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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쁨의 멋진 신세계

바쁨의 미래 #4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조지 오웰의 <1984>와 더불어 대표적인 디스토피아 SF소설로 꼽힌다. 오웰이 ‘빅 브라더’를 통해 공포와 감시가 만연한 사회를 풍자했다면, 헉슬리는 쾌락에 세뇌당하고 주체적으로 생각할 힘을 잃은 사회를 그렸다. 오웰이 경고한 것은 강력한 중앙기관에 의한 정보의 통제였지만, 헉슬리가 두려워한 것은 무지 (無知)의 보편화였다.


헉슬리는 집단의 우매함을 과소평가하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선동되고 자극적인 것만을 좇으며, 골치 아프지만 중요한 이슈를 애써 회피하고 싶어 하는지 간파했다. <멋진 신세계>에 등장하는 “소마”는, 복용하면 금세 기분이 좋아지는 일종의 마약이다. 소설 속 지배계층인 알파는 대중들에게 소마를 보급하고, 하류층인 델타, 엡실론은 소마를 복용하며 바보가 된 채, 어떤 불만도 느끼지 않고 착취당한다. 알파는 체제 유지를 위해 무력을 쓰는 대신, 소마를 통해 대중이 생각할 힘을 차단한다.

멋진 신세계 소마.jpg 멋진 신세계의 소마

우민화에 경종을 울렸던 헉슬리의 통찰력은 오늘날 무척 유효하다. 나치는 로마가 빵과 서커스로 대중들을 지배했다는 것에서 영감을 받아 선동에 앞장섰고, 포르투갈은 악명 높은 3F (Futebol - 축구, Fatima - 종교, Fado – 음악) 정책을 통해 독재정권을 유지했다. 한국도 이를 벤치마킹해 전두환 정권 시절 3S (Sports, Sex, Screen) 정책을 펼쳤다. 이처럼 독재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대중이 똑똑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독재자의 은밀한 조작 없이도, 현대 사회는 멋진 신세계와 닮아가고 있는 듯하다. 점차 바쁜 삶을 사는 현대인들은, 일상에 치여 여유를 잃고 생각할 겨를이 없다. 바쁨에 지친 이들에게, 고단한 현실을 잊게 해줄 소마는 범람하는 가볍고 자극적인 정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환경, 기아, 정치 등의 다소 무거운 주제보다 연예인 가십 같은 가벼운 흥밋거리, SNS에 경쟁적으로 포장된 삶을 올리는 것 등에 더욱 관심을 가진다. 먹고살기 바쁘기 때문에, 정작 알아야 할 중요한 것은 정보의 쓰레기에 묻힌 채 외면당한다. 그 어느 때보다 지식에 대한 접근성은 높아졌지만 통찰력 있는 지혜를 얻기는 어려워졌다.


앞서 일과 교육에서 비롯된 바쁨의 양극화를 이야기했는데, 바쁨을 비자발적으로 잃을 잉여 계층은 간절히 소마를 원할 것이다. 이들에게 급작스럽게 주어질 시간적 여유와 이들이 느낄 엄청난 권태. 바쁘게 사는 것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이 이것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을까? 빠른 템포로 사는 것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이 이 묵직한 침잠을 견딜 수 있을까? 느림 속 명상과 사색에 익숙하지 않은 현대인들은, 시간을 보낼 그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찾으며 바쁨의 공백을 채우려 할 것이다.


게임이나 비디오 혹은 가상현실은 이들에게 훌륭한 소마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활동은 몰입하기 쉽고 저렴하게 시간을 보내는데 무척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게임이나 드라마 보는 것을 몇 시간 이상 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한 번 몰입하면 얼마나 시간이 잘 가고 중독적인지! 게다가 가상현실의 발달은 새로운 놀이를 제공해 줄 수 있는데, 영화 <Her>에서처럼 소프트웨어와 연애를 한다든지, 새로운 가상현실 플랫폼에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확산될 것이다.

영화 her.jpg OS와 사랑하는 남자가 나오는 영화 Her

그나마 오래 일하고 퇴직한 장년층은 모은 재산으로 여행 가고 골프 치며 새로운 취미를 배우지만, 청년기부터 가처분 소득이 현격히 줄어들 잉여 계층은 그럴만한 돈이 없기에 비용이 저렴한 디지털로 몰릴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현실에서 잃어버린 바쁨을 작은 스마트폰 스크린 안에서 찾을 확률이 높다. 미래의 사람들은 모든 것으로부터 연결되는 한편, 점차 개별화되고 고립될 것이다.


주목할 것은, 이들이 점차 디지털이 주는 소마에 취해 사고력이 무뎌지고, 가상의 세계에서 바쁨을 찾으면서 사회는 붕괴될 위험이 있다는 점이다. 현실 세계에서 바쁘고 싶어도 바쁠 수 없는 이들은, 디지털이 “고객 맞춤형”이라는 이름으로 파놓은 참호 안에서 고립된 채 서서히 바깥 생활을 멀리할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히키코모리들이 많아지면 가족, 결혼, 출산과 같은 전통의 가치들은 심각한 도전을 받을 것인데 이는 국가의 존립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


다음의 <멋진 신세계>에 나오는 구절은 분명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쾌락으로부터 벗어날 여가가 없으며 잠시도 앉아서 생각할 시간이 없어졌지. 또한 불행히도 그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무의미한 시간의 터널이 입을 벌린다면 항상 소마가 대기하고 있는 거야. 유쾌한 소마가 있지. 주말에는 반 그램. 휴일에는 일 그램. 호사스러운 동방으로 여행하기 위해서는 이 그램. 달나라의 영원한 암흑 속에서 잠자고 싶으면 삼 그램. 그곳에서 돌아오며 시간의 터널을 빠져 저쪽 편에 와 있게 되는 거야.


바쁨의 양극화가 불러올 미래는 분명 비극이다. 하지만 이대로 가면 헉슬리의 경고가 현실로 다가올 수 있다. 과연 “바쁨의 멋진 신세계”를 막을 수 있을까?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너무 바쁘게 사느라 잃어버리고 있는 것들을 회복해야 한다. 바쁨을 파괴해야 한다. 너무 늦기 전에! 다음 파트에서는 바쁨의 파괴를 위해,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들에 대해서 다뤄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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