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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없는 것들의 쓸모에 관하여 3 – 잠

바쁨의 파괴 #4

장자가 어느 날 낮잠을 자다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장자는 나비가 되어 날아다녔는데, 잠시 쉬려 나뭇가지에 앉아 잠이 들었다. 그런데 잠에서 깨보니 다시 인간인 장자로 돌아온 것을 보고, 장자는 인간이 나비의 꿈을 꾼 것인지 나비가 인간의 꿈을 꾼 것인지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꼈다고 한다. 이는 유명한 호접지몽 (胡 蝶 之 夢) 이야기다. 장자의 사례를 보며, 지금 존재하는 나도 어쩌면 누군가의 꿈속에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공상을 해본다.

호접지몽.jpg 호접지몽

사람마다 수면 시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잠을 잔다. 그것도 무려 인생의 삼 분의 일을! 인간의 기대 수명이 약 백 년이라 할 때, 삼십 년 정도를 송장처럼 침대에 누워 보내는 것은 그리 달가운 일은 아니다. 때문에 잠을 마치 낭비처럼 생각하는 풍조가 있는데, 실제로 잠을 줄이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자기계발, 사당오락(四當五落)과 같은 말이 유행하며 사람들의 잠을 탈취하고, 오래 잠을 자는 사람들로 하여금 죄책감을 느끼게 한다.


특히나 한국은 잠에 인색한 국가인데, 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균 수면 시간은 7시간 41분으로, OECD 평균인 8시간 22분보다 40분이나 적으며 이는 OECD 회원국 중 최하위다. 한국인은 잠을 적게 자는 대신 바쁘게 일을 하고, 공부를 하고, 술을 마시고 밤 문화를 소비하며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한다고 착각한다. 한국에서 잠을 적게 자는 것은 일종의 능력인데, 잠을 적게 자는 이들을 근면하고 부지런한 사람으로 여기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졸리면 카페인이 들어간 커피나 에너지 음료를 마시며, 쏟아지는 잠을 쫓아내는 것이 한국인의 일상인데, 이는 한국사회가 바쁨에 찌든 피로사회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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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우리는 잠에 인색하게 된 걸까? 달빛에 의존해야 했던 옛사람들에게 밤은, 잠을 자거나 집에서 정적으로 시간을 보내는 고요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19세기 에디슨의 전구 발명은, 프로메테우스의 불처럼 인류의 밤을 밝혀주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현대인에게 잠을 빼앗은 일등공신은 바로 에디슨이다. 에디슨은 하루에 서너 시간만 자며, “잠은 인생의 낭비”라고 했을 정도로 잠을 혐오했는데, 그는 전구의 발명으로 인류가 획기적으로 잠을 줄이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전구로 환하게 밝아진 밤의 시간을 활용할 수 있게 된 인류는, 잠을 줄이고 다른 일을 하는데 에너지를 쓰도록 유도됐다. 고용주는 생산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야간에도 노동자들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고, 상업주의는 밤에 특화된 소비문화를 만들며, 기존에 없던 새로운 욕구와 서비스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오늘날 현대사회에 보편적인 야근, 24시간 편의점, 각종 술집, 클럽 및 노래방 등은 모두 200년 전 밤이 어두웠던 시절에는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다.

도시 밤.jpg 밤이 되도 꺼지지 않는 도시의 불빛

한편, 밤이 길어지고 잠이 부족해진 인간은 카페인에 의존하기 쉽다. 가령, 세계인의 기호품이 된 커피는, 우리의 신체가 잠을 쫓고 바쁨의 사역을 수행하게 하는 검은 연료다. 현대인은 습관적으로 커피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하고, 피곤할 때는 커피뿐 아니라 카페인이 다량 함유된 에너지 드링크, 피로회복제 등을 벌컥 들이마시며 잠을 몰아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카페인에는 피로 해소 성분이 없으며, 카페인은 다만 신경조직을 자극해 피로가 회복된다고 착각하게끔 하는 각성제일 뿐이라고 말한다. 즉, 잠이 부족한 사람이 피곤을 느끼고 카페인을 섭취하는 것은, 지친 말에게 쉬지 않고 채찍질을 하는 것과 같다.


사실 카페인 음료의 대명사인 커피는, 본래 이슬람 수도사들이 종교의식 중 졸지 않기 위해 마시던 음료였다. 하지만 17세기를 전후로 커피는 유럽 귀족들 사이 큰 인기를 얻고, 상류층의 기호 식품이 됐다. 이후, 산업혁명 시기에 커피의 각성효과를 눈 여겨본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에게도 커피를 배급함으로써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었고 커피는 대중화됐다. 미국에서는 전시 중, 군인들의 피로를 덜어주고 사기를 진작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커피를 보급했고, 이후 커피는 미국에서 콜라만큼이나 대중적인 음료가 됐다. 한국도 19세기 말 커피를 들여온 이후,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스타벅스 매장을 보유한 도시가 서울이 됐을 정도로 커피공화국이 됐다.


즉 현대인은 기술의 발달로 밤의 시간을 얻었지만, 그 시간마저 바쁨이 지배해버리고 줄어든 잠을 카페인으로 때우며 피곤을 견디고 있다. 잠을 포기한 대가로 몽롱한 카페인에 취해 늘 바쁜 상태로 사는 것이 얼마나 악순환인지! 아리아나 허핑턴은 <수면 혁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유사 이래 어느 때보다 잠에 대해, 그리고 육체적, 정신적, 감정적, 영적 행복 측면에서 잠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잘 알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잠을 충분히 취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한 층 더 심한 역설은 기술이 발전한 덕에 잠자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게 됐지만, 인간 존재의 이 근본적인 부분과 인간의 관계가 크게 손상된 것도 바로 기술 탓이라는 점이다. 과로와 번아웃이 성공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라는 ‘집단 환상’도 한 몫하고 있다. 그저 우리는 하루 일과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그래서 줄일 뭔가를 찾게 되고, 그 과정에서 가장 만만한 대상이 바로 잠이다”


과연 잠은 가급적 줄여야 할 쓸모없는 낭비의 시간일까? 사실 잠은 무척 유용한 생산적인 시간이다. 과학 연구에 의하면, 자는 동안 우리의 뇌는 노폐물을 치우고, 기억을 형성하며, 창의성을 증진하는 활동을 한다. 또한 낮잠은 두뇌 기능을 향상하고, 안정감과 활력을 얻게 하는 단비와도 같다. 반대로 잠이 부족하면, 두뇌 기능에 마비가 와서 학습능력이 떨어지고, 신경질적으로 변하며, 면역력 저하나 알츠하이머와 같은 치명적인 질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잠은 바쁨의 피로에 지친 자신을 되찾는 생산적 활동이며, 따라서 아무리 시간이 부족하더라도 충분한 잠은 절대적으로 보장받아야 한다.


한편, 잠은 꿈이라는 특수한 매개를 통해 무의식을 체험하게 한다.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에서 꿈은 인간 무의식의 표상이라고 말한다. 신경 전문가들은 우리가 깨어 있을 때 가지고 있는 특질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고, 대부분의 특질은 깊은 심연에 무의식으로 잠재돼있다고 말한다. 즉, 잠은 우리가 평소에 인지하지 못하는, 무의식이라는 미지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비밀의 문인 셈이다. 인간은 잠을 통해,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오가며 완전한 자신이 되는 신비로운 체험을 한다.


물론 대부분의 꿈은 망각되거나, 의미 없는 혹은 기괴한 내용일 수 있지만, 이따금씩 인간은 꿈에서 영감을 얻고 이는 위대한 창조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비틀즈의 폴 매카트니가 명곡 <예스터데이>의 멜로디를 꿈에서 듣고, 잠에서 깨자마자 작곡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또한 스테프니 메이어는 꿈에서 뱀파이어와 사랑에 빠진 경험을 한 뒤, <트와일라잇> 시리즈를 만들었다. 그리고 아우구스트 케쿨레는 꿈에서 뱀을 보고 벤젠의 고리 모양 분자 구조에 대한 영감을 얻었고, 멘델레예프는 꿈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원소주기율표를 만들었다.


이처럼 잠은 실로 유용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바쁨에 추격에 쫓겨 시간이 없을 때 가장 먼저 줄이는 대상이다. 또한 안타깝게도 어떤 사람들은 생계에 쓰는 의무시간이 너무나 길어, 충분한 잠을 잘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경우도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현실적인 대안은, 잠의 효율을 올리는 방법일 것이며 (침대에 누워서 잠들지 않는 시간을 최소화하는 것, 잠들기 전 스마트폰 멀리하기가 대안일 수 있다), 잠을 우선순위에 두고 다른 활동에 쓰는 시간을 줄일 대안을 모색해봐야 한다.


바쁨이 생명을 갉아먹는다면, 잠은 생명을 회복시킨다. 우리는 매일 잠을 통해 바쁨에 지친 심신을 회복하고 재충전의 시간을 가진다. 또한 잠을 통해 우리는 잠재돼있는 무의식을 발견하고 완전한 자신을 체험하며, 때때로 근사한 영감을 얻는다. 바쁨의 소용돌이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충분히 잠을 잘 필요가 있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기에 마땅히 잠잘 권리가 있으며, 잠을 자는 것에 어떠한 강박관념이나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전혀 없다. 오히려 잠은 적극적으로 장려돼야 하는 생산적 활동임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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