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인과 현대인의 하루

바쁨의 지배 #1

바쁨은 도대체 언제부터 생긴 것일까? 바쁨이 태초부터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바쁨이 탄생한 것은 불과 최근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바쁨이 어떻게 탄생하고 변했는지 이해를 돕기 위해, 구석기시대 한반도에 살았던 어느 원시인과 그의 먼 후손인 21세기 현대인, 다음 두 사람의 하루를 비교해보자.

동굴에 빛이 조금씩 들어온다. 잠에서 깨보니 아이들은 일찌감치 일어나 잡담을 나누며 장난을 치고 있다. ‘오늘은 사냥에 성공할 수 있을까.’ 말라비틀어진 과육을 씹으면서 기필코 듬직한 들소를 잡으리라 전의를 불태운다. 고기를 못 먹은 지 벌써 삼 일째다. 삼삼오오 남자들이 짝을 지어 동굴 밖으로 나간다. 이들의 손에는 날카롭게 깎은 돌도끼가 들려 있다. 뜨거운 태양을 피해 여자들은 그늘을 따라 동굴 근처 나무에서 분주히 과일을 딴다. 아이들은 불쏘시개로 동굴에 낙서를 한다. 해가 질 무렵, 동굴 주위가 부산하다. 아이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X를 비롯한 남자들은 늠름하게 노루 세 마리를 막대에 묶어 동굴로 들어온다. 들소는 아니지만 이 정도면 훌륭한 만찬이다. 게걸스럽게 노루 고기를 먹어 치운 후, X는 모닥불 앞에 쭈그려 앉아 불을 쬐며 낮에 노루를 사냥할 때 마주쳤던 늑대를 떠올린다. 다른 남자들과 같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혼자였다면 영락없이 늑대 밥이 됐을 거라는 생각에 등골이 서늘하다. 천천히 불을 쬐고 있으니 긴장이 풀리고 불안한 마음이 없어진다. 안전한 동굴 속, 더 이상 생명을 위협하는 맹수는 없다. 아이들은 아까부터 열심히 불쏘시개로 동굴 벽에 무언가를 그리고 있다. X는 동굴 밖 별을 보며 서서히 잠에 든다.
원시인 사냥.jpg 사냥하는 원시인 (출처: Gettyimages)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원시인의 삶은 현재 지향적이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의식주와 관련된 단순한 생리적 욕구의 충족이다. 이번에는 현대인의 삶을 알아보자.

‘따르릉.’ 6시. 핸드폰 알람이 울리며 주식 중개인 Y 씨는 잠에서 깬다. 일어나자마자 반사적으로 TV 리모컨 버튼을 누르고 우적우적 시리얼을 먹는다. 화면 속 흘러나오는 지난밤 미국 증시, 연준(연방준비은행)의 금리 코멘트에 관한 뉴스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스마트폰을 쥐고 메일을 체크한다. 집 근처 역에 회사 방향 지하철이 도착하는 시간은 6시 42분. 늦지 않기 위해 부랴부랴 샤워를 끝내고 집을 나선다. 지하철 안에서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쉴 새 없이 간밤에 일어난 뉴스를 확인하다가 문득 고개를 스윽 들어본다. 이른 아침 지하철로 출근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 자거나, 화장하거나 스마트폰 보거나. 회사에 도착해서 아침 회의를 마치고,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테이크 아웃한다. 애널리스트가 쓴 보고서를 빠르게 요약해서 9시 장 시작 전 손님들에게 보낸다. ‘후우’하고 한숨 돌리려던 차에 쉴 틈도 없이 전화가 울린다. 최저 임금과 법인세 인상이 한국 기업들의 이익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문의하는 고객의 요청을 듣고, 오후까지 답을 보내주겠다고 하며 전화를 끊는다. 급하게 애널리스트에게 전화해서 의견을 물어보고 자료를 정리하다 보니 벌써 12시, 점심시간이다. 주식 중개인의 점심은 늘 배달 도시락이다. 오늘의 메뉴는 햄버거. 밥을 먹으면서도 메신저로 끊임없이 경쟁사 중개인들과 정보를 교환하고 주식시장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여기저기 바쁘게 전화를 돌리고 나니 어느새 장이 마감했다. 이제는 손님들을 만나러 갈 시간이다. 이따가 5시에 A기관 매니저를 만나고, 저녁 7시에는 신생 운용사인 B기관 CIO(Chief Investment Officer, 최고 투자책임자)와 저녁을 하기로 했다. 첫 번째 미팅을 끝내고 저녁 약속을 가는 도중에 집사람에게서 전화가 왔다. 4차 산업혁명 인재 육성반이라고 요즘 인기 있는 코딩 학원이 있는데, 아들 녀석 교육비가 더 들어갈 것 같다고 하는 것이다. ‘이런 중요한 때에 하필!’화를 참아가며 그런 일은 알아서 하라고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가만 보니 아이 교육비에 들어가는 돈만 월 백만 원이 넘네. 집 대출금 갚을 것도 아직 한참인데. 이번에 보너스 잘 안 나오면 큰일 나겠군’이라고 생각하던 중, Y는 이미 도착한 B를 발견한다. 의식적으로 얼굴 근육을 써가며 가까스로 웃음을 짓고 B에게 늦었다며 넉살을 부리고는 술을 권한다. 저녁이 끝나고 2차가 이어진 후 밤 11시경 B를 택시에 태워 보낸 뒤, Y는 담배를 한 대 피운다. 하루 중 그가 느끼는 얼마 되지 않은 여유로운 순간이다. 그 무엇으로부터 방해받지 않고 쫓기지 않는 이 해방감. 집에 가는 택시 안에서 스마트폰을 보다가 문득 캘린더에 저장된 토요일 골프 약속이 눈에 들어온다. ‘젠장, 이번 주말에는 가족끼리 바다 놀러 가기로 약속했는데. 다음으로 미뤄야겠네.’그렇게 보게 된 캘린더에서 내일, 이번 주, 이번 달, 이번 분기, 이번 해에 할 일 목록을 보니 그는 속에서부터 화가 솟는다. “왜 나는 늘 바쁘고 시간이 없는 거지!”그래도 벌써 목요일인 것에 위안을 삼으며 내일만 버티고 일요일은 하루 종일 잠만 자야겠다고 다짐하고는 택시에서 곯아떨어진다.
주식 중개인.jpg 주식 중개인의 일상 (출처: Business Insider)

X와 Y 두 사람의 이야기가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시간의 총량, 즉 하루 24시간이라는 절대적인 기준에는 변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구석기시대 원시인에 비해서 현대인이 살아가는 삶의 박자는 너무나 빠르고 가속화되어 있다. 바쁨의 관점에서 봤을 때, 원시인 X의 삶은 정글 속 노루의 삶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정글 속 노루는 늘 포식자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않고 먹이를 찾아야 하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생존과 직결된다. 하지만 노루의 삶에는 여백이 있다. 자신을 위협하는 적을 만나면 숨 가쁘게 달려서 피하고, 뛰다가 지쳐서 힘들면 개울에서 목을 축이면 그만이다. (만약 적을 따돌리고 아직 살아 있다면) 노루가 더 많은 식량을 축적하기 위해 과도하게 풀을 뜯어 숲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는가? 노루는 끼니때마다 자신이 필요한 수준의 풀을 섭취하고 맹수의 위협이 없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며 하루를 보내는 셈이다.


반면 주식 중개인 Y는 바쁨의 지배에서 자유롭지 않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에 Y는 항상 무언가를 하고 있으며, X와는 달리 바쁨은 그의 삶에 만성적이다. 물론 앞서 묘사한 주식 중개인의 삶이 평범한 직장인의 삶보다 좀 더 숨 가쁜 것이 사실이지만, 대부분의 현대인은 Y처럼 늘 시간에 쫓긴다. 바쁘지 않고 다소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시간을 낭비한다는 생각에 죄책감을 느낀다. 자학적일 정도로 자신의 삶을 가속화시키며 ‘쉬고 싶다’를 입에 달고 살지만 바쁨의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흔히 만난다. 놀라운 사실은 항상 바쁘게 사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스스로 자처하며 바쁨을 자신의 삶으로 끌어들인다는 점이다.


바쁜 사람.jpg 바쁜 현대인 (출처: iStock Photo)

시간의 절대 총량이 변하지 않았는데 왜 원시인과 현대인의 하루는 이렇게 차이 나는 것일까? 왜 원시인의 바쁨은 일시적인 반면, 현대인의 바쁨은 만성적인 것일까? 원시인과 현대인이 가진 바쁨의 성질이 다른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시간관’에서 비롯된다. 원시인의 시간관은 현재에 고정되어 있으며, 이들의 시간은 매일 같은 궤도를 회전하는 시곗바늘과 같은 형태다. 즉, 마치 시곗바늘이 1부터 12를 두 번 거쳐 다시 12에 시침이 맞춰질 때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듯, 원시인의 삶도 낮과 밤을 반복하며 매일 아침 새롭게 시작된다. 원시인은 자신의 생존이 불투명하기 때문에 미래를 딱히 걱정하지 않고 매일 원초적인 욕구에 충실하며 하루를 사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에 초점을 맞춰 사는 원시인들에게 계획을 세우거나 미래를 설계하는 일은 무의미하다. 원시인들은 약간의 바쁨을 통해 생리적 욕구를 해결하면 나머지 시간은 바쁨의 지배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하루 종일 빈둥거리고 자연을 감상하고 때때로 동굴에 벽화를 그려도, 어차피 내일이면 완전히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기에 원시인들은 미래를 걱정하지도, 게으름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는다.


반면 현대인의 시간관은 미래에 치우쳐 있다. 우리가 현재 하는 상당수의 바쁜 일은 대부분 미래를 위한 투자며 이를 위해 기꺼이 바쁨의 지배를 받아들인다. 어릴 때 분주하게 공부하는 주된 이유는 미래에 좋은 고등교육기관으로 진학해서 우수한 직업을 가지기 위함이다. 경제활동을 하는 사회인이 바쁘게 일하고 자기 계발하는 것은 불안정한 미래를 대비해 경쟁에서 밀리지 않고 충분한 부를 쌓기 위한 투자다. 즉 ‘지금 바쁘게 살면서 뭔가를 열심히 해야 미래에 보상받을 수 있어’라는 생각이 현대인의 머릿속에 지배적이며, 이러한 관념은 우리가 자발적으로 바쁨을 삶으로 끌어들이게끔 유도한다.


또한 현대인의 시간관은 마라톤 트랙처럼 길게 늘어진 직선의 개념이다. 현대인은 원시인에 비해 맹수에 잡아먹히거나 식량을 구하지 못해서 죽을 확률이 훨씬 낮다. 이처럼 삶을 꾸준히 지속할 수 있기 때문에 원시인과는 달리 미래 설계 및 계획이 가능하며 이는 바쁨의 만성화를 야기한다. 사회적 지위나 부 같은 것을 얻기 위해, 혹은 잃지 않기 위해 불안을 느끼며 어딘가 있을 결승 지점을 향해 바쁘게 달린다. 하지만 보통 이러한 경주는 평생 끝나지 않는다. 과도하게 미래에 치우쳐 계획만 세우고 바쁘게 살다가는 어느새 허무하게 삶이 끝나버릴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많은 현대인들은 이 점을 간과한다.


매일 생존의 위협에 시달리며 하루를 새롭게 시작하는 원시인과는 달리 기대 수명이 긴 현대인은, 특히나 젊어서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은 경우에는 자신의 노력과 성취 여하에 따라 인생이 바뀐다는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현대인은 자신의 인생에 보다 긴 안목을 가지고 미래에 투자한다는 생각으로 기꺼이 바쁨의 지배를 받으며 자신의 삶을 가속화시킨다. 만약 한 달 뒤에 소행성이 충돌해서 지구가 멸망한다고 가정해보자. 한 달 뒤에 꼼짝없이 죽을 운명인 것을 알았을 때 몇 명이나 지금처럼 사회적 지위 및 부를 얻기 위해 발버둥 치겠는가. 삶의 유한함을 깨달은 순간, 보통의 사람들은 남은 시간을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보내려 할 것이다. 이런 삶은 바쁨의 지배를 용인하지 않는다.


해당 내용은 도서 <사실, 바쁘게 산다고 해결되진 않아>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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