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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 라 Sep 27. 2024

톨레랑스

예상치 못한 인생의 사건들을 기회로 여길 때

톨레랑스 (Tolérance)


위기는 항상 기회를 제공한다. 모든 문제에는 항상 해결책이 있다. 위기에 대한 유연성, 실수와 실패에 대한 유연성,  나와 타인에 대한 관용과 허용,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상황의 희생자가 되지 않겠다는 의지에서 시작되는 창의적 용기와 유연성, 이런 정신만 있다면 어떤 위기에서도 당신은 그것을 딛고 당신이 원하는 승리를 향해 나가게 될 것이다.


톨레랑스란 프랑스어로, 번역하면 관용, 도량. 허용, 용인 등의 의미를 담고 있다. 철저하고 촘촘한 행정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 프랑스 제도에서 예외를 인정함으로 각 사람의 어쩔 수 없는 형편과 처지를 개별적인 사건으로 재고하여 처리해 주는 아량을 베푸는 근거를 마련해 준다.


프랑스에 체류하기 위한 첫 번째 행정 관문은 체류증 신청과 발급이다. 프랑스는 특수목적이나 상황을 제외하고 이민은 매우 까다로운 편이고 모든 유학생들은 한국에서 학생비자를 발급받아 프랑스에 도착하여 3달 안에 체류증을 신청해야 한다. 그 외에도 프랑스인들 스스로 행정지옥이라 부를 만큼 서류의 나라이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모든 서류를 버리지 않고 보관할 뿐 아니라 점점 서류가 많아질 것을 예상하여 처음부터 관리 시스템을 갖추고 관리를 해나가는 것이 좋다. 별것 아닌 듯한 서류 한 장의 보관이 결정적인 순간에 당신을 위기에서 구해줄 팁이 되어줄 수 있다.


일반적으로 한국에서부터 필요한 서류들을 구비해서 가기 때문에 처음 체류증 신청에는 큰 문제가 발생하는 일은 없다. 불어를 못해도 용감하게 혼자 체류증 신청을 하러 가는 것을 추천한다. 이런 경험들이 쌓여 스스로에 대한 실재적인 자신감이 만들어지고 아는 사람도 없는 곳에서 누구를 의지해야 하나 하는 불안감에서 스스로 나와 자신에게 안정감을 제공하면서 한걸음 씩 앞으로 나가게 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물론 통역비를 아끼니 경제적으로 도움이 된다. 한번 통역의 도움을 구하기 시작하면 계속해서 통역을 의지하게 되고 불어도 늘지 않을뿐더러 앞으로 겪어야 할 수많은 서류 지옥에서 항상 남을 의지해야 하는 불안감에서도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실재적으로, 불어를 못해도 통역을 대동하지 않은 경우, 행정관도 당신이 처해있는 언어적 약자의 상황을 참작해 줄 수 있으므로 오히려 담백하게 상황에 맞서는 것이 최선이 될 수가 있다.


또 프랑스 초기 생활에서 주의해야 할 한 가지 사실은, 어떤 정보가 필요할 때 사람들의 말을 다 믿어선 안된다는 것이다. 스스로 확인할 능력이 되지 않는다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그 말이 믿어도 되는 사실인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그 말이 믿어도 되는 사실이라도 또 한 가지는 ‘케바케’, 경우마다 다르기 때문에 반드시 당신의 경우가 다른 사람에게 일어난 경우와 같다고 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반드시 그러므로 사전에 포기하지 말고 부딪혀야 한다.


정상적이고 일반적인 상황에서 특별히 어려운 상황이 닥치지 않겠지만 살다 보면, 100% 모든 기준에 응하지 못하는 특별한 상황들이 발생한다. 그러나 그 한 번의 상황으로 인해 당신의 꿈이 수포로 돌아가거나 당신이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이 무너지게 두어선 안된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창의적 용기이다. 당신만의 특수한 상황에서 당신만이 발휘할 수 있는 용기와 기치가 필요하다. 이럴 때 당신에게 출구가 되는 것이 바로 프랑스의 톨레랑스 정신이다.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같이, 나의 유학생활에도 그런 특수하고 치명적 상황이 두 번 있었다. 두 상황은 위에서 내가 설명한 모든 것을 단번에 이해시켜 주는 케이스라 생각되어 소개하고자 한다.


한 번은 체류증과 관련한 경우이다.


나의 프랑스 유학의 발걸음은 앞에서 말했듯이 두 아이의 엄마이며 한 남자의 아내로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돌보기 위한 출발에서 시작되었다. 나를 위한 의지가 없이 가족을 위한 의지로만 출발했기에 남편의 유학을 돕고, 자녀들을 돌보는 것이 나의 우선순위였다. 그러니 자연스레 나의 학교 생활은 체류증에 필요한 출석일수에 지속적으로 부응하지 못했다.


역시나 나는 그러한 결정적 이유로 체류증 발급에 어려움을 얻게 되었다. 체류증 발급을 몇 차례 거부당하는 일이 발생했으며 이미 지나간 시간들이니 이제 와서 요구하는 서류를 만들어낼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 다시 거슬려 학교를 다닐 수 없었고 또 세 번째 아이를 프랑스에서 임신했기에 다시 돌아간다 해도 상황은 크게 달라질 수 없었다.


아이들은 이미 학교에 잘 적응해서 유치원생이던 아이들은 국민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처음 일 년 동안은 친구들과 불어를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고 문제가 제기되었던 아이들이 하루아침에 프랑스 아이들처럼 불어를 완전하게 구사하며 친구들과 바캉스를 즐기며 완전히 프랑스 생활에 뿌리내린 상태였다. 결국 불법 체류를 할 수 없으니 나만 한국에 들어와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내가 수집한 모든 행정적 정보들은 내게 체류증 발급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당장 귀국을 선택하기 전에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남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체류증 승인을 허가하는 최고 사령관인 도지사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었다. 결국 최종 결정권자는 도지사임으로 모든 담당자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권한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인 체류증 거부를 전복시킬 수 있는 최종 권위자는 한 사람, 도지사뿐이고 가능하다면 내게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나와 나의 가족의 운명이 나의 체류증 발급의 최정 권위자인 도지사에게 달려있음을 어필하는 내용을 담은 편지를 도지사 앞으로 등기우편을 보냈다. 그로부터 몇 개월 후, 도청으로부터 등기 우편이 날아왔다. 놀랍게도 몇 개월의 서류 공백이라는 상황조차도 도지사의 이름으로 허용했으며, 나의 상황을 참작해 학생 신분이 아니어도 가족들이 프랑스에 체류하는 한 함께 할 수 있도록 하는 동반자 비자로 변경 명령까지 체류증 센터에 내려놓았다는 통지였다. 어떤 서류도 요구하지 않으니 도지사의 편지 한 장만 들고 체류증 센터를 방문하는 내용과 방문 일자가 적혀있었다.


체류증 센터 담당자들은 의아하다는 듯이 서로 문의를 하며 웅성거렸지만 최종 결정권자의 결정에 아무도 토를 달지 못했다. 덕분에 나는 주한 프랑스 대사관에서조차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했던 동반자 비자를 얻게 되었다.


톨레랑스 정신 덕분이다.


또 다른 위기는 샤를 드골 공항 세관에서 발생하였다. 프랑스에 들어온 지 1년 후,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딸을 위해 연습용 플루트를 구입해서 들어왔다. 프랑스에서 처음 출국과 귀국을 경험하였던지라 연습용 악기를 새것을 사 왔으니 세관 신고를 당연히 해야 하는 거겠지 하는 생각에 드골 공항에서 나는 스스로 세관대로 갔다.


나중에 보니 드골 공항에서는 아무도 세관대를 통과하지 않는다. 세관대에서는 스스로 가방을 올려 열어 보이는 나를 재미있게 바라보더니 역시나 악기를 발견하더니 악기값보다 몇 배가 되는 세금을 요구했다. 당시 나는 불어가 짧아 그들의 말을 정확히 다 이해할 수 없었고 경직된 세관원들의 모습에 겁이 질려 있었다. 차라리 아무 말도, 아무 대응도 하지 않는 것이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용히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일단 악기를 압수하도록 두고 악기를 되찾기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물어보고 평안히 물러났다. 당시 상황에서 나는 세관 규정에 대해 아는 바도 없었고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판단이 안 되는 상태에서 입을 열었다간 실수 밖에 할 것이 없었다.


나는 돌아와 이 상황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한국인들도 이런 경험을 한 사람이 별로 없는지라 제대로 된 정보를 수집하기가 어려웠다. 그럴 때 제일 빠른 길은 역시 둘러가지 않고 직진으로 가는 길이다. 나는 공항의 세관 책임자에게 편지를 썼다. 나의 상황을 사실 대로 이야기하고 공항 세관에 잡혀있는 나의 악기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를 문의하였다.


몇 주 후 세관 책임자로부터 등기우편이 도착했다. 나의 악기는 연습용 악기이므로 세금을 물을 필요가 없으며 그냥 이 편지를 들고 세관에 가서 악기를 찾아가라는 답변이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의 다수의 다양한 의견들이 난무했었다.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제대로 된 답이 없는 듯한 난처한 특수상황, 바보같이 세관대를 왜 갔느냐는 말에서부터 하물며 공항의 세관들도 잘 몰라 실수를 저질렀으니 말이다. 만약 내가 그때 직접 편지를 써서 해결할 생각을 못했다면 악기의 몇 배가 되는 세금을 내었든지 아니면 소중한 나의 딸이 음악가의 길로 들어서기 위해 내었던 용기와 희망을 잠시 미뤄야 했을 것이다.


인생에는 예기치 못한 일들이 항상 찾아온다. 예상치 못한 일들에 대해 우리 자신 역시 톨레랑스 정신을 가지고 여유 있게 대처해 나갈 필요가 있다. 톨레랑스 정신은 사랑과 정의가 충돌할 때에 사랑과 정의를 둘 다 만족시키는 여유로운 마음이다.


위기는 항상 기회를 제공한다. 모든 문제에는 항상 해결책이 있다. 위기에 대한 유연성, 실수와 실패에 대한 유연성,  나와 타인에 대한 관용과 허용,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상황의 희생자가 되지 않겠다는 의지에서 시작되는 창의적 용기와 유연성, 이런 정신만 있다면 어떤 위기에서도 당신은 그것을 딛고 당신이 원하는 승리를 향해 나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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