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쁨의 파괴 #3
밀란 쿤데라의 소설 <정체성>은 권태기에 빠진 연인의 이야기다. 이혼녀 샹탈과 연하남 장마르크는 함께 살며 권태를 느낀다. 샹탈은 나이를 먹고 더 이상 남자들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에, 한 때 야심만만했던 장마르크는 야망을 접고 그저 그런 일로 생계를 연명하며 권태를 느낀다. 어느 날 샹탈이 받은 익명의 편지는, 권태로 가득한 이들의 세계에 작은 균열을 일으킨다. 이 편지는 장마르크가 연인 샹탈의 권태를 달래기 위해, 시라노라는 가상의 남자를 연기하며 보낸 익명의 러브레터다. 샹탈은 본인이 아직 낯선 남자의 구애를 받는 여자라는 것에 희열을 느끼고 시라노에게서 받은 편지를 몰래 숨기는데, 장마르크는 그런 샹탈을 보며 야릇한 질투심을 느낀다.
쇼펜하우어는 “인생은 욕망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와 같다”라고 말했는데, 실로 그렇다. 인간은 태어남과 동시에 권태를 선고받았다. 우리는 무언가를 욕망하고, 이를 성취하며 찰나의 만족을 느끼는 사이, 권태는 삶을 엄습하고 새로운 욕구를 만들어 낸다. 우리가 권태를 느끼는 대상은 사물이나 기호, 타인과의 관계 심지어 자기 자신이 될 수도 있다. 단언컨대 살면서 권태를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으리라. 심지어 신도 권태를 견디지 못해 인간을 창조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권태의 역사는 길다.
권태란 무엇인가? 권태 (게으를 권 倦, 게으를 태 怠)는 곧 게으름으로, 권태와 연관된 지루함, 심심함, 단조로움, 따분함 등의 단어들은 그리 긍정적인 인상을 주진 않는다. 실제로, 권태를 경험한 사람은 참을 수 없는 심심함 속, 어떠한 역동성 혹은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고통을 느껴본 적이 있으리라. 파스칼도 <팡세>에서 권태에 대한 생각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열정도, 할 일도, 오락도, 집착하는 일도 없이 전적인 휴식 상태에 있는 것처럼 인간에게 참기 어려운 일은 없다. 이때 인간은 자신의 허무, 버림받음, 부족함, 예속, 무력, 공허를 느낀다. 이윽고 그의 마음 밑바닥에서 권태, 우울, 비애, 고뇌, 원망, 절망이 떠오른다”
이처럼 권태는 특유의 무기력하고 비생산적인 속성으로 인해, 바쁨을 최고선으로 치는 현대사회에서 다소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된다. 하지만, 권태는 바쁨과 대척점을 이룸으로써 우리에게 삶의 균형을 선물한다. 바쁨이 고속열차라면, 권태는 간이역이다. 맹렬한 바쁨의 질주 속에서, 우리는 이따금씩 잦아드는 권태를 통해 시간의 정지를 느끼고, 바쁨의 기어를 조절하며 삶을 돌아볼 여유를 가질 수 있다. 특히나 권태는 우연한 창조 및 실존으로 가는 길목인데, 그 과정이 다소 공허하고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충분히 빛나는 유용성을 가지고 나쁜 바쁨을 파괴한다.
우선. 무기력한 권태의 순간에 위대한 발견이나 창조를 한 역사적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뉴턴이 사과나무 밑에서 한가롭게 있다가,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에 대한 영감을 얻은 것.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탕 욕조에 들어가는 순간, 물이 넘치는 것을 보며 부력의 법칙을 떠올리고 유레카를 외친 것. 침대에 누워있던 데카르트가 천장에 날아다니는 파리를 보고 좌표를 떠올린 것 등은 모두 권태가 우연한 창조로 이어진 경우다.
실제로 뇌 과학자 마커스 라이클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때, 뇌의 활동에 관한 흥미로운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아무 일도 하고 있지 않을 때 활성화되는 뇌의 부위를 발견했으며, 이런 뇌의 활동을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라 칭했다. 디폴트 모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있을 때만 작동하는 것이 특징이며, 평소에는 분리돼 있는 뇌의 각 부분을 연결하여 창의적인 생각이나 통찰력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뇌의 배신>을 쓴 뇌 과학자 앤드류 스마트는, 현대인들은 모두 잠재적 ADHD (행동발달 증후군) 환자라고 말한다. 스마트폰, SNS 등으로 인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권태로운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분주히 무언가를 하고 있는 상태가 지속되면서 뇌가 혹사당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뇌가 쉬지 못하면, 창의력이나 집중력이 저하되기 때문에 가급적 게으름을 자주 피우라고 그는 조언한다.
게다가 인텔의 영향력 있는 사회과학자이자 인류학자인 제너비브 벨도 지루함이 창의성을 증진하는 효과적인 촉매제라 말한다. 그녀에 따르면, 지루함을 느끼는 순간 뇌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새롭게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도록 작용한다. 그녀는 우리가 샤워할 때, 운전할 때, 잡초를 뽑거나 담장 페인트칠을 할 때처럼, 다소 단조롭고 심심한 일을 할 때 기발한 생각을 쉽게 만난다고 말한다.
즉, 권태는 영감의 원천이다. 우리는 권태의 순간을 맞이할 때, 시간이 느리게 간다고 느끼는데 이는 우연한 창조로 가기 위한 예열 상태다. 다소 심심하고 미지근한 권태의 과정을 겪다 보면, 어느 순간 창조를 향한 영감이 섬광처럼 찾아오고, 권태의 주체는 뜨거운 몰입의 상태에 빠진다. 질주하는 바쁨과는 달리, 권태는 고여있는 시간이며 곧 창조의 샘물이다.
한편, 권태를 통해 우리는 일상에서 벗어나, 사색하고 자신을 돌아보며 실존할 수 있다. 권태를 통한 사색은 권태의 주체로 하여금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언이 있듯이, 인간은 생각할 때 실존한다. 이때, 사색은 생각하는 힘을 기르게 하는 운동과 같은데, 특히나 바쁨의 사역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중심과 방향을 잡는데 사색이 필수적이다. 근육을 늘리려면 꾸준한 운동이 필요한 것처럼, 사유의 힘을 기르려면 권태에 자신을 용감하게 내던지고 사색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저명한 명사들은 일찍이 사색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사색적 삶은 곧 인간의 완성을 이루고, 사색의 소실은 삶을 단순히 먹고사는 행위로 퇴락시킨다고 했다. 또한 <게으름에 대한 찬양>을 지은 버트런드 러셀에 의하면, 쓸모없어 보이는 사색하는 습관은 갖가지 도그마를 피하고 여러 다양한 관점을 표출하게 함으로써, 실험적이고 공평한 태도로 모든 의문들을 고려할 수 있게 해준다. 무용해 보이는 지식에의 접근이야말로 지극히 유용하다는 것이다.
사색은 곧 자신과의 대화로 직결되는데, 이는 특히 바쁨의 급류에 휩쓸려 자기 자신을 잃어가는 현대인들에게 필요하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잘 모르고 성인이 돼서도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깊은 사색 및 본인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결여된 채, 단지 바쁨에 지배당하며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자신과 대화를 많이 하는 사람은 삶에 명확한 방향성이 있으며,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못하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등에 대한 인식이 뚜렷하기에, 바쁨에 떠밀려 자기 자신을 잃어버릴 확률이 낮다. 이들은 바쁨에 쫓기지 않고, 나름대로 각자의 시차 속에서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통제한다.
또한, 권태는 깊은 침잠이자 고독의 시간이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고독과 고립이 엄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법정스님은 고독과 고립에 대한 그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고독은 옆구리께로 스쳐 지나가는 시장기 같은 것, 그리고 고립은 수인처럼 갇혀있는 상태다. 고독은 때론 사람을 맑고 투명하게 하지만, 고립은 그 출구가 없는 단절이다”즉 고립이 일말의 소통 가능성 없이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상태라면, 고독은 관계의 피로에 지친 자신에게 선물하는 자발적이자 일시적인 격리다. 권태의 순간에 고독을 접하는 것에 능숙한 사람은, 충만한 외로움과 함께 실존을 체험한다. 이들에겐 홀로 있는 시간이 가장 덜 외로운 시간이다.
결론은 쓸모없어 보이는 권태는 사실 무척 유용하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권태를 극복하기 위해 시간 죽이기를 하는 과정까지 포함한 것이 아닌, 지루함을 느끼는 순수한 권태 그 자체가 창조와 실존으로 향하는 예비 단계라는 점이다. 하지만 바쁨이 만연한 현대사회에 권태는 그 지위를 도전받고, 심지어 악으로 격하되고 있다. 권태의 소멸은 곧 인간성의 상실 및 인간의 기계화를 의미한다. 깊은 권태를 거친 사람만이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창조를 하고, 한 층 성숙한 인격체로 거듭날 수 있다. 우리는 아다지오의 템포 속 권태로울 권리, 아니 잃고 있는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해 바쁨의 사역에서 벗어나 좀 더 권태로워야 할 의무가 있다. 마지막으로 레싱의 표현을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모든 일에 게을러지자, 사랑하고, 술을 마시고, 게으름 부리는 것만 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