다. 먼저 자신의 이전 작품을 보여주었다. 너무 아름답고 훌륭한 작품이었다. 그런데 그 작품으로 말도 안 되게 낮은 점수를 받아서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테크닉의 화려함과 아름다움이 가득한 (훌륭한 결과를 갖고 있는) 작품이었지만 작품의 콘셉트, 스토리 텔링, 근거 이론이나 철학 등에 대한 배경 없이 그저 화려하기만 한 (과정이 없는) 작품으로만 평가되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그런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작품에 대한 스토리 텔링과 하나하나의 색상 및 요소요소에 숨겨져 있는 의미들, 그걸 통해 표현하고 싶은 세계관과 거기에 이르기까지 근거된 이론과 철학 등을 함께 만들어 갔다. 덕분에 후배는 좋은 점수를 받고 실패를 만회했다.


자신과 자신의 작품을 규명하는 일은 오직 자신만의 몫이다. 남이 그것을 규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자신만이 과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 장의 백지만으로도 그 속에 자신의 세계를 담았다고, 그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 설명할 수 있다면 그 하얀 백지에는 그 사람의 세계가 담겨 있는 것이다.

즉 결과만 보기보다는 결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중요한 것이다. 과정은 곧 결과의 부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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