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교토 한 달 살이 중
나는 게으른 사람이다
확실히 그렇다. 나는 여기저기 분주하게 쏘다니는 것보다는 방 한편에 노트북을 켜고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보며 소소하게 즐기는 맥주 한 캔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선망해왔던 곳으로 떠나는 여행을 좋아하기도 한다.
내가 여태까지 떠났던 여행은 재미는 있되 여유가 없었다. 항상 도착한 첫날은 캐리어 짐을 꾸릴 때부터 누적된 피로와 긴장감이 동시에 몰려와 짐을 채 풀지도 못하고 잠들곤 했고, 다음 날 눈을 뜨면 행여나 신청해둔 조식 시간을 놓치게 될까 봐 졸린 눈을 비벼가며 부랴부랴 식당으로 내려가곤 했다.
그렇게 조식을 먹고 나면 전 날 난잡하게 풀어헤친 캐리어 속에서 오늘 입을 옷을 뒤적거리며 '아, 오늘 다녀와서 정리해야겠다.'라고 속으로 생각한 뒤 빠르게 준비를 마치고 정해둔 일정대로 움직였다. 그렇게 해가 지고 숙소로 돌아온 저녁, 캐리어는 여전히 정리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내 발에는 늘 휴족시간이 붙어 있기 일쑤였다.
그러한 여행이 의미 없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여행이 그것이 아닐 뿐.
나는 왕복 4시간가량의 출퇴근길을 매일 오갔다. 돌아오는 버스는 항상 만석이라 버스 앞문 계단에 찰싹 달라붙어 진땀을 빼가며 퇴근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렇게 집에 돌아오면 다음 날 출근을 위해 한시라도 빠르게 잠들었다. 그러다 보니 휴식과 여유는 늘 내 희망사항 최상단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때마다 내 머릿속에는 2년 전 교토에서 마주한 풍경이 떠올랐다.
해 질 녘, 교토의 카모 강변에 걸터앉아 저마다의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 틈에 내가 있었다. 손에는 다음 목적지가 찍힌 구글맵이 켜진 핸드폰을 쥔 채로.
그것이 그때의 여행 중 내 뇌리에 가장 강렬하게 남은 장면이었다. 그 사람들의 여유로운 모습이 너무도 부러웠다. 내가 원하던 여행이 바로 저들의 모습이었는데. 그때의 나는 그것을 두고 어떤 목적지로 가고 있던 것이었을까?
그렇게 한참이 지나 나는 카모 강에 다시 가보고자 마음먹었다. 그리고 덜컥 카모 강변에 위치한 숙소를 무려 한 달이나 예약해버렸다.
그리고 퇴사를 해버렸다
그리고 지금, 나는 카모 강변에 걸터앉아 맥주를 벗 삼고 이 글을 써 내려가고 있다. 나는 이제야 안정을 찾고 있다. 아마 걸음이 느린 '마음속의 나'는 2년 전 바쁘게 이곳을 지나쳐간 나를 따라오지 못해 결국 주저앉아 내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아무튼, 그렇게 가을 옷을 갈아입고 있는 교토에서 나의 한 달 살이가 시작됐다. 이것이 어떠한 성과와 의미를 남기길 억지로 원하지 않는다. 그냥 단지 매번 갈망하던 이 순간을 온전히 향유하고자 한다. 낮에는 따스한 햇살에 기대고 저녁에는 아름다운 노을에 기대어 강처럼 흘러가고자 한다. 여유가 넘치다 못해 흘러내려 무척 게으르게 보일 만큼.
쉽지는 않다. 아직도 하루하루가 흐르는 것이 두렵고, 이른 아침이면 저절로 눈이 떠진다. 그리고 이 아까운 시간에 더 많은 것을 보고 듣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며 나도 모르게 스스로를 채찍질하려 할 때가 많다.
그러나, 나는 나를 침착하게 길들이고 있다. 지금은 그러지 않아도 된다며. 조금 더 게을러도 된다며.
그렇게 천천히 숙소의 창문 틈으로 스미는 햇살을 느낄 줄 알게 되고, 운치 있는 풍경을 조금 더 천천히 그리고 깊게 마음속에 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이곳에서 조금 더 게을러 지기로 했다. 흐르는 시간은 잊은 채로.
● 함께 한 플레이리스트
John Legend - Overload (feat.Miguel)
Joji - SLOW DANCING IN THE DARK
Skizzy mars - Be Lazy
이소라 - 처음 느낌 그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