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사랑하는 직업을 선택하라. 그러면 당신은 당신의 삶동안 일이란 것을 할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공자-
첫 인턴 생활
첫 인턴을 시작했던 Sciences et Avenir에서 일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그들의 일에 대한 태도였다. 모든 직원들은 각자 맡은 고유의 업무가 있고 역할들이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업무를 수행한다. 즉 과학 저널을 매달 발행하는 일이다. 편집 회의를 다 같이 하여 주제가 선정되면 기사 작성을 위한 준비가 여러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기자를 제외한 모든 사람은 해당 기자가 기사를 훌륭하게 써내도록 돕는 지원군들이 된다.
때로는 기자가 불시에 이런저런 힘든 요청을 해 올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와 함께 일하던 엘자(엘리자베스를 줄여 엘자라고 부름)는 미소 가득한 얼굴로 활짝 웃으며
‘’ 걱정 마! 나 그러려고 여기 있는 거잖아! ‘’
라고 답하며 항상 즐겁게 일하는 모습은 너무 인상적이었다.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역할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일을 이룬다다는 팀워크 정신으로 사무실은 항상 활기차고 즐거운 분위기였다.
한국의 수직적 문화와는 달리 자신들의 의견을 어느 때든 누구에게든 서슴없이 내고 표현하는 수평적 문화, 혁신과 창의성을 일으키며 프랑스인들로 즐겁게 일할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엘자는 당시 유치원 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였다. 때론 아이에게 일이 생겼다며 사전 연락도 없이 당일 아침 통보로 그녀가 꼭 참석해야 하는 중요한 회의에 빠지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엘자의 상사든 누구든 그녀 때문에 지장을 겪게 된 업무에 대해 불평하는 사람은 없었다.
일과 삶의 균형을 중요시하는 직장문화이기에 가능한 태도일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일에 대해 누가 강요해서가 아닌 자신의 선택이라는 자부심이 더 적극적으로 일을 즐길 수 있게 하고 일과 삶을 통합시켜 준다. 또한 이런 자발적인 근무 태도가 일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일 것이다.
유연한 근무시간
유연한 근무시간 제도도 프랑스 직장인들의 만족을 더해주는 중요한 요소다. 법정 근무시간 주 35시간, 4일 근무가 가능하다. 어떤 직원은 아이와 함께 하기 위해 수요일에 (프랑스 아이들은 수요일에 학교를 가지 않는다) 직장을 나오지 않고 4일 동안 35시간을 근무한다. 대부분 금요일은 오전 근무만 하거나 아예 금요일을 일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각자 형편에 맞게 근무시간을 조율한다.
OECD의 Better Life Index에 따르면 프랑스 직장인들은 직장 환경, 일과 삶의 균형, 근무 시간에 대해 대체로 만족한다. 덴마크나 노르웨이 보다는 만족도가 낮지만 유럽 평균 수준이다.
법정 휴가도 연 5주에 11일의 공휴일을 더하면 연 7주나 된다. 직장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보상은 긴 여름휴가 시간이다. 이 휴가를 위해 일 년을 일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가족과의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대부분 이 휴가를 다 사용한다
뼛속 깊이 한국인이었던 내게 제일 적응하기 힘들었던 것은 두 시간이나 되는 점심시간이었다. 동료들과 함께 레스토랑에 가서 2시간 동안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주제의 대화를 나누는 시간은 마치 수많은 못이 깔려 있는 의자에 앉아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당시 나는 프랑스 문화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하는 단계였고, 표현력, 발표력의 부족, 소심한 성격에 플러스 한국인들과 주로 접촉하다 보니 프랑스인들의 일상 핫뉴스들에 대한 정보도 부족했다. 대화의 주제는 주로 아주 사소한 것들이었다. 예를 들어 당시 영화를 소개해주는 대표적인 두 개의 잡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3유로이고 다른 하나는 3.5유로였다. 이 두 잡지 중 어느 것이 더 괜찮은지를 두 시간 동안 토론한다. 그것도 정말 열띠게.
사실 이들에게는 주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서로의 생각을 표현하고 이야기하며 공감하는 대화 자체가 의미가 있는 것이다. 덕분에 지금은 대화가운데서 창조되는 언어의 유희와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듯 생각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생각을 끌어내는 대화의 즐거움을 누구보다 즐기는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당시 한국인으로 내가 받아온 가정교육은 표현하고 드러내는 것보다는 절제를 미덕으로 배웠고 가능한 표현을 적게 하고 표현도 가능한 중립적으로 은근하게 표현하는 것이 예술이었다. 게다가 막내로 자라 항상 집안에서 발표기회를 제공받지 못했기에 조용히 침묵하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는 내게, 무엇보다 그리 친하지도 않은 직장동료들과 오랜 대화의 시간은 낯설고 힘든 것이 당연했다.
소통은 상대를 배려하는 것이다
이런 힘든 시간 속에서 프랑스인들에게서 ‘표현되지 않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는 것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들이 왜 그렇게나 열띠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주장하는지, 때로는 숨을 쉬지도 않고 이야기를 한다. 숨 쉬는 시간 동안 대화를 뺏겨버리기 때문이다. 또 상대가 이야기 중인데도 마구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티브 토론에서도 쉽게 이런 장면들을 목격할 수 있다. 그래서 때로는 이들이 말하는 게 아니라 싸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달리 말하면 그만큼 상대의 생각과 표현을 존중하고 동일하게 자신의 표현과 생각도 존중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곧 상대를 배려하는 것이다. 상대에게 알리지 않는 것은 결국 상대를 존중하지 않은 것이 되고 그만큼 상대와의 관계에서 멀어지겠다는 신호가 된다. 하지만 상대가 자신에게 소통한 내용에 대해서는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나의 생각을 말했지만 상대가 그것을 받아들일지 말지는 상대의 몫이다. 프랑스어에는 접속법이 있는데 객관적 사실이 아닌 주관적 생각이나 의견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표현법이다.
상대에게 무엇을 요청하거나 바람이나 희망을 이야기할 때 직설법을 쓰지 않고 접속법을 쓰는 것은 나의 요구나 생각에 대해 상대의 주관적 생각을 구한다는 표현이다. 상대가 나의 요구에 무엇을 선택하고 결정할지는 오직 상대에게 달려있다는 예의를-표현한다. 당당하게 나의 생각과 바람을 표현하지만 그에 대한 상대의 몫도 예의를 다해 남겨놓는 것이다.
나의 생각을 말했지만 상대가 그것을 받아들일지 말지는 상대의 몫이다. 프랑스어에는 접속법이 있는데 객관적 사실이 아닌 주관적 생각이나 의견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표현법이다.
상대에게 무엇을 요청하거나 바람이나 희망을 이야기할 때 직설법을 쓰지 않고 접속법을 쓰는 것은 나의 요구나 생각에 대해 상대의 주관적 생각을 구한다는 표현이다. 상대가 나의 요구에 무엇을 선택하고 결정할지는 오직 상대에게 달려있다는 예의를-표현한다. 당당하게 나의 생각과 바람을 표현하지만 그에 대한 상대의 몫도 예의를 다해 남겨놓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종종 한국과 프랑스 기업과의 통역의 현장에서도 적용된다.
두 파트너 간에 계약이 성사된 후 일의 진행이 계약 때 생각했던 것처럼 안될 경우가 있다. 그럴 때 일부 한국 기업들은 먼저, 미안한 마음이 들어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 혼자 일을 해결해 보려고 노력한다. 최선을 다 하여도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아 더 손을 쓸 수가 없을 때가 되면 양해를 구하기 위해 연락을 취한다.
한국기업의 선한 동기와는 다르게 애초 계약과 달라져가고 있는 상황에서 파트너로서 먼저 자신들에게 알리지 않은 것에 대해 프랑스기업들은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반면 중간에 이런 조짐이 시작될 때 미리 소통을 하고 상대 쪽도 이런 상황에서 미리 대응할 수 있도록 배려하거나 파트너로서 다른 해결책이 있을지 문의나 자문을 구한다면 일을 훨씬 쉽게 풀어나갈 수 있다.
프랑스 기업과 한국 기업 간의 국제 소송 문건들을 번역하다 보면 그 분쟁의 시점들은 많은 부분 이런 소통의 부재 시점에서 출발되었음을 보게 된다. 소송증거자료들은 언제부터 어떤 내용의 소통들이 이루어졌는지, 수년간의 소통과 불통 내용이 담긴 자료들로 가득하다.
한 번은 한국의 한 웨딩업체와 프랑스의 유명 웨딩 전문 업체와의 파트너 계약 과정을 통역으로 함께 했다. 계약 이후 한국업체는 계약 내용을 지킬 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았다, 다행히 프랑스 업체와 통역 과정 중에 개인적 친분이 생겨 중간에 한국 업체의 어려운 상황에 대한 사전 소통을 해줄 수 있었다.
그리고 한국 업체에도 공식적으로 메일을 보내 계약 내용을 이행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설명을 해두는 것이 좋다고 알려줬다. 사실 한국 업체는 이제 막 웨딩 사업을 시작하여 계약 내용들이 거품이 많은 상태였고 당연 지키기가 어려운 약속들을 계약을 얻기 위해 한 부분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이 계약 상태는 계속 유지되고 한국기업의 몇 번의 약속 펑크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기업은 끝까지 이 기업과 함께 가주었는데 그것은 충분한 설명과 함께 사전 양해와 상대의 승낙을 구하는 소통을 통해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함으로 가능한 일이었다.
‘일 보단 사람이 중요하고 사람의 일은 관계로 이루어지고 관계는 결국 소통으로 이루어진다. 언어의 통역도 결국은 사람을 통역하는 것이다 ‘
결국 우리의 모든 활동을 통해 사람을 얻는다. 사람이 일을 위해 있지 않고 일이 사람을 위해 있다.
일이 노동이 아니라 즐거움과 행복이 되게 하는 것은 일보다 사람을 중요시 여기고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며 소통하는데서 시작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고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런 나의 일을 내가 선택하였다는 것을 인식하였을 때 그 일은 나의 일이 되고 나의 인생이 된다.
지금 나의 삶이 만족스럽지 않거나 원치 않은 인생을 살고 있다고 느낄 때 나는 멈춰서 이렇게 나 자신을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