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를 길러내는 학교

바쁨의 미래 #3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는 교육을 두고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작용’이라고 정의한다. 로버트 풀검(Robert Fulghum)이 쓴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라는 책의 제목처럼,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기본적인 소양은 사실 어릴 때 배운다. 하지만 교육의 본질이 인격 성숙의 과정에서 계층 이동의 수단으로 변질되었고, 교육은 바쁨의 주된 원천이 됐다.


일반적으로 학생들은 가정에서보다 오랜 시간을 학교나 학원에서 보낸다. 상위권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그 또래들에게 주어진 일생 최대의 과제이기에, 이들은 놀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며 공부하고 바쁘게 사는 것이 미덕이라는 가르침을 받는다. 심지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교육으로 인한 바쁨이 성인들에게도 전이됐고, 이제 평생교육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일과 더불어 교육에 대한 이해는 바쁨을 고찰하는 데 필수다. 일에서 비롯될 바쁨의 양극화와 함께, 교육과 관련된 바쁨의 격차도 계층에 따라 극명하게 나뉠 것으로 생각한다.


보편적 의무교육이 시행된 것은 불과 200년에 지나지 않는다. 과거에는 체계적인 교육기관의 수가 부족했다. 또한 농경사회에서 가족 구성원이 교육을 받느라 일을 하지 못하면 이는 가계경제에 심각한 손실이었으므로 서민들은 교육에 드는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기에 교육은 선택받은 소수만 누릴 수 있는 혜택이었다. 하지만 19세기 이후, 전 세계적으로 국가 주도의 공교육 제도가 확산되는데 이는 대부분 18세기 고안된 프로이센 교육 시스템에서 비롯됐다.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패한 프로이센은 18세기 대대적인 개혁을 선언하고 국가가 주도하는 의무 교육제도를 추진한다. 프로이센 교육 시스템의 주된 목표는 국가에 충성하고 복종하는 시민을 양성하는 것이었다. 당시 상류층 자제들은 비싼 사립학교에서 다양한 학문을 배우고 사고력을 고양할 기회가 있었지만, 공립학교에 다니는 서민들은 주로 상급자에 순종하는 법을 배우며 바보가 되도록 교육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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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육의 일방적인 지식 전달과 훈육의 결과, 비판적 사고를 할 힘을 잃은 아이들은 군대에서는 상관의 명령에, 공장에서는 관리자의 지시에 고분고분 복종하는 충실한 시민으로 길러졌다. 대중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훈육하는 프로이센 교육 시스템은 미국을 비롯한 열강의 지배 계층에서 전폭적 지지를 얻었다. 따라서 이 교육시스템은 19세기 이후 전 세계로 확산됐고, 일제강점기를 거친 한국도 이러한 흐름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던 중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다시 정보화 사회로 주력 산업이 바뀌면서 노동이 세분화되고 지식노동이 확산됐다. 20세기 들어 고등교육에 대한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때 임금 소득은 노동자의 신체적 조건이 아닌 어떤 학위를 보유했는지에 따라 결정됐다. 따라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은 치열해졌고 학력은 상향 평준화됐으며 학생들이 소화해야 할 학습량은 그 어느 때보다 많아졌다. 특히나 우수하지 못한 성적을 적성이 안 맞는 것으로 여기는 서양과는 달리, 이를 본인의 노력 부족으로 탓하는 동양에서 교육으로 인한 바쁨의 심화는 더욱 두드러졌다.


게다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및 고용에 대한 불안정성이 커지면서, 학교를 졸업한 성인들까지도 평생교육에 대한 압박감에 시달리게 됐다. 무언가를 배우고 계발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으로 퍼지면서 사람들은 교육에 집착하고 ‘끝내지 못한 숙제가 남은 개운치 않은 불안감’을 안은 채 살아가게 됐다. 한국도 20세기 말 IMF로 인한 대량 실업을 경험한 이후, 그렇지 않아도 높던 교육열이 성인들에게도 확산됐다. 뒤쳐질지 모른다는 불안 속, 자기계발의 강박에 시달리며 샐러던트(salaryman+student, 공부하는 직장인)들이 늘어났고, 외국어 점수나 자격증, 대학원 학위 등 교육과 관련된 수요가 많아지며 바쁨이 증폭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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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교육에서 비롯된 바쁨의 미래는 어떨까. 장담하는 것은, 교육에 투자해서 개인이 얻을 수 있는 이득, 즉 수익률이 어느 때보다 낮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로 인한 바쁨의 강도는 심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경제적 관점에서 교육은 일종의 투자인데, 교육을 통해 얻는 기대소득이 비용(학비, 시간, 교육으로 인해 상실한 근로 기회 등)을 상회할수록 교육에 대한 투자 수익률은 매력적이 된다. 가령 과거 한국에서 대학 졸업장은 충분한 희소성을 가졌기에 부모들이 자식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허리띠 졸라매고 희생하는 것은 납득이 가는 투자였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 대학 진학률이 70퍼센트인 수준에서 대학 졸업장은 과거에 비해 희소성과 투자수익률이 현저히 떨어진다.


따라서 적성에 맞지 않는 공부를 억지로 하며 막대한 교육비를 지출하는 것은 이제는 정말 최악의 투자다. 각자가 고유의 개성과 재능이 있고 잘할 수 있는 분야가 다른데 획일적인 방향으로 교육하는 것은 끔찍한 낭비이자 모두에게 비극이다. 이는 마치 숲 속에서 나무를 타는 재주를 마음껏 발휘할 원숭이에게 바다에서 헤엄치라며 수영을 가르치는 꼴이다. 인상적인 것은 학력이 상향 평준화되어 고등 학위에 대한 희소성이 떨어지고, 기술 발전으로 고용의 파이가 쪼그라들어 교육에 대한 투자 수익률이 낮을 것을 많은 사람들이 이미 인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왜 교육에 대한 투자를 줄이지 않고, 바쁨의 기어는 빠르게 돌아가는 것일까.


우선, 공교육의 기반이 된 프로이센 교육 시스템의 망령이 한몫한다. 프로이센 교육 시스템은 국가에 묵묵히 복종하는 시민을 길러내기 위해 고안됐기 때문에 창의성과 개성은 없애야 할 바이러스로 취급한다. 따라서 지식을 일방적으로 주입하고 자유롭게 질문할 수 없는 수업 분위기 속, 우등생은 곧 가르침을 의심 없이 수용하는 순종적인 학생을 뜻한다. 가령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의 저자 이혜정 박사에 의하면, 서울대학교에서 A+ 학점을 받는 우등생은 비판적 사고와 창의성을 갖춘 학생이 아닌, 앞자리에서 녹음기 켜놓고 교수의 말을 받아 적으며 암기하는 학생일 확률이 높다. 이처럼 기존의 지식을 달달 외우는데 익숙해진 수동형 인재는 반복 숙달에 능한 인공지능에 대체되기 무척 쉽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교육기관에서는 200년 전 교육 시스템을 답습하고 있는데, 이는 컴퓨터를 쓸 시대에 주산을 가르치는 꼴이다.


이 때문에 후진적인 교육을 받은 많은 이들에게는 주체적으로 사고할 능력 및 이를 훈련할 경험이 부족하다. 이들은 일자리 경쟁에서 생존하기 위해 교육에 투자하는 것이 최선이라 굳게 믿으며, 평생 무언가를 맹목적으로 바쁘게 학습한다. 그 공부를 왜 하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은 선행되지 않는다. 다만 어떻게 하면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지 궁리하며, 정체된 질주를 하는 것이다.


투자수익률이 떨어지는 데도 교육으로 인한 바쁨이 심화되는 두 번째 이유는 교육기관에서 얻는 네트워크 때문이다. 상류층이 기를 쓰고 자녀를 비싼 사립명문학교에 보내려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바로 자녀들이 학교에서 사회적·경제적 수준이 높은 사람들과 어울려 긍정적 영향을 받을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자녀가 똑똑한 동기들과 경쟁하고, 우수한 동문들과 같은 학교를 나왔다는 동질감 및 결속력을 느끼며, 그들이 추후 사회생활을 해나가는 데 실보다 득을 얻는다면 교육에 대한 투자는 유효하다. 직장인들이 경영대학원을 가는 것도 비슷한 이치로, 이들은 교과서에서 무언가를 배운다기보다는 네트워크를 목적으로 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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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C(Massive Open Online Courses, 무료로 세계 유수 대학의 강의를 온라인으로 들을 수 있는 시스템)의 실패는 네트워크를 제공하지 않는 교육기관이 얼마나 성공적으로 자리잡기 어려운 지 보여준다. 2011년에 출시된 MOOC는 당시 교육의 혁명이라 불리며 대학에 위협을 가할 강력한 경쟁자로 여겨졌다. 하지만 MOOC의 강좌 수료율은 10퍼센트가 채 되지 않았으며, 그 이후에도 대학의 수나 등록금은 전혀 줄어들지 않고 건재했다. 미흡한 학위제도와 비싼 수업료라는 강제성의 부재, 그리고 수강자 본인의 끈기 부족 등이 실패의 원인이지만, 학생과 선생만 있을 뿐 부가적인 네트워크를 제공해주지 못한 것이 가장 큰 MOOC의 패인이라고 생각한다. 즉, 아무리 이러닝이 발달하고 교육의 투자수익률이 낮아져도 고등 교육기관에 대한 수요는 줄지 않고, 관련 비용도 증가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지식 노동을 희망하는 계층의 대다수는 더욱 많은 자원을 교육에 쏟고 이로 인해 바쁨은 심화될 것이다. 현대인에게 제2외국어가 필수과목이 되었듯, 과거에는 일부에게 요구됐던 교육과정이 점차 의무화되고, 취업이나 일을 지속하기 위해 노동자가 갖춰야 할 스펙의 눈높이는 점차 올라갈 것이다. 과거에는 대학 졸업장만 있으면 취업을 했고, 유학을 다녀오거나 외국어를 잘하면 엄청난 호사를 누렸지만, 이제는 저런 스펙의 가치를 높게 인정해주지 않고 새로운 스펙을 요구하듯이 말이다. 따라서 대다수의 사람은 호흡이 긴 지혜보다는 호흡이 짧은 지식을 재빠르게 머릿속에 꾸겨 넣으며 가속화된 삶을 살게 될 확률이 높다.


한편 교육의 강박에 사로잡혀 평생 바쁜 삶을 살 사람들과는 달리 교육에 투자할 여력이 되지 않는 계층은 바쁨의 강도가 상대적으로 약할 것이다. 이들 중 오직 선택받은 1퍼센트의 사람들만 재능과 창의성을 발휘해 교육에 투자하지 않고도 큰 소득을 벌 수 있음을 증명할 것이다. 나머지 대다수는 일본의 니트족처럼 부모 집에 얹혀살며 아르바이트와 보조금으로 생계를 지속할 확률이 높다. 이 잉여인간들이 남는 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게임을 하고 영상물을 시청하거나, 약물 혹은 가상현실을 통해 유희를 즐기는 것 정도가 될 터인데, 이는 그리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해당 내용은 도서 <사실, 바쁘게 산다고 해결되진 않아>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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