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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 라 Jun 13. 2024

프랑스인이 가장 많이 쓰는 말, 괜찮아?

작은 배려와 관심으료 표헌되는 이웃의 가치

 괜찮아? (Ça va? 싸바?)


프랑스에 살면서 가장 많이 들은, 그래서 프랑스인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라 생각되는 가장 짧은 문장, 괜찮아? (Ça va 싸바)이다. 끝을 올려 말하면 안부를 묻는 말이 되고 끝을 내려 말하면 괜찮게 지낸다는 답변이 되는 인사말이다. 때론 안 좋은 일이 있을 때 걱정을 표현해 주는 인사말이 되고 상대를 보살피기 위한 위로의 표현도 되고 잘 지내니 라는 근황을 묻는 말도 되는 모든 상황에서 통하는 가장 짧은 문장이다.


불어 한 마디도 할 줄 모른 채 프랑스에 오게 된 나는 불어야 말로 내 인생에서 경험한 가장 불가능한 일이라 여겨졌다. 아직은 손이 많이 가는 두 유치원 생을 낯선 프랑스 학교에 보내기 시작한 엄마로서 어학연수를 등록했지만 실재 학교에 나갈 시간이나 불어 공부를 할 심적 시간적 여유는 없었다.


프랑스 유치원은 아이들의 알림장을 통해 선생님과 학부모가 소통한다. 아이들이 지각을 하거나 결석을 하게 되거나 특별한 상황이 있을 때는 항상 알림장을 통해 선생님에게 사전에 알려야 한다. 어쩔 수 없이 불어 문장을 써야 하는 나는 문법책을 뒤져가며 짜깁기를 해서 알림장을 채워나갔다. 그렇게 생활불어는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대학원을 진학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아무리 공부를 해도 항상 부족한 실력의 불어를 대학원에서는 맘껏 불어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된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대학원 공부, 첫 해에 나는 다 빵점 맞을 것을 각오하고 다음 해를 위해 미리 들어본다는 생각으로 10 과목을 수강신청 했다.


하루는 몸이 안 좋은 상태에서 언어학 수업을 듣고 있었다. 불어를 이해하기 위해 너무 집중한데다가 몸도 안 좋아서 3시간의 수업을 소화하려니 뒷 머리가 죄여 왔다. 교수님은 수업 중간에 그런 내 상태를 바로 알아보시고는 갑자기 나를 향해 ‘’Ça va? 물으시며 다가오셨다. 조금 아파 보이는 내 표정에 수업을 멈추고 괜찮냐며 살피시는 교수님의 친절이 당황스러웠다. 그때까지 교수님과 개인적으로 대화해 본 적도 없었을뿐더러 나는 불어도 잘 못하는 유일한 외국인으로 조용히 그림자처럼 지내는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교수님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중간 쉬는 타임에 괜찮다는 나를 결국 차에 태워 손수 운전까지 해서 지하철 역까지 데려다주셨다. 아픈 몸에도 열심히 들으려고 애쓰는 나의 태도를 기특하게 생각해서 인지 모르지만 교수님들 뿐 아니라 학우들 역시 항상 내게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당시 나의 불어는 전문 지식을 다루는 대학원 수업을 듣기에는 너무나 역부족이었다. 이런 무능한 나를 위해 스스로 원칙을 하나 세워두었다.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수업은 절대 빠지지 말자였다. 수업이 끝나면 학우들에게 오늘 수업 주제가 무엇이었어?라고 질문해야 하는 날들도 많았다.


어느 날은 수업이 끝나고 한 친구가 부탁을 한 것도 아닌데 자신이 열심히 수업시간에 적은 노트를 빌려주기 시작했다. 그 친구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수업이 끝날 때마다 기꺼이 자신의 노트를 들고 와 '’ 필요하면 빌려줄까?'’ 하며 내게 물어왔다.  


내가 배려를 받는 이유는 하나였다. 불어를 잘 못하는 유일한 외국인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불어가 모국어인 그들에 비해 나는 항상 언어적 약자의 위치에 있는 자였고 그 면에서 평등을 위한 약자에 대한 배려였다 생각한다.


평등을 위한 배려가 몸에 배어 있는 국민성. 상대의 부족함을 가능성으로 보아주며 약점을 극복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지지해 줄 수 있는 여유! 선진국의 여유일까?


프랑스 언론사에 던진 도전


나의 대학원 졸업 과정에는 인턴이 필수였다. 당시 모든 원생들에게 가장 인기가 좋았던 Sciences et Avenir의 인턴 자리를 나 역시 꿈꾸었다. Sciences et Avenir (시엉스 에 아브니)는 프랑스 일간지인 ‘르 몽드’ 그룹의 권위 있는 과학저널로서 보통 2년 동안의 인턴이 미리 예정되어 있는 곳이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인턴자리를 요청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나는 바로 거절을 당했다.


‘’ 여긴 프랑스인들의 언어실력으로도 일하기 힘든 곳 있데 외국인인 당신에게는 너무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고 전화를 끊으려는 순간 숨 돌릴 틈도 없이 대답했다.


 ‘’ 잠깐! 당신 말이 맞습니다. 외국인으로서 내가 당신들 만큼 불어를 말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당신들이 나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나는 이 부족함을 극복할 기회조차 갖지 못할 것입니다. ‘’

라고 또박하고 말했다.



그녀는 내 말뜻을 바로 파악했다. 공정과 정의를 대표하는 언론사로서 나를 거절하는 이유는 ‘차별’이라는 범주에 속한다는 것을 그것을 지금 지적받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녀는 숨을 고르더니 이내


‘’ 끊지 말고 기다리세요. 나는 결정권자가 아니니 책임자에게 물어보겠습니다’’


몇 분 후 그녀의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이어졌다.


‘’그럼 당신 말대로 당신에게 면접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 이렇게 나는 면접 약속을 얻어 냈다.


결론을 말하면 나는 면접을 잘 통과했고 면접 후 바로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돌아왔다.

인턴 첫 주 새 식구도 환영할 겸 작은 파티가 열렸는데 40여 명의 기자들과 관계자들이 나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 둣했다.


‘’ 네가 바로 그 한국인이지? 환영한다! ‘’...


이해되지 않았지만 나에 대한 존중의 태도를 느낄 수 있었다.


뒷 날 들어보니 마침 당시 나의 학우가 그곳에서 인턴을 하고 있었고 담당자가 나와 통화한 내용을 직원들에게 공유하었다고 했다. 불어도 잘 못하는 외국인 학생이 프랑스 언론사에 던진 도전이 매우 흥미로왔던 것 같다.


비록 도전은 내가 했을지라도 나에게 기꺼이 기회를 주기로 한 이들의 결정은 프랑스인들의 평등의식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런 평등의식의 가치관에 '’ 약자란 존재하지 않는다!’’ 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의 강자는 한 때 모두 약자였기 때문이다. 또는 우리 모두는 어느 부분에선 강자이지만 어느 부분에선 약자이다. 강자는 기회가 좀 더 주어졌던 사람들이고 그 기회를 잘 활용하여 약점을 극복해 낸 사람들이며 약자들은 아직 그 과정 중에 있는 사람들일 뿐이다.


나는 프랑스인들이 약자를 배려하는 이유를 나름대로 이렇게 해석하고 싶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서로도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마이클 센델의 말이 떠오른다.


‘’ 정상에 오른 사람은 오직 자신의 힘만으로 가 아니라 운이 좋았던 것이며.. 나의 성취가 나만의 재능과 노력으로만 달성되지 않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나의 성공에 운(運)이 작용했다는 것은 다른 이의 실패에도 운(運)이 작용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


세계적으로 강국이 된 한국도 이젠 약자를 약자로 보는 것이 아닌 동반자로 보는 여유를 가질 때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아니 이미 그런 여유들이 한국을 세계적인 강자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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