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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Mar 17. 2019

자본주의의 승리와 상인의 부상

#1-4 진화하는 제국주의

근현대에 접어들어 유럽 제국이 지구를 제패한 원인을 단순히 호기심 많은 탐험가들과 과학자들의 공으로만 여겨서는 곤란하다. 이들의 도전정신과 탐구정신을 재정적으로 뒷받침해준 상인들이 없었다면 유럽 제국의 승리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유럽 상인들은 과학을 지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정치, 사회, 경제, 외교 전반에 걸쳐 광범위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제국의 성장을 이끌었다. 자본주의의 승리와 상인의 부상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유럽 제국의 아찔한 성공을 설명할 수 없다. 


주지하는 것은, 오랜 시기에 걸쳐 제국을 이끌던 지도자들은 주로 정치적, 종교적, 군사적 엘리트였다는 점이다. 귀족 가문 출신 관료, 사제, 장군이 국가의 실권을 장악해 득세하는 상황에서 상인은 설 자리가 없었다. 상인은 별 볼일 없는 계급이었다. 그러나 근대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자본주의가 발달하고 돈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지자, 상인 계급의 지위는 비약적으로 격상되었다. 상인들은 특유의 장사 수완과 금융 기법을 이용해 빠른 속도로 자본을 축적했고, ‘경제 성장은 옳다’라는 자본주의의 복음을 전파했다. 그 결과, 과거에는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천국에 가기 어려웠던 부자들은, 이제는 시민들의 존경을 받으며 경제 성장의 수레바퀴를 밀고 나가는 영웅 대접을 받았다.  


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위대한 상인들은 많다. 20세기 미국 경제의 주축이었던 에너지, 철강, 자동차 산업을 부흥시킨 존 록펠러, 헨리 포드, 앤드루 카네기에서 오늘날 실리콘 밸리 요새로 후드티를 입고 출근하는 마크 주커버그에 이르기까지. 주력 분야는 다르지만 위대한 상인들의 공통점은 모두 용의주도한 워커홀릭이고 저마다의 제국을 건설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위대한 상인들의 눈부신 성과는 금융의 선구자들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신용을 제도화시킨 은행가들이 없었다면 자본주의는 이만큼 발전하지 못했을 테고 위대한 상인들은 여전히 그저 그런 졸부 취급을 받아야 했을 것이다. 


금융의 역사에서 은행의 탄생은 인류의 역사에서 언어의 발명에 견줄만하다. 우리가 언어를 통해 사고하고 기록하고 표현할 수 있게 되었듯이, 은행의 탄생은 이자를 통해 돈에 생명을 불어넣고 사람들로 하여금 더 풍족한 미래를 상상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고객이 예치한 돈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다른 고객에게 대출해줌으로써 실제로 보유하고 있지도 않은 장부상의 돈으로 이윤을 내는 은행은 얼핏 거대한 피라미드 사기 같아 보인다. 그러나 종교와 더불어 신용은 인간의 상상력이 만들어 낸 최고의 허구 중 하나로 칭송받아야 마땅하다. 은행이 발달하기 이전, 제국의 경제 성장 동력은 주로 인구 증가와 식민지 확대였다. 그러나 은행이 제공하는 신용과 신뢰는 경제의 파이를 획기적으로 키우는 데 성공했고 자본주의가 뿌리내리는데 기여했다. 

금융의 발전과 관련해 주목할 만한 상인은 메디치 가문이다. 피렌체 제국을 장악한 메디치 가문은 교황, 왕비, 공작을 배출하고 르네상스 시대를 주도한 명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메디치 가문이 처음부터 인문, 예술, 과학을 후원하는 격조 높은 집안은 아니었다. 초창기 메디치 가문은 신뢰 가는 은행가라기보다는 환전과 고리대금업을 일삼는 조직폭력단에 가까웠다. 1343년부터 1360년 사이 메디치 가문 5명이 중죄를 짓고 사형을 선고받았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15세기 조반니 디비치 데 메디치가 가문의 적통성을 확립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것이 결실을 본 후에야, 메디치 가문은 부끄러운 과거를 세탁하고 존경받는 상인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로스차일드 가문 역시 금융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다. 오늘날까지 음모론의 단골손님으로 등장하는 로스차일드 가문은 상인의 권력이 어느 수준까지 강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결코 적지 않은 수의 사료가 금권을 장악한 로스차일드 가문과 이에 결탁한 은행가들이 근현대 유럽 제국과 세계를 조종하다시피 했다는 점을 증명한다. 예를 들어, 19세기에 출간된 <로스차일드와 유럽 국가들>에는 로스차일드 가문의 막강한 힘에 대해서 묘사되어 있다. “예전에는 로스차일드가 로스차일드가 되기 위해서 여러 국가들을 필요로 했지만, 이제 로스차일드는 국가를 필요로 하지 않는 반면, 국가는 여전히 로스차일드를 필요로 한다” 실제로 19세기 네이선 로스차일드는 경솔한 말을 남기며 로스차일드 가문에 대한 세간의 우려가 망상이 아님을 증명했다. “나는 어떤 꼭두각시가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왕좌에 앉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 대영제국의 화폐 공급을 지배하는 자가 대영제국을 지배하는 것이고, 나는 대영제국의 화폐 공급을 지배한다.” 



북저널리즘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7월에 책이 출간됩니다. 저작권 문제로 인해 내용을 일부 삭제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www.bookjournalis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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