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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없는 것들의 쓸모에 관하여 1 – 놀이

바쁨의 파괴 #2

만성적 바쁨의 지배가 확산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지나치리만큼 쓸모 있다고 여겨지는 것들에만 집착한다. 가령, 바쁘게 사는 사람들은 쓸모 있는 일 (미래에 대한 투자로 여겨지는 것들, 가령 공부, 자기계발, 일 등)을 하는 데도 가뜩이나 시간이 부족하다며, 쓸모 있지 않아 보이는 다른 것들을 시간 낭비로 여긴다. 따라서 놀이, 권태, 잠은 게으르고 나태한 것으로 치부되어, 오늘날 쓸모없는 것으로 전락해버렸다. 하지만 나는 쓸모없는 것들의 쓸모에 관하여 이야기하려 한다. 놀이와 권태 그리고 잠은, 나쁜 바쁨을 파괴하고 인간성을 회복하는 창조의 씨앗이다. 쓸모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들은 오히려 무척 쓸모 있으며, 이들은 우리가 가속화 시대에 방향을 잃지 않고 살아가게 해줄 등대와도 같다.


우선, 놀이에 대해서 알아보자. 노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선호하는 놀이의 형태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누구나 놀이를 통해 재미를 추구하는 본능적 욕구가 있다. 심지어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들 조차 노는 것을 좋아할 정도로 (공을 가지고 노는 강아지를 보라. 얼마나 즐거워하는지!) 놀이는 동물이 가지는 보편적인 욕구다.


놀이란 무엇인가?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뜻인 <호모 루덴스>의 저자 호이징가는 놀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놀이는 특정 시간과 공간 내에서 벌어지는 자발적 행동 혹은 몰입 행위로, 자유롭게 받아들여진 규칙을 따르되 그 규칙의 적용은 아주 엄격하며, 놀이 그 자체에 목적이 있고 일상생활과는 다른 기장, 즐거움, 의식을 수반한다” 즉, 놀이는 놀이가 주는 재미 그 자체에 목적이 있고, 놀이의 규칙을 따르는 범위에서 참여자의 자유가 듬뿍 깃든 행위다. 호이징가는 놀이가 문화보다 더 오래된 원초적 개념이며, 문명이 놀이에 기반해 발전해왔다고 주장한다.

호모루덴스.jpg 놀이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

호이징가의 개념에 덧붙여, 나는 ‘인간의 의지가 적극적으로 개입되어, 놀이의 주체가 주인공으로서 놀이의 과정 및 결과에 유의미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창조를 체험하는 것’을 인간성을 회복하는 바람직한 놀이라 생각한다. 예를 들어, 슬롯머신을 즐기는 사람은 놀이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기계가 정한 확률에 의존하기 때문에, 놀이의 주인공이 될 수 없으며 바람직한 놀이라 할 수 없다. 또한, TV에서 중계되는 스포츠 경기나 드라마를 수동적으로 관람하는 사람들은 재미는 느끼지만, 놀이의 주인공으로서 놀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반면, 놀이의 주체가 땀을 흘리며 하는 스포츠, 드라마를 보고 후기를 작성하는 것, TV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따라 춤을 추는 것 등은 모두 놀이의 주체가 주인공인 바람직한 놀이다. 놀이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만들며, 그 주체로 하여금 벅찬 희열을 느끼게 한다.


놀이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자발적이라는 점이다. 가령, 아이가 놀이터에서 모래집을 쌓는다든지, 공놀이나 비디오 게임을 하는 것뿐 아니라 성인이 콧노래를 부르거나 골프를 즐기는 것은 모두 자유가 깃든 자발적 놀이다. 만약, 매일 의무적으로 놀이를 해야 한다는 법이 제정되면 어떨까? 예를 들어,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해 매일 1시간씩 체육활동을 강제로 해야 한다면, 그것을 놀이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놀이가 타인의 지시로 자발성을 잃고 의무가 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놀이가 아닌 일이 돼버린다.


게다가 놀이의 주체는 놀이를 통해 몰입을 체험한다. 놀이의 행태가 무엇이 됐든지 간에, 놀이를 즐기는 주체는 그것에 몰두한다. 놀 때 시간이 너무 안 가서 곤혹스러웠던 적이 있는가? 오히려 놀 때 시간이 너무 빨리 가서 아쉬웠던 적이 많을 것이다. 놀이는 일상생활의 울타리 밖 세계에 존재하며, 놀이의 주체는 이 곳에서 시간 가는 줄 모고 유희를 만끽한다. 이처럼 일상과 놀이의 세계의 시차는 다르며, 놀이의 주체는 놀이를 할 때 무아지경의 상태에 빠진다. 인간은 놀이를 통한 몰입을 통해, 일상에 만연한 바쁨에서 벗어나는 색다른 경험을 한다.


또한, 놀이는 일정한 규칙 하에 무한한 경우의 수를 가진다. 놀이의 주체가 주인공으로서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바람직한 놀이인 이유는, 놀이 속 복잡한 퍼즐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인간은 자신의 의지를 한껏 발휘하여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기 때문이다. 놀이에 승패가 있든 없든, 주체의 의지에 따라 놀이는 다양한 전개 양상을 보이며 이 과정에서 놀이의 주체는 창조자가 되는 기쁨을 맛본다. 놀이의 세계는 곧 신들의 세계 올림푸스인 셈이다. 가령 승패가 나뉘는 놀이의 경우(각종 스포츠), 그날 선수들의 역량에 따라 경기 내용 및 승패가 달라지기에 누구도 그 결과를 미리 알 수 없다. 승패가 나뉘지 않는 놀이의 경우, (미술, 음악, 글쓰기 등) 뚜렷한 목적이 없기에 놀이의 주체가 누리는 자율성은 더욱 극대화된다. 놀이의 주체는 놀이를 통해 창조를 체험하며, 창의성을 한껏 발휘하게 된다.


현대사회에서 ‘덕업일치’ (한 분야에서 전문가 못지않은 식견을 가진 덕후에 직업을 합친 신조어로,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것)를 이룬 자들은, 진정으로 축복받은 소수다. 현대사회 노동의 특성은 시간을 파는 것인데, 대다수의 사람들은 생업의 부담 때문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하는 일을 억지로 하며, 시간을 죽이고 자리에 앉아있는 경우가 많다. 반면, 덕업일치를 이룬 사람들은 놀이에서 재미를 느끼고 자발적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기에, 해당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내고 성공할 확률이 높다. 공자도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라고 하지 않았는가.


우리가 알고 있는 성공한 대가들은 모두 놀이를 업으로 삼은 사람들이다. 가령 닌텐도의 미야모토 사게루는, 어릴 때 했던 놀이에서 영감을 얻어 슈퍼마리오, 동키콩, 젤다의 전설 등 굵직한 게임을 남기며 게임계의 살아있는 전설이 됐다. 전 세계 유튜브 수입 1위 채널 PewDiePie를 운영하는 스웨덴 청년 펠릭스는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을 플레이하고 시청자들과 교감하면서, 연간 100억 원이 넘는 수입을 올리고 있다. <펄프 픽션>의 쿠엔토 타란티노,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안노 히데아키, <반지의 제왕>의 피터 잭슨 감독들은 모두 놀이를 업으로 삼고, 해당 분야의 거장이 되어 부와 명성을 얻었다.

마리오 아버지.jpg 덕업일치를 이룬 마리오의 아버지, 미야모토 사게루

물론 이들은 극소수의 성공한 사례들이지만, 디지털 플랫폼의 발달은 점점 놀이와 일의 경계를 허물며 성공한 덕후들을 낳고 있다. 과거에 놀이는 돈벌이가 되지 않아, 생업에 밀려 취미에 머물러야 했다. 하지만,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누구나 자신의 놀이를 블특정 다수와 공유할 수 있으며, 일정 수준 팬덤을 확보한 사람은 막대한 디지털 트래픽을 수익화 할 수 있다. 그 형태가 창업이든 프리랜서든 간에 놀이를 일로 승화한 사람들은 앞으로 더욱 많아질 것이고, 이들에게 주어질 기회는 무궁무진할 것이다. 이렇게 독특한 괴짜들이야말로 평범의 종말인 시대에 요구되는 인재상이다.


하지만 이러한 놀이의 쓸모에도 불구하고, 놀이하면 떠오르는 부정적이고 비생산적인 이미지는, 노는 주체로 하여금 스스로 죄책감을 느끼게 하거나 남들로부터 나태하고 한심한 사람이라는 힐난을 받게 한다. 게다가 순수한 놀이의 의미는 퇴색되어, 놀이는 상업 자본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소비하는 행태로 변질된 경향이 있다. 가령, 패키지 여행상품이나 테마파크, 음주 가무를 즐기는 각종 술집 및 노래방 등은 자본에 의해 대량으로 양산된 규격화된 놀이의 형태다. 이런 놀이는 일상의 연장이며, 자유가 깃들지 않은 향기 없는 놀이일 뿐이다.


저명한 미디어 전문가인 마셜 매클루언은 “놀이가 없는 사회나 인간은 좀비 상태”라고 말했다. 놀이를 쓸모없는 것으로 격하시키고, 상업적인 시각으로만 바라보는 현대사회의 모습은 인간성의 상실을 의미한다. 놀이는 영감의 원천이고 놀이의 주체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놀이는 바쁜 일상과 동 떨어진, 새로운 세계로 입장하게 하는 가교 역할을 한다. 놀이하는 사람은 바쁨의 지배에서 벗어나, 완전한 몰입을 경험하고 창조의 체험을 한다. 따라서, 우리는 잃어가는 인간성의 회복을 위해 제대로 놀 줄 알아야 한다. 내면에 잠들어 있는 호모 루덴스를 깨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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