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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Jun 12. 2018

<변신> - 소외받는 인간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읽고

부르주아 계급은 가족관계조차 감상의 장막을 걷어버리고 순전히 금전관계로 만들었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사상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칼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자본주의 및 부르주아 계급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프롤레타리아가 중심이 된 혁명을 촉구했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 심지어 인간까지 - 상품화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인간의 생산물이 시장에서 사고 팔리는 상품이 되는 상황에서, 학자, 예술가 심지어 종교인까지 모든 상인의 신세로 전락한다. 이때, 노동자는 연봉이라는 가격표가 붙은 사물이 되고, 노동시장 및 결혼시장에서 팔리는 상품으로 취급받는다.


사유재산의 철폐와 계급 없는 공산주의 사회를 꿈꿨던 마르크스의 예언은 빗나갔고, 그의 추종자들은 역사의 패자로 기록됐다. 하지만, 그가 날카롭게 지적한 자본주의의 어두운 특성은 여전히 유효한데, 그중에서 특히 '인간 소외'가 특기할 만하다. 마르크스는 네 가지 인간 소외를 제시했는데, 바로 자연 사회로부터의 소외, 자기 생산 활동으로부터의 소외, 종(種)적 존재로서 인간으로부터의 소외 그리고 타자로부터의 소외이다. 이러한 인간 소외 현상은 시간이 갈수록 점차 뚜렷해지는 듯하다.


예를 들어, 돈 때문에 이혼하고 부모와 자식이 갈라서는 일은, 이제 현대사회에서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 유산을 물려받기 위해 부모를 살해하거나, 재벌 남편에게서 거액의 이혼 위자료를 뜯어내고 연하남과 연애하는 연예인 정도는 돼야, 사회면 기사를 장식하고 잠시나마 대중의 관심을 얻을 뿐이다. 이처럼, 팽배한 배금주의와 물신숭배 하에, 돈은 가족이니 사랑이니 하는 감상적이고 숭고한 관계를 무력화시키며 인간을 수단화하고 소외시킨다.


물론, 이러한 인간 소외가 자본주의 사회에서만 발견되는 문제점은 아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인간 소외가 부각된 자본주의 사회와는 달리,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 혁명의 시발점이 다수의 평범한 인간들을 위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 중앙정부의 감시 및 통제를 통해 다른 형태의 인간소외를 낳았다. 공산주의 국가와 독재자의 목적에 희생당한 수많은 인민들은 더욱 공포스럽고, 강압적인 인간소외를 겪어야 했다. 


한편, 산업화와 자본주의가 성숙하며, 인간소외는 가속화된다. 인간은 더 이상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써 - 특히 경제적 수단 - 기능한다. 게다가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발달은 인간 소외를 더욱 부추긴다. 과학기술 덕분에 모든 것으로부터 연결된 듯한 현대인은 사실은 각자의 동굴 속에 고립된 채, 공허한 소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가상의 자아와 관계에 매달린다. 특히 SNS는 왜곡된 세계만을 보여주고 고독을 증폭시키는 인간소외의 장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새로운 유형의 사회로 자리매김했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은 인간소외를 다룬 작품이다. 집이라는 따뜻한 공간과 가족이라는 정다운 관계가, 경제적 기능을 하지 못하는 구성원에게 얼마나 냉혹하고 무정해질 수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밀란 쿤데라는 카프카의 작품을 '검은색의 기이한 아름다움'이라고 표현했는데, 실로 그렇다. <변신>은 어둡고 불편한 이야기지만, 인간 소외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많은 훌륭한 작품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Pk2U6qyJw3o&t=9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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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이야기의 도입부는 가히 충격적이다. 주인공 그레고르는 어느 날 아침, 벌레로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기분으로 잠에서 깨어난 그레고르 잠자는 자신이 흉측스런 벌레로 변해버린 것을 발견했다. 딱딱한 각질로 된 등을 대고 누워 있는 그는 고개를 조금만 쳐들어도 갈색의 볼록한 마디마디로 나누어진 배를 볼 수 있었다. 그 배 위에는 금방이라도 미끄러져 떨어질 것처럼 이불의 한 모퉁이가 가까스로 걸려 있었다. 다른 부분에 비해 비참하게 가느다란 수많은 다리들이 그의 눈앞에서 속절없이 간들거렸다.


그레고르는 자신에게 생긴 급작스러운 변화 때문에 회사에 제 때 출근을 하지 못한다. 흉측한 벌레로 변한 자신의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은 그레고르는, 가족들의 재촉에도 불구하고 방문 밖으로 나가지 않고 버틴다. 급기야 회사 상사가 집까지 찾아오고, 그는 그레고르의 불성실함을 매섭게 비난한다. 


자네는 이제껏 들어보지도 못한 방법으로 업무상의 의무를 기피하고 있네. 여기 자네의 부모와 자네의 사장 이름으로 말해두는데, 곧 명확한 설명을 해주길 엄숙하게 부탁하네. 이럴 수가 있나? 그래도 나는 자네를 침착하고 분별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자네는 이상야릇한 변덕을 부리기로 작정한 것 같군. 사실은 오늘 아침 일찍이 사장님께서 자네의 결근에 대해 그럴싸한 해석을 하셨다네. 최근에 자네가 위임받은 미수금에 관한 얘기였지. 하지만 나는 물론 내 명예를 걸다시피 하면서 그런 해석은 타당치 않다고 이의를 제기했다네.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서 자네의 이해할 수 없는 고집을 보니 자네를 두둔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싹 가시는군 그리고 말해둘 것은 자네의 지위는 결코 확고부동하지 않다는 것일세. 나는 원래 모든 이야기를 단둘이 있는 데서 하려 했는데, 자네가 공연히 나의 시간을 허비하게 하는 바람에 자네 부모님에게까지 들려드리게 된 것일세. 자네의 판매 실적 역시 요사이는 전과 달리 불만족스러웠네. 물론 경기가 안 좋은 철이라는 것은 우리도 인정하네. 그러나 장사할 수 없는 철이란 없는 법이야. 있어서도 안 되고. 잠자 군, 알겠나?


그레고르는 생계를 담당하던 가장이기 때문에, 직장 상사의 엄포에 더욱 움츠러든다. 상사에게 잘못 보이면 바로 회사에서 해고당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이 순진한 사내는 자신이 벌레로 변한 와중에도 가족들의 안위를 걱정하며, 어떻게 하면 자신의 변신을 들키지 않고 그를 돌려보낼 수 있을지 고민한다.


그레고르의 장래와 그의 가족의 장래는 이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이 자리에 누이동생이 있었으면 좋으련만! 내 동생은 현명하다. 내가 자빠져 누워 있을 때 그 애는 날 위해 울어주었다. 여자라면 오금을 못 쓰는 지배인 녀석, 내 누이의 말이면 넘어올 텐데...... 누이동생이 있으면 응접실 문을 꼭 닫고 현관에서 지배인을 붙잡아 놓고 그 놀란 가슴을 진정시켜줄 수 있을 텐데... ... 애석하게도 지금 이 자리에 그 애가 없다니.


하지만 결국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의 정체가 탄로 나고, 상사와 가족들은 경악을 금치 못한다. 상사는 허둥지둥 도망치듯 떠나고, 가족들은 그레고르를 위로해 주지는 못할 망정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심지어 아버지는 그레고르에게 불같이 화를 내며, 그를 방 안으로 밀쳐내고 격리시켜 버린다.


아버지는 지금 닥친 장애에 대해서는 생각지도 않고 괴상한 목소리를 내며 그를 앞으로 몰았다. 이미 그레고르의 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아버지의 음성이 아니었다... ...그때 아버지가 뒤에서 그를 힘차게 밀쳤다. 그의 몸은 방 안으로 밀려 들어와 엎어졌다. 문이 단장에 의해 닫혔다. 그러고 나서야 조용해졌다. 


혼자 어두운 방 안에 남겨진 그레고르. 그의 변신에 가장 태연한 것은 정작 본인인 듯하다. 그는 방을 이리저리 기어 다니며 벌레가 된 몸뚱이에 서서히 적응하는데, 자신을 '끔찍한 벌레 보듯' 대하는 가족들이 야속하기만 하다. 특히, 사랑하는 누이동생이 자신을 기피하는 모습을 보고 그레고르는 깊은 상처를 입는다.


"어쩌면 이렇게들 조용히 지낼 수 있을까!" 그레고르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눈앞의 어둠 속을 바라보았다. 이만한 잠에서 이만한 살림을 꾸려가도록 할 수 있었던 자신이 대견스러웠다. 이러한 안락과 이 행복과 이런 만족된 생활... ... 이 모든 것이 지금 끔찍스러운 종말을 고하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불길한 상상에 말려 들어가지 않으려는 듯이 그는 방 안을 이리저리 기어다녔다.


앞방에서 어느새 옷을 갈아입은 누이동생이 문을 열고 긴장한 얼굴로 방 안을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누이동생은 그레고르를 얼른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소파 밑에 있는 것을 보자 누이동생은 몹시 놀라 자제심마저 잃은 듯 문 밖으로 뛰어나가 문을 닫아버리고 말았다. 내가 이 방의 어디엔가 으레 있다는 것은 뻔한 일이 아닌가? 도대체 내가 어디로 날아가버릴 수 있단 말인가


가족들이 그레고르를 대하는 분명 부당해 보인다. 왜냐하면 그는 헌신적으로 가족들을 위해 살아온 모범적인 아들이자 듬직한 오빠였기 때문이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 근검절약하고, 회사에 충성하며 미친 듯이 일했다. 가족들이 그레고르를 환대한 것은 어떠한 정신적 유대감이나 감상적 관계가 아닌, 그의 경제력 때문이었다는 점은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당시 그레고르는 전 가족을 절망 속에 빠뜨린 파산의 쓰라림을 가족들의 뇌리에서 말끔히 씻어주려고 온갖 정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때부터 그레고르는 미친 듯이 일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는 순식간에 보잘것없는 일개 점원에서 영업 사원으로 승급했다. 영업을 맡고 있노라면 돈이 들어오는 루트가 있었고, 일한 결과가 수수료의 형식으로 그 자리에서 현금화되었다. 그 돈을 가지고 집에 돌아와 책상 위에 쏟아놓고 식구들을 깜짝 놀라게 하고 기쁘게 해주었던 나다.


가족들은 어떠한 경제활동도 하지 못하고, 밥이나 축내는 벌레로 존재하는 그레고르의 존재가 못마땅하다. 그들은 그레고르의 흔적을 말소함으로써, 자신들이 느끼는 불편한 감정을 회피하려 한다. 그레고르가 인간이었을 때 쓰던 방을 말끔히 치워버리는 것은, 결국 그를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고 그의 존재를 잊어버리겠다는 뜻이다. 그레고르는 인간이었던 흔적을 상실하는 것에 분개한다.


빈 방이 되면 자유롭게 기어 다닐 수 있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동시에 나의 인간으로서의 과거는 완전한 망각 속에 매장시키는 것이 되며 대대로 물려 내려온 가구가 놓여 있던 인간의 방을 동굴로 변화시키겠다는 심보가 아닌가? 이미 내 과거는 나의 기억에서 거의 사라지고 있지 않은가? 


그레고르는 가족들의 푸대접에 점차 강한 분노를 느낀다. 그는 나름의 방식으로 불만을 표하지만, 가족들의 냉대는 지속된다. 오히려 이들은 그레고르를 골칫덩어리로 여기고, 한 때 그레고르에게 최소한의 관심을 보였던 누이동생마저 그를 외면한다. 


나를 푸대접하는구나 하는 분노만이 그의 의식을 지배했다. 어떤 음식이 식욕을 일으킬는지는 몰라도 입맛을 돋울 음식이라도 찾아보기 위해 찬장이 있는 부엌에까지 갈 계획을 세워보기도 했다. 무슨 음식을 주면 내가 잘 먹을까를 더는 생각해보지도 않게 된 누이동생은 아침과 정오에 급히 상점으로 가기 전에 아무것이나 불쑥 발로 밀어 넣는 형편이었다. 그다음엔 내가 그 음식에 입을 댔나, 통 대지 않았나 살펴보지도 않고 바로 쓸어가 버리는 것이었다. 청소는 또 어쩌면 그렇게 쉽게 할 수 있을까? 더러운 줄이 벽에 온통 그려져 있었고 여기저기에 먼지와 쓰레기가 굴러다녔다. 처음에 그레고르는 몸짓으로나마 어느 정도 비난을 표시하려고 누이동생이 들어오는 시간에 가장 더러운 곳에 가서 앉아 있었다. 아무리 오래 그곳에 머물러 있어봤자 누이동생을 변화시키기는 어려웠다.


그레고르가 돈을 벌어오지 못하자 살림이 어려워지고, 가족들은 분주히 경제활동을 한다. 그러다 하숙을 치게 되고, 다른 사람들이 그레고르의 존재를 발견하고 불만을 표하면서, 가족들과 그레고르 사이 갈등은 폭발한다. 놀라운 것은 그동안 그레고르를 냉대하던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으리라 짐작됐던 누이동생이, 가장 적극적으로 그레고르의 추방에 앞장섰다는 점이다. 심지어 그녀는 그레고르를 오빠라고 인정하지 않으며, 자신의 비인간적인 처사를 합리화한다.


"내쫓아야 해요." 누이동생이 외쳤다. "그러는 수밖에 없어요, 아버지. 저것이 그레고르라는 생각을 버리세요. 이제껏 너무 오랫동안 그렇게 믿어왔던 것이 우리 자신의 불해잉었어요. 어째서 저것이 그레고르란 말이에요? 만일 정말 그레고르라면 사람이 저런 동물과 함께 살 수 없다는 것쯤은 벌써 알아차리고 자기 스스로 나가 버렸을 거예요


가족들에게 비참하게 버림받은 그레고르. 가족들을 위해 평생을 희생하며 살았던 그에게는 오직 외로운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다. 그는 알 수 없는 평온함을 느끼며, 결국 방 안에서 쓸쓸히 홀로 죽음을 맞는다.


사실 그는 온몸이 아팠지만, 점점 아픈 것이 가라앉고 결국 머지않아서 완전히 사라질 것 같았다. 등에 박힌 썩은 사과도 얇게 먼지가 덮인 그 주위의 염증도 느끼지 못한 지 벌써 오래되었다. 말할 수 없는 동정과 애정을 느끼며 그는 가족들을 돌이켜 생각해보았다. 자신이 없어져야 한다는 그의 생각은 누이동생의 생각보다 훨씬 더 단호했다. 교회의 탑시계가 새벽 3시를 칠 때까지 그는 내내 이런 허전하고 평화로운 명상에 잠겨 있었다. 그는 창 밖에서 세상이 환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자 그의 머리가 그도 모르게 밑으로 푹 수그러졌다. 그리고 그의 콧구멍에서는 마지막 숨이 가늘게 흘러나왔다.


그레고르의 죽음을 확인한 가족들은 마치 앓던 이를 뺀 것 같은 통쾌함을 느낀다. 이들은 마치 그레고르가 없었던 사람인 것처럼, 말끔히 그의 죽음을 망각한 채 소풍을 가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이들의 앞에는 환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그들이 이와 같이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 잠자 씨와 그의 부인은 점점 활기를 띄어가는 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최근의 온갖 고생으로 그 애의 얼굴이 다소 창백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딸이 아름답고도 탐스러운 처녀로 활짝 피어났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잠자 부부는 아무 말도 없이 시선으로 마음을 주고받으면서 앞으로 딸을 위해 좋은 신랑감을 얻어주어야 할 때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드디어 전차가 목적지에 다다랐을 때, 딸이 제일 먼저 일어나 토실토실한 젊은 육체를 쭉 펴자 그들에겐 그 모습이 마치 새로운 꿈과 아름다운 계획을 보증해주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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