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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Jan 16. 2018

나는 우주인이다.

창백한 푸른 점

1990년 2월 14일, 우주탐사를 하던 보이저 1호는 한 장의 사진을 찍었다. 아래 사진에 보이는 창백한 푸른 점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다. 인류 역사상 가장 먼 곳에서 (약 60억 km) 지구를 찍은 이 사진은, 우리가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지 일깨워준다.


이 광활한 우주의 수많은 행성들 중, 지구별의 우두머리가 된 약 74억 명의 호모 사피엔스 중 하나인 개인. 이러한 개인을 정의하는 수많은 껍데기들, 이를테면 민족, 성 (姓), 종교, 나이, 지위, 출신, 직업 등등. 이것이 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것은 단지 지구라는 코딱지만한 행성에서 만들어진 관념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기준으로 편을 가르기 좋아하는 자들은, 부디 이 창백한 푸른 점을 보며 느끼는 바가 있기를.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나는 우주인이다"라고 답하고 싶다. 모두가 우주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진다면, 지구 상에 존재하는 온갖 불행, 갈등, 혐오, 오만, 불안, 위선의 총량은 확연히 줄어들지 않을까. 저명한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지금도 쓸쓸히 우주를 돌고 있을 지구와 이곳의 우주인들을 위해, 다음의 소감을 밝혔는데 큰 울림을 준다.


저 점을 보라. 저것이 우리의 고향이다. 저것이 우리다.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 당신이 아는 모든 이들, 예전에 삶을 영위했던 모든 인류들이 바로 저기에서 살았다. 우리의 기쁨과 고통의 총량, 수없이 많은 그 강고한 종교들, 이데올로기와 경제정책들, 모든 사냥꾼과 약탈자, 영웅과 비겁자, 문명의 창조자와 파괴자, 왕과 농부, 사랑에 빠진 젊은 연인들, 아버지와 어머니들, 희망에 찬 아이들, 발명가와 탐험가, 모든 도덕의 교사들, 부패한 정치인들, 모든 슈퍼스타, 최고 지도자들, 인류 역사 속의 모든 성인과 죄인들이 여기 햇빛 속을 떠도는 티끌 위에서 살았던 것이다. 지구는 우주라는 광막한 공간 속의 작디작은 무대다. 승리와 영광이란 이름 아래, 이 작은 점 속의 한 조각을 차지하기 위해 수많은 장군과 황제들이 흘렸던 저 피의 강을 생각해보라. 이 작은 점 한구석에 살던 사람들이, 다른 구석에 살던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던 그 잔혹함을 생각해보라. 얼마나 자주 서로를 오해했는지, 얼마나 기를 쓰고 서로를 죽이려 했는지, 얼마나 사무치게 서로를 증오했는지를 한번 생각해보라. 이 희미한 한 점 티끌은 우리가 사는 곳이 우주의 선택된 장소라는 생각이 한갓 망상임을 말해주는 듯하다. 우리가 사는 이 행성은 거대한 우주의 어둠에 둘러싸인 한 점 외로운 티끌일 뿐이다. 이 어둠 속에서, 이 광대무변한 우주 속에서 우리를 구해줄 것은 그 어디에도 없다. 지구는, 지금까지 우리가 아는 한에서, 삶이 깃들일 수 있는 유일한 세계다. 가까운 미래에 우리 인류가 이주해 살 수 있는 곳은 이 우주 어디에도 없다. 갈 수는 있겠지만, 살 수는 없다. 어쨌든 우리 인류는 당분간 이 지구에서 살 수밖에 없다. 천문학은 흔히 사람에게 겸손을 가르치고 인격형성을 돕는 과학이라고 한다. 우리의 작은 세계를 찍은 이 사진보다 인간의 오만함을 더 잘 드러내 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 칼 세이건 - 


https://www.youtube.com/watch?v=Aax9BT6TWc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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