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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Mar 16. 2019

주말 오후에는 스마트폰 전원을 끄자

권태 예찬

작년에 출간한 <사실, 바쁘게 산다고 해결되진 않아> 내용을 바탕으로 <샘터> 에 기고하는 내용


아르투르 쇼펜하우어는 “인생은 욕망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와 같다”라고 말했는데, 실로 그렇다. 인간은 태어남과 동시에 권태를 선고받는다. 우리는 무언가를 욕망하고, 이를 성취하며 찰나의 만족을 느끼는 사이, 권태는 삶을 엄습하고 새로운 욕구를 만들어 낸다. 우리가 권태를 느끼는 대상은 사물이나 기호, 타인과의 관계 심지어 자기 자신이 될 수도 있다. 단언컨대 살면서 권태를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으리라. 심지어 신도 권태를 견디지 못해 인간을 창조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권태의 역사는 길다.  


권태란 무엇인가? 권태 (게으를 권 倦, 게으를 태 怠)는 곧 게으름으로, 권태와 연관된 지루함, 심심함, 단조로움, 따분함 등의 단어들은 그리 긍정적인 인상을 주진 않는다. 실제로, 권태를 경험한 사람은 참을 수 없는 심심함 속에서 어떠한 역동성 혹은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고통을 느껴본 적이 있으리라. 블레즈 파스칼도 <팡세>에서 권태에 대한 생각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열정도, 할 일도, 오락도, 집착하는 일도 없이 전적인 휴식 상태에 있는 것처럼 인간에게 참기 어려운 일은 없다. 이때 인간은 자신의 허무, 버림받음, 부족함, 예속, 무력, 공허를 느낀다. 이윽고 그의 마음 밑바닥에서 권태, 우울, 비애, 고뇌, 원망, 절망이 떠오른다”


이처럼 권태는 특유의 무기력하고 비생산적인 속성으로 인해 생산성을 최고선으로 치는 현대사회에서 다소 쓸모 없는 것으로 치부된다. 그러나 이는 명백한 오해이다. 뇌 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권태는 대단히 유용하다. 예를 들어, 뇌 과학자 마거스 라이클는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 때릴 때 뇌가 분주히 기능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그가 발견한 ‘디폴드 모드 네트워크’는 창의력이랑 연관이 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발현되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뇌의 배신>의 저자 앤드류 스마트는 쉬지 않고 무언가를 하는 것은 뇌를 혹사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가급적 자주 게으름을 피우라고 조언한다.   


문제는 스마트폰을 필수품으로 여기는 현대인은 권태를 체험할 기회를 박탈당한다는 점이다. 사용자들이 자사의 플랫폼에 오래 머무를수록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페이스북, 구글,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ICT기업들은 기를 쓰고 우리의 시선을 스마트폰으로 유도한다. 글로벌 ICT 기업들은 온갖 흥미진진한 정보를 제공해 우리의 관심을 현실 세계에서 스마트폰 속 디지털 세계로 유도하는데 성공했다. 그 결과, 우리는 스마트폰으로 검색하고 연결되고 콘텐츠를 소비하고 싶어지게끔 조건반사적으로 훈련된다. 스마트폰의 작은 스크린에 눈을 고정시킨 채 빅데이터 알고리즘이 선별한 정보를 가축처럼 섭취하는 것이다. 


나는 권태를 체험하기 위해 주말 오후에는 가급적 스마트폰 전원을 꺼놓으려고 한다. 대신 까페에서 차분하게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멍 때린다. 이 시간이 아마 내가 가장 활발하게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순간일 것이다. 아이들은 뭐가 좋아서 저렇게 웃는지, 자식 교육과 사교육비를 이야기 하는 아줌마들은 과연 아이들의 적성에 대해 얼마나 아는지, 저 아저씨는 무슨 책을 저리도 집중해서 보는지, 유니폼을 입은 점원은 일을 마치면 어디로 갈지 이런 생각들을 하다 보면 내가 속한 현실 세계와 타인의 존재가 더욱 선명해지는 기분이다. 


권태를 통해 우리는 일상에서 벗어나 사색하고 자신을 돌아보며 실존할 수 있다. 권태를 통한 사색은 권태의 주체로 하여금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러니 권태를 방해하는 스마트폰의 전원을 주말 오후만이라도 잠시 꺼보는 것은 어떨까. 깊은 심심함의 바다에 몸을 던져보자. 스마트폰의 비좁은 스크린을 보는 대신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자. 무심코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내자. 하늘을 올려다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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