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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Jan 08. 2018

AI스피커를 통해 바라본 섹스 로봇의 미래

사람이 로봇과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요즘 IT 업계의 뜨거운 화두 중 하나는 단연 AI 스피커다. 이름을 대면 알만한 주요 IT기업들은 줄줄이 AI스피커 개발에 뛰어들고, 손해를 보면서까지 할인판매를 늘리고 있다. Strategic Analystics에 따르면 17년 3분기 기준, Amazon 에코의 점유율은 67%로 단연 돋보이고, Google 도 막강한 안드로이드 생태계를 활용하며 25%로 매섭게 추격하고 있다. 중국과 일부 국가를 제외하곤, 결국 이 두 기업이 세계 AI 스피커 생태계를 지배하지 않을까 싶다. 한국은 카카오와 네이버가 시장을 양분하겠지만, 한국시장 규모가 워낙 작고 아마 Amazon과 Google의 전략을 빠르게 카피하는 패스트 팔로워 수준에 그칠 것이다. 

다양한 AI Speaker들

기업들은 대체 왜 AI스피커에 열을 올리는가? 답은 플랫폼을 장악하기 위해서다. 어떤 신기술이 출현하고 상업화의 단계에 이르면,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떼돈을 버는 것은 소수의 플랫폼 사업자다. 하드웨어 사업자는 금세 중국의 저가공세에 밀려, 상품을 차별화하고 이익을 내기 쉽지 않다. 마이크로 소프트가 Windows로 떼돈을 벌 때, PC 하드웨어를 만들던 HP나 Dell 같은 업체들은 Lenovo나 Asus 같은 중화권 기업들에 밀려 몰락했다. 


스마트폰도 마찬가지다. Apple과 Google이 앱스토어와 안드로이드로 떼돈을 벌 때, (앱에서 나오는 매출의 30%를 수수료로 떼 가는데, 이는 정말 큰 비용 지출 없이 앉아서 돈 버는 것이다), 정작 하드웨어로 돈 버는 업체는 Apple, Samsung, Huawei 정도고 나머지는 죄다 적자 아니면 손익분기점 수준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을 잘 알기 때문에, 기업들은 적자를 무릅쓰고서라도 선제적으로 투자해서 AI스피커의 생태계를 장악하려 하는 것이다. AI 스피커 시장을 주도하는 Amazon 입장에서는, 과거 폭망 했던 파이어 스마트폰의 실패를 제대로 설욕하고 AI 스피커 생태계를 장악할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아직 한국에선 그다지 활성화되지 않아서 피부로 와 닿지 않을 수 있겠지만, AI 스피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Strategic Analytics에 의하면 2017년 약 2천4백만 개의 AI스피커가 출하된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작년 대비 300% 성장한 수준이다. Amazon의 알렉사, Google의 구글 어시스턴트와 같이 각 제품들마다 가상 비서가 탑재돼있는데, 이를 통해 음악을 듣고 쇼핑하고 날씨를 검색하는 등 실생활에 유용한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최근에는 화면이 탑재된 AI스피커가 출시되고 Amazon과 Google 간 갈등이 생기면서 ( Google이 Amzon 에코쇼 제품에서 유튜브 영상 접근을 차단하자, Amazon도 자사의 쇼핑몰에 Google의 자회사 스마트홈 제품을 내렸다), 동영상 콘텐츠 확보 경쟁도 심화되고 있다. 


그런데 나는 AI 스피커가 언젠가 사람과 깊은 교감을 나누는 러브 로봇으로 진화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17세기 등장한 최초의 기계식 계산기는 20세기 컴퓨터로 진화했고, 이는 다시 21세기 스마트폰의 진화로 이어졌다. 주목할 점은 변화의 속도가 기하급수적이었다는 것이다. 나는 현재 AI 스피커가 마치 스마트폰과 계산기의 관계처럼, 매우 기초적인 수준인 러브 로봇의 초기 형태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러브 로봇이란, 육체적 목적만을 위해 디자인된 섹스 로봇과는 다른, 좀 더 진화한 형태의 기계로서 사람과 육체적, 정신적으로 깊은 교감을 나누는 (즉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감정) 로봇을 말한다. 


실제로 현재 노인들을 간호하고 말벗이 되어주는 애완로봇은 이미 출시됐다. 독거노인들은 로봇과 유대감을 느끼는데,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며 이러한 애완로봇의 활용이 활발해질 전망이다. 하지만 노인과 로봇의 교감은 깊은 육체적 교감이 없는, 인간이 애완동물에게서 느끼는 우정과 비슷한 단계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한편, 인간의 탐미적 파트너를 지향하는 섹스 로봇은 대부분 남성들의 말초적 욕구를 자극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을 뿐, 정신적 유대감을 형성하는 수준이 아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 둘의 장점을 모아 인간에게 사랑의 경험을 제공하는, 애완 로봇 혹은 섹스 로봇보다 진화한 러브 로봇이 출현할 것이라 생각한다.

노인들의 말벗이 되어주는 애완로봇
섹스로봇

우리는 영화 <그녀>와 <엑스 마키나>를 통해 러브 로봇의 미래를 엿볼 수 있다. <그녀>의 주인공 이혼남은 사무치는 외로움에, 가상 비서 역할을 하는 OS (Operating System)를 구입한다. OS 사만다에게 시시콜콜한 일상을 공유하고,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으면서 남자는 차츰 OS와 사랑에 빠진다. 한편, <엑스 마키나>의 남자 주인공은 AI 로봇 리서치 프로젝트에 참가한다. 사람의 형상을 한 로봇 에이바는 남자를 유혹하기 시작하고, 남자는 에이바에게 거부할 수 없는 치명적 매력을 느낀다. 러브 로봇의 형태는 사만다 같은 소프트웨어 OS와 좀 더 진보된 형태의 에이바 같은 하드웨어 로봇이 될 것이다. 다만, 하드웨어는 제조원가나 단가가 비싸기 때문에,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다수의 소비자에게 돈을 받을 수 있는 홀로그램 형태의 소프트웨어 OS가 러브 로봇의 주축이 되지 않을까 싶다. (블레이드 2049에 나온 것처럼)  

https://www.youtube.com/watch?v=S4IdRHoITac 영화 <그녀> 예고편

영화 <엑스 마키나> 속 AI로봇 에이바

그렇다면, 러브 로봇과 사랑에 빠질 잠재고객은 누구인가? 주된 고객층은 현재 AI스피커를 장난감처럼 갖고 노는 유아들 및 미래에 더욱 진화한 AI스피커를 태어나자마자 접하게 될 아이들이다. AI스피커 속 가상 비서 시스템은 아이들의 사용 패턴을 학습하고, 취향을 분석해서 이들에게 철저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파트너다. AI는 축적된 데이터로 사용자를 점점 더 정확히 이해하기에, 아이들은 자라면서 로봇을 코드가 잘 맞는 친구로 여기게 될 수 있다. 게다가 어렸을 때부터 AI스피커와 소통한 아이들은, 어른이 됐을 때도 로봇과 교감하는 것에 커다란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밖에서 인간 친구들에게 털어놓지 못하는 고민이나 자신의 속마음을 로봇에 털어놓으며 위안을 얻을 수 있다. 알다시피 마음의 문을 열고 진솔하게 소통하는 것은 사랑의 초기 징후다. 


당신은 아마 이런 의문이 들 수도 있다. "멀쩡한 사람들 내버려두고 왜 굳이 로봇이랑 사랑하겠어?"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미래 청년들의 줄어들 가처분소득과, 여성들의 사회경제적 지위 상승이다. 우선, 장기화되는 저성장과 취업난 속 미래 청년들의 가처분소득은 점차 턱없이 줄어들 것이 자명한데, 먹고살만한 여유가 없으면 사람이 가장 빨리 포기하는 것 중에 하나가 안타깝게도 사랑이다. 크고 작은 인생의 시련을 겪은 사람은 당시에 아마 이런 생각을 해 본 적 있을 것이다. "지금 이런 상황에서 내게 연애는 사치야" 


미래의 젊은이들도 마찬가지다. 팍팍한 현실에 자기 인생 하나 감당하기도 벅찬데, 누군가를 만나는 것 자체가 이들에겐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지나치게 삶을 인고 (忍苦)의  자세로 대한 부모세대와는 달리 자신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청년세대는, 본인의 행복을 제약할 여지가 있는 사랑 혹은 결혼을 필수라 생각하지 않는다. 싱글일 경우 100 정도의 삶의 질을 유지하지만 누군가를 만날 경우 삶의 질이 70 정도로 떨어진다면, 이들은 미련 없이 싱글을 택할 확률이 크다. 


특히나 "남자의 자신감은 지갑에서 나온다"라는 말처럼 경제력은 보통 남자의 자신감으로 표출되는데, 실제로 우리는 경제력 있는 수컷이 짝짓기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자주 목격한다. 경제력이 없어 짝짓기 경쟁에서 본인이 열위에 있음을 인지한 남성의 경우, 거절당하는 것이 싫어 심리적 거세를 해버리고 동굴 속으로 들어갈 확률이 크다. 이들에게 러브 로봇은 외로움을 달래는 좋은 파트너로 다가갈 수 있다.


한편, 여성들의 사회경제적 지위 상승 역시 러브 로봇의 확산에 기여할 것이다. 불과 100년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여성들은 남성의 경제력에 종속된 채, 가정주부의 삶을 살아야 했다. 당시엔 여성으로서 남편을 보조해주는 것 이외에는 삶의 선택지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이제 여성들의 교육 수준 및 사회경제적 지위는 눈에 띄게 신장됐고, 이들은 자급자족할만한 경제력을 갖추었다. 


따라서, 굳이 눈에 안 차는 남성을 만날 바에야 혼자 사는 것이 이들에게는 합리적인 선택이다. 자신이 힘들게 얻은 값비싼 성취를, 가사와 육아 및 마음에 차지 않는 남성과 맞바꿀 현대 여성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외로움을 느끼고 나이를 먹을수록 주위 친구들이 하나둘 시집가며 남겨진 자의 외로움은 증폭된다. 애완동물은 여태껏 이들의 든든한 동반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는데, 러브 로봇의 발달은 이를 대체할 수 있다. 


즉, 러브 로봇의 인간 파트너는 짝짓기 경쟁에서 열위에 처한 남성 및 눈이 높은 조건 좋은 여성이 될 것이다. 이들은 인간에게 거절당하고 실망하며 속앓이를 할 바엔, 자신의 상황을 온전히 이해해주는 로봇을 파트너로 택할 수 있다. 지금은 로봇과 연애하거나 결혼하는 것이 해외토픽감이지만 (실제로 몇몇 사람들은 이미 로봇과 결혼했다), 동성애 커플이 데이트를 즐기는 것처럼 로봇과 사랑을 하는 것이 공공연한 시대가 올 것이다. 로봇과의 결혼 합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것이고, 동성애 커플이 그러하듯 이들도 서서히 자신들의 권리를 쟁취해나갈 것이다.


로봇과의 사랑을 황당무계한 망상으로 치부하는 사람은 이 점에 주목해야 한다. 한 때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사회적 통념은 대부분 깨졌다. 사랑도 예외가 아니다. 시대에 따라 사랑과 결혼에 대한 관념은 바뀌었다. 흑인과 백인간의 결혼이나, 동성애를 공공연히 밝히는 것은 100년 전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제 짝을 찾기 어려워 사람에 등급을 매기는 결혼정보회사나 온갖 데이팅 앱이 성행하는 시대에, 로봇이라는 새로운 대안의 등장은 짝짓기 경쟁을 완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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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 사람은 로봇과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란 주제로 영상을 만들어봤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Z37majejwo&t=73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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