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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May 12. 2018

<달과 6펜스> - 창조하는 인간

윌리엄 서머셋 몸의 <달과 6펜스>를 읽고

헤파이스토스는 아버지 제우스와 어머니 헤라로부터 태어났지만 추남에 절름발이인, 어딘가 모자라 보이는 신이다. 그는 올림푸스에서 유일하게 노동하는 신으로서, 묵묵히 대장간에서 무언가를 만든다. 이때, 헤파이스토스의 노동은 창조의 과정이다. 그는 무기체에 향기와 생명을 불어넣는다. 비록 헤파이스토스가 볼품없는 외모에 다른 신들처럼 전지전능한 힘은 없지만, 그가 남긴 수많은 창조물을 - 제우스의 번개, 헤르메스의 모자와 신발, 아프로디테의 허리띠 등 - 통해 그는 자신이 '신'임을 증명한다. 


인간은 원래 헤파이스토스처럼 창조를 하는 동물이었다. 예를 들어, 수렵채집 시대에는 돌을 깎아 무기를 만들고, 동물의 가죽을 벗겨 의복을 만들고, 여가시간에 동굴에 벽화를 그리는 등 창조는 곧 일상이었다. 대자연은 창조의 영감과 질료였고, 창조할 시간을 제약하는 의무는 의식주를 제외하곤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문명이 발달할수록 인간은 창조와 점점 멀어졌다. 가령, 농업혁명이 일어나고 잉여생산물이 생기면서 계급이 발생했다. 지배계층은 온갖 의무를 노예에게 떠넘기고, 남는 시간에 '고상한' 창조활동을 할 수 있었지만, 노예는 시간 대부분을 의무에 전념해야 했다. 하지만, 이들도 여전히 씨를 뿌리고 수확을 하는 등 창조의 기쁨을 체험할 기회가 존재했다. 중세도 마찬가지다. 신과 탯줄이 정한 운명에 따라 사람들은 주어진 의무를 수행했지만, 여전히 창조성을 견지할 여지가 있었다. 예를 들어, 중세에는 특히 신을 기리기 위한 창조가 성행했고, 한 가지 물건을 고집스럽게 만드는 중세 장인의 모습은 헤파이스토스의 그것과 무척 흡사했다.


한편, 르네상스 시대에 접어들며 신의 속박으로부터 풀려난 인간은, 내재돼있던 창조욕에 불을 지핀다. 인간에 대한 탐구가 이뤄졌고, 위대한 예술가들이 탄생했다. 하지만, 이때 온전히 창조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경제적 기반을 갖춘 신흥 귀족 및 이들의 지지를 받은 예술가들 뿐이었다. 다수의 대중은 여전히 창조와는 거리가 먼 고되고 지겨운 생산활동에 매진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르네상스는 창조하는 인간이 재조명을 받은 창조의 황금기라는 점에서 의미있다.


창조의 암흑기는 산업화 시대에 접어들며 시작된다. 소품종 대량생산을 위한 분업화 속, 인간이 창조를 경험할 기회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인간은 거대한 톱니바퀴의 부품으로 전락했고, 창조의 정수인 독창성을 박탈당했다. 오늘날까지 헤파이스토스의 정신을 계승한 인간은 예술가들 뿐인데, - 예술로 밥법이를 하는 이들뿐 아니라, 특정 수단을 통해 자신의 개성을 자발적으로 표현하는 인간은, 광의의 범주에서 모두 예술가다- 이들 역시 창조를 지속하기가 녹록지 않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경제적 수치로 치환되는 자본주의 사회 하에, 창조에 소요되는 비용 대비, 그것에서 얻는 경제적 이익은 터무니없이 미약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에리히 프롬의 표현을 빌리자면, 예술가는 역사상의 모든 혁명가와 비슷한 처지다. 성공한 혁명가는 정치가가 되고 실패한 혁명가는 범죄자가 된다.


그렇다면 창조는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창조하는 과정에서 인간은 몰입을 경험하고, 고뇌와 환희를 체험한다. 모호했던 형체가 차츰 구체화되고, 세상에 없던 자신만의 색이 들어간 피조물을 창조했을 때, 인간은 무한한 기쁨을 맛본다. 이때, 인간은 신과 대적하는데, 일부 위대한 창조자의 경우 불멸하는 피조물을 - 이것은 오늘날 고전으로 불린다 - 만들고, 이들은 신을 초월한 절대자로 기억된다. 하지만, 앞서 밝혔듯 대다수의 문명화된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바쁘게 수행하느라, 창조의 희열을 체험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 심지어 이런 즐거움을 깨닫고 창조에 열정을 바치길 원하는 이도, 경제적 보상이 적은 일을 할 엄두를 내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점에서, <달과 6펜스>는 독자들에게 통쾌한 대리만족의 경험을 제공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달 (이상, 경제적 보상이 없는 자발적 창조)과 6펜스 (돈, 생계를 위한 향기 없는 노동) 사이에서 후자를 택하는 상황에서, 소설은 정반대의 인간상을 제시한다.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는 유명 화가 폴 고갱의 삶에 기반해 창조됐는데, 그는 사회적 제약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이상을 추구한다.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본, 창조의 기쁨을 체험해 본 적 있는가? 지금 본인은 달과 6펜스 사이에서 어디쯤 와 있는지,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생각해보길 바란다.


 

https://www.youtube.com/watch?v=RXxvodZniw0

<달과 6펜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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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이야기의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는 40대 평범한 가장이자 런던의 주식 중개인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가출을 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사람들은 그에게 다른 정부가 생긴 것이라고 추측한다. 찰스 가족과 친분이 있던 화자에겐, 진상을 파악하고 가출한 그를 설득해 집에 데려오는 임무가 주어진다. 한편, 남편의 부재에 그의 부인은 애통해하는 듯 하지만, - 책에서 부인은 무척 세속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 화자의 시선에 그녀의 슬픔은 어쩐지 부자연스러운 면이 있다.   


남편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것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 때문인지, 아니면 그저 구설수가 무서워서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부인의 상심 가운데에는 버림받아 괴로워하는 마음과 자존심을 상해 고통스러워하는 마음이 - 내 젊은 마음에는 그런 자존심이 야비하게 여겨졌다 - 뒤섞여 있지 않다 해서 마음이 어지러웠다. 그때만 해도 나는 인간의 천성이 얼마나 모순투성이인지를 몰랐다. 상실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가식이 있으며, 고결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비열함이 있고, 불량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선량함이 있는지를 몰랐다.


결국 찰스를 찾아낸 화자는 그로부터 충격적인 대답을 듣는다. 집을 나간 이유가 여자 때문이 아니라,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라니! 게다가 찰스는 40대 중산층 가장이고 원래 그림을 그리던 사람도 아니었기 때문에, 화자는 찰스의 무모함에 경악하곤 이를 힐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에 대한 찰스의 결의는 단호한데, 그와 화자가 나누는 다음의 대화를 보자.


"그럼 도대체 무엇 때문에 부인을 버렸단 말입니까?" "나는 그림을 그리고 싶소." (중략) "아니 나이가 사십이 아닙니까?" "그래서 이제 더 늦출 수가 없다고 생각했던 거요." "그림을 그려본 적은 있나요?""어렸을 적에는 화가가 되고 싶었소. 하지만 아버지가 그림을 그리면 가난하게 산다고 하면서 장사일을 하게 만들었지. 일 년 전부터 조금씩 그리기 시작했소. 한 일 년 야간반에 나가 그림을 배웠어요."
"난 그려야 해요." 그는 되뇌었다. "잘해야 삼류 이상은 되지 못한다고 해봐요. 그걸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할 가치가 있겠습니가? 다른 분야에서는 별로 뛰어나지 않아도 문제 되지 않아요. 그저 보통만 되면 안락하게 살 수 있지요. 하지만 화가는 다릅니다." "이런 맹추 같으니라고." "제가 왜 맹추입니까? 분명한 사실을 말하는 게 맹추란 말인가요?"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요.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 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 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화자가 찰스의 비상식적인 행동을 비난해도 찰스는 꿈쩍하지 않는다. 그는 마치 인간의 굴레를 벗어난 악마처럼 묘사되곤 하는데, 인상적인 것은 찰스는 외압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사회적 시선이나 도덕규범 따위는 깡그리 무시한 채, 꿋꿋이 그림을 향한 창조혼을 불태운다. 달의 세계로 홀연히 떠난 그는, 6펜스 세계에 남아있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따끔한 일침을 가하기도 한다.  


"이것 보세요. 모두가 선생님처럼 행동한다면 세상이 어찌 되겠습니까? "어리석은 소리를 하는군. 나처럼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을 줄 아오? 세상 사람 대부분은 그냥 평범하게 살면서도 전혀 불만이 없어요."


한편, 찰스는 화가 더크 스트로브를 만나 도움을 얻는다. 더크는 잘 팔릴 것 같은 얄팍한 그림만을 팔아 대는 삼류 화가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는 그림을 보는 비상한 안목을 가지고 있는데, 찰스의 예술적 재능을 단박에 알아본다. 그는 아내 블란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몸이 아픈 찰스를 집으로 거두어 정성껏 보살펴준다. 다음의 대사에서 위대한 예술가를 대하는 그의 태도를 알 수 있다.


"당신 생각은 왜 그래?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아름다움이 해변가 조약돌처럼 그냥 버려져 있다고 생각해? 무심한 행인이 아무 생각 없이 주워 갈 수 있도록? 아름다움이란 예술가가 온갖 영혼의 고통을 겪어가면서 이 세상의 혼돈에서 만들어낸, 경이롭고 신비한 것이야. 그리고 또 그 아름다움을 만들어냈다고 해서 아무나 그것을 알아보는 것도 아냐.. 그것을 알아보자면 예술가가 겪은 과정을 똑같이 겪어보아야 해요.


찰스는 더크의 도움 덕분에 건강을 회복하지만,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한다. 찰스를 바퀴벌레 보듯 하던 블란치가 찰스를 흠모하게 되고, 그를 따라가기로 선언한 것이다. 믿었던 사람들에게 배신당해 큰 충격을 받은 더크는 아내를 회유해 보지만, 그녀는 결국 찰스를 따라 집을 나선다. 하지만, 불꽃 튀던 일탈은 오래가지 않았고 블란치는 자살하고 만다. 아마 찰스의 그림에 대한 이기적인 집념과 남자의 정다운 관심과 사랑을 바라던 그녀의 바람이 충돌했으리라. 다음과 대사를 보면, 찰스가 그림이라는 목적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매정한 인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자는 사랑을 하게 되면 상대의 정신을 소유하기 전까지는 만족할 줄 몰라. 약해서 지배욕이 강하지. 지배하지 않고서는 만족하지 못해. 여자는 마음이 좁아요. 그래서 자기가 모르는 추상적인 것에는 화를 내는 버릇이 있어. 마음을 쓰는 건 물질적인 것뿐이야. 관념적인 것은 시기나 하고. 남자의 정신은 우주의 저 머나먼 곳에서 방황하는데 여자는 그걸 자기 가계부 안에다 가둬두려고 하는 거요. 내 아내 생각나요? 블란치도 차츰 같은 수작을 쓰려고 하더란 말이야. 자기 딴엔 무한한 참을성을 발휘해서 나를 함정에 몰아넣고 올가미를 씌울 작정을 하고 있었어. 나름 자기 수준으로 끌어내리고 싶었던 거지. 나 자신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었어. 내가 자기 것이 되어주기만 바랐지. 하기야 나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하려고 했어요. 내가 원하는 것 한 가지만 해놓고 말이오. 난 혼자 있기를 바랐거든."


이처럼 안하무인으로 사는 찰스에게 때때로 화자는 정나미가 떨어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고뇌하는 예술 정신만은 경외한다. 찰스는 6펜스 세계에 마련된 세속적 부나 명예 따위는 거들떠보지 않고, 오로지 달의 세계에서 묵묵히 그림을 그린다. 그는 결국 도시를 떠나 타히티 섬으로 가고, 나병에 걸려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위대한 작품들을 남긴다. 창조에 대한 강한 열망은 사연 많았던 그의 삶의 원동력이었다. 그는 날개를 펴고 새장 문을 부수고 날아간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화자가 묘사하는 찰스를 보면, 그림이라는 숙명을 거부할 수 없는, 고독한 예술가의 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그를 노려보았다. 그는 눈에 비웃음을 담고 내 앞에 서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순간 나는 언뜻 본 것이 있었다. 육체와 결부된 존재로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위대한 무엇인가를 향해 뜨겁게 타오르는, 고뇌하는 영혼이 그것이었다. 나는 표현할 수 없는 뭔가를 추구하는 혼을 언뜻 보았던 것이다.


그는 자기가 느낀 어떤 것을 전달하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었고, 오직 그것을 전달해야겠다는 생각만을 가지고 그림들을 그려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찾는 미지의 그것에 좀 더 가까이 가기 위해 망설임 없이 대상을 단순화하고 뒤틀었다. 사실이란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자기와는 관계없는 무수한 사실들 사이에서 그는 자신에게 의미 있는 것만을 찾았다.


<달과 6펜스>의 모티브가 된 폴 고갱은 생전 반 고흐와도 친분을 유지했다고 한다. (말년에 둘의 관계가 틀어졌고, 고흐는 귀를 잘랐다) 이 둘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보면, 위대한 예술가의 탄생은 본인에겐 투쟁, 가족한텐 비극, 그리고 인류에겐 선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달의 세계에서 헤파이스토스와 함께 6펜스 세계를 내려다보며, 무언가를 창조하고 있을 위대한 예술가들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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