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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 라 Jul 27. 2024

표현되지 않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아름다움을 느낀다는 것은 무엇일까?

8보이지 않는 세계는 ‘표현’을 통해 보이는 세계로 나오게 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나게 하는 것, ‘창조’의 핵심 과정이다. 표현에는 이렇듯 창조의 힘이 나타난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나는 프랑스 친구들의 바캉스 단골 초대손님이 되곤 했다.


프랑스 별장에서의 여름 바캉스 풍경은 이렇다. 서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별장을 소유한 한 명의 지인과의 연결고리를 통해 서로 모인다. 별장의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6~8명을 평균하여 오고 간다. 때론 나처럼 국적이 다르거나 최소한 출신국이 다른 사람들, 연령대도 다양할 수 있고 직업도 다양하다.


오전엔 각자 취향대로, 보통 그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스포츠나 등산, 승마, 꺄약, 테니스, 한 밤의 수영 등의 활동을 즐긴다. 또는 나처럼 정원을 좋아하는 사람은 정원에 앉아 책을 읽다가 오후에 시내 한 바퀴 커피 한 잔이나 맥주 한잔을 하고 돌아온다.


대신 저녁식사는 성대하게, 다 같이 즐긴다. 저녁식사는 보통 7시부터 다 같이 준비를 시작해, 8시부터 본격적인 식사가 시작돼서 12시까지 이어진다.


 그 시간 동안은 대화 그리고 또 대화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가족, 커플, 싱글, 각자의 삶도, 고민도 다르다. 서로 다른 직업적 과제, 서로 다른 형편과 상황에서 일어나는 사건, 상담, 축하, 비판, 희망, 커플 또는 자녀와의 갈등과 사랑, 다음 해의 계획 등 주제는 다양하다.


한 가지 공통점은 서로 다른 상황, 국적, 문화, 직업이지만,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들어주고 나아가, 나와 다른 그들만의 인생과 직업 이야기에서 내가 경험할 수 없는 것을 배우고, 때로는 냉철한 비판으로 서로의 발전을 도모하고, 서로의 매력을 말해주고, 아름다운 대 자연을 음미하며 누릴 뿐 아니라, 사람 안에, 인생 안에 숨겨진 아름다움과 다름을 발견하고 함께 누린다는 것이다. 사람의 따뜻함과 가득한 인간미가 흐르는 시간이다.

아름다움을 느낀다는 것은 무엇일까 결국 그 내용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감각은 편견 없이 바라보고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이해하려고 할 때 감각은 깨어난다. 알아야 보인다. 작품을 그린 사람의 의도와 맥락을 알면 느낌을 가지게 된다. 그런 재료를 선택한 이유, 그 재료에 그림을 그릴 때의 느낌. 이런 것까지 확인하면 예상한 것과 다른 감각이 몸을 통과한다. 관심의 강도만큼 알게 되고 닮고 싶은 만큼 다가가게 된다. (심미안 수업, 윤광준)


예술작품도 그 내용을 이해해야 그 아름다움을 발견하듯이, 사람도 그 마음(내용)을 이해해야 아름다움이 발견된다. 이해하는 만큼 알게 되고, 아는 만큼 다가가게 된다.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 (물론 그중에는 서로 알고 있는 지인들도 있지만, 평소에 서로 만날 시간이 없기에 바캉스 때나 한 번씩 만나 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들이다) 이렇게 서로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깊은 대화를 허물없이 하는 가에 대해 놀라움이 있었다.


그러다 이들의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무언가를 바라볼 때 ‘음미’하는 눈으로 본다는 것이다. 자연을 바라볼 때도, 사람을 바라볼 때도 하나의 ‘대상 (Objet, 오브제)’으로 바라보며 그 대상을 이해하려 하고, 음미하는 습관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렇게 대화의 문이 항상 열리게 된다는 사실도.


‘’ 너의 미소는 정말 특별해, 진주보다 귀한 미소를 가졌어’’

‘’ 너의 파란 샌들이 도시적이네, 너와 잘 어울려’’

‘’ 너의 눈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는 거 같아’’


예쁘다, 아름답다 이런 표현보다는 구체적으로 각자. 그 순간에 발견한 매력을 이야기해 준다면 대화는 항상 새로워진다.


이렇게 모든 사람에게서 아름다움를 찾아내는 것이 습관화되면, 만날 때마다 새로운 매력을 표현해 줄 수 있다.


그것은 상대의 매력을 넘어, 그것을 발견해 내고 표현해 내는 사람의 능력이며 매력이기도 하다.


 한국인으로 나는 표현을 아끼는 가정환경에서 자라, 나 역시 표현이 많지 않은 사람이었다. 바캉스 때뿐 아니라 이렇듯 표현이 많은 프랑스인들과의 대화는 항상 부담스러웠다.


그러다 이런 표현들을 자꾸 듣고, 불어 통역이 직업이다 보니, 어느새 나도 모르게 이들처럼 표현이 많아졌다. 말이 많아졌다. 하루는 한 프랑스 친구가 한국어로 전화통화를 하는 나를 보더니, 나의 한국어 버전과 프랑스어 버전이 다르다고 이야기했다.


한국어를 말할 때는 조용하고 말이 적으며 천천히 이야기하는 반면, 불어로 말할 때는 톤도 높아지고 말도 빨라진다 했다. 그러고 보니 나 역시 그런 차이를 느꼈던 것 같다. 그런 불어의 매력에 이끌려, 끝없이 불어 사전을 탐구하며, 실타래 같이 엉겨있는 듯한 불분명한 나의 머릿속 생각들을, 단어 하나하나에 담긴 개념과 함께 정리해 나갔던 것 같다.  


불어 번역을 할 때도 이런 차이를 느낀다. 같은 문장을 번역하면, 불어 문장은 한국어 문장에 비해 1/3은 더 길다. 첫 째 불어 문장은 주어가 빠지면 문장이 성립되지 않는다. 한국어는 주어를 잘 쓰지 않는다.


불어 문장엔 명사에, 구체적 묘사를 담은 형용사를, 그것도 2~3개 동반해 사용하기를 즐겨한다. 그래서 예쁜, 귀여운, 멋진 같은 형용사는 기본으로 자주 표현하니 앞에 위치시키고, 구체적 묘사가 이루어지는 긴 형용사들은 명사의 뒤에 둔다. 이렇게 명사에 정체성을 부여하는 형용사들은 필수, 동사를 구체적으로 묘사해 주는 부사들도 기본이다. 수식어들은 정확히 어떤 단어를 수식한 것인지 정확히 대명사들을 통해 구별해 줘야 한다.


그것을 다 한국어로 번역하면 문장이 매끄럽지 못해 가독성이 떨어진다. 한국어는 그런 많은 수식어들을 가능한 간결하게 표현한다. 그래서 한국어에는 표현되지 않는 여백에도 많은 표현이 숨겨져 있는 것이 매력이다. (물론 기술문서나 법률, 계약서 등에서는 한 단어도 누락됨이 없이 치밀한 번역이 필요하다.)  


이렇듯 한국과 프랑스 문화와 정서는 정반대라 할 수 있을 만큼 다르다. 표현하지 않는 것에, 더 많은 표현을 숨기는 한국의 미와 정서, 표현되지 않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는 프랑스의 문화와 정서.


한국인은 말로 하는 표현보다는 눈으로, 행동으로 표현하는 데에 더 익숙해 있다. 우리는 눈을 바라보며 서로의 마음을 읽고, 사랑한다고 말로 하진 않아도 자녀를 위해, 아내를 위해 죽도록 일할만큼 사랑한다.


그러나 이제 서로 눈을 마주치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가족과도 문자로, 메신저로, 커플들도, 서로의 얼굴보다 문자로 소통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문자는 표현을 필요로 한다, 그것도 구체적인 표현을. 표정으로 보여줄 수 없으니까, 나의 표정을, 마음을 대신할 표현이 필요하다.


보이지 않는 세계는 ‘표현’을 통해 보이는 세계로 나오게 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나게 하는 것, ‘창조’의 핵심 과정이다. 표현에는 이렇듯 창조의 힘이 나타난다.


사랑한다. 아름답다, 행복하다 이런 보이지 않는 마음속의 실재들이, ‘표현’됨으로 살아서 움직이게 된다.


그 대상에게 사랑을 만들어내고 행복을 만들어 낸다. 그 사랑과 행복은 다시 우리에게로 돌아온다.


입을 열어 사랑한다. 행복하다, 아름답다 표현하기를 주저하지 않으리라.



진: 2024년 7월의 지중해, 니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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