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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Apr 05. 2019

디지털 제국의 탄생 Ⅱ (중국)

#2-4 인터넷 - 디지털 제국주의 1.0

닷컴 버블 전후, 미국의 상인들은 인터넷의 잠재력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며 실리콘 밸리에 주목했다. 그러나 당시 미국 정치인들은 인터넷 산업이나 실리콘 밸리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늘날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를 정치 소통 도구로 활용하는 것을 보면 과거 미국 정치인들이 인터넷을 선전에 활용하지 않았다는 것은 특기할 만하다. 미국에서 정치적인 목적으로 인터넷이 활용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에 발생한 일이다. 미국은 상인의 제국답게 인터넷의 정치화보다 상업화의 단계가 훨씬 빨랐다.  


반면, 중국의 인터넷 산업은 상업화가 꽃을 피우기도 전에 정치적 동기가 먼저 개입됐다. 1998년 중국에서는 인터넷을 이용한 민주당 창립 운동이 일어났다. 공산당 독재 체제에 불만을 가진 이들이 중앙 정부가 통제하기 어려운 인터넷을 통해 반기를 든 것이다. 인터넷에 위협을 느낀 공산당 수뇌부들은 정보의 대중화를 필사적으로 막아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 결과, 중국 정부는 1998년부터 외부의 정보가 새어 들어오는 것을 막는 황금 방패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방화벽을 구축하는데 막대한 자원이 투입되었고 중국 정부는 만리장성에 비유되는 ‘만리 방화벽’을 건설하는 데 성공한다. 


만리 방화벽으로 인해 중국 시민들은 자국 내에서만 기능하는 폐쇄적인 인트라넷을 사용하게 되었다. 중국 정부는 사이버 경찰들을 풀어 실시간으로 인터넷을 검열하고 체제 안정에 위협적인 콘텐츠가 발견될 시 즉각 삭제 조치를 취했다. 예를 들어, 인권, 소수민족 독립, 민주주의, 정치 시위와 같은 내용은 중국의 인터넷에서 검색되지 않는다. 마치 진시황이 분서갱유를 한 것처럼, 공산당도 중국 시민의 알 권리를 차단했고 중국의 인터넷은 감시와 통제의 수단으로 변질됐다. 대중이 똑똑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모든 독재자의 습성이다.


중국 정부의 엄격한 사이버 보안 때문에, 중국에서는 공산당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렇게 정치권력에 빌붙어 거대한 디지털 제국으로 거듭난 것이 오늘날 중국의 박쥐로 불리는 BAT (Baidu, Alibaba, Tencent)이다. 중국 정부의 비호 덕분에 BAT는 미국 디지털 제국들의 침공을 물리치고 중국의 디지털 제국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BAT가 중국 공산당과 밀접한 유착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BAT의 서버에 축적된 빅데이터는 공산당의 감시와 통제에 활용된다.


중국의 디지털 제국 BAT 중, 먼저 바이두에 대해 살펴보자. 바이두의 창업자 리예홍은 상대적으로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유학파이다. 베이징대를 졸업한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컴퓨터공학을 공부했고 금융 서비스 기업인 다우존스에서 커리어를 시작한다. 리옌홍은 검색엔진 페이지 순위를 파악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개발해 특허를 받았고 편안한 삶을 보장받았다. 그러나 그는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중국으로 돌아와 2000년 바이두를 창업했다. 바이두의 회사 로고인 곰 발바닥은 ‘어디를 가든 흔적을 남긴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구글 대비 후발주자였던 바이두에게는 항상 ‘짝퉁 구글’이라는 딱지가 따라다녔고 바이두가 구글을 역전하기는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기회는 항상 노크를 하지 않고 갑작스럽게 방문하는 법이다. 중국 공산당은 2002년 안보를 이유로 검색 사이트를 전면 차단했다. 리옌홍은 위기를 기회로 살려 전 직원을 동원해 바이두에서 중국 정부가 지정한 유해 콘텐츠를 모두 삭제했다. 그 결과, 바이두는 사이트 폐쇄 하루 만에 다시 서비스를 재개할 수 있던 반면 구글은 15일 간이나 사이트가 폐쇄되었다. 사용자들은 정보의 바다로 향하는 유일한 길목이었던 바이두로 몰려들었고 바이두는 구글과의 전쟁에서 서서히 승기를 잡게 된다.


바이두는 애국심 마케팅을 능수능란하게 활용한다. 바로 구글과 바이두의 경쟁을 미국과 중국 사이 전쟁으로 비유해, 중국인들의 민족주의를 자극하며 바이두를 어필한 것이다. 애국심에 호소한 것뿐 아니라 바이두는 중국어에 철저히 특화된 검색엔진을 만드는데 주력했고 현지화된 서비스를 내놓으며 구글과 차별화하는 데 성공했다. 자신감이 붙은 리옌홍은 야심 차게 나스닥 상장을 추진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바이두의 나스닥 상장은 중국 인터넷 산업의 저력을 미국에 자랑한 사건으로 주목받았다.


중국 정부의 인터넷 검열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바이두와는 달리, 구글은 중국 정부와 갈등을 빚기 시작했고 결국 2010년 중국 시장에서 철수했다. 중국 정부가 구글을 추방한 덕분에 바이두는 국내 검색 엔진 시장을 확실히 장악하게 되었다. 이제 명실공히 바이두는 ‘짝퉁 구글’에서 ‘중국 대표 검색 엔진’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바이두는 본업인 검색엔진을 통해 확보한 자금을 바탕으로 다양한 분야에 진출하는 데 성공했고, 오늘날 AI와 자율주행차 산업에서 손꼽히는 글로벌 선도 기업으로 거듭났다.


한편, 알리바바의 스토리 역시 흥미롭다. 평범한 영어 강사였던 마윈은 알리바바 제국을 건국해 중국 벤처신화의 전설이 되었다. 수많은 명언을 남긴 마윈은 중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손꼽히고 있다. 어릴 때부터 영어를 배우는 것에 관심이 많던 마윈은 1994년 중국 문서를 영어로 번역하는 사무소를 차렸지만 실패한다. 이때 그는 출장 차 미국을 몇 차례 오가면서 인터넷을 알게 되었고 산업의 성장성을 확신하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 중국에는 마윈의 비전에 공감하는 사람이 없었다. 마윈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회고한다. “1995년께 중국에서 인터넷 사업을 하면서 매우 외로웠다. 누구도 날 믿지 않았고, 나도 내가 뭘 말하고 있는지 몰랐다. 심지어 나는 컴퓨터 기술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몰랐다”  


마윈은 1999년 알리바바를 창업했다. 그 당시 중국의 전자 상거래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것은 미국의 이베이였다. 마윈은 알리바바는 이베이에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람들의 조소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베이는 바다의 상어다. 그러나 알리바바는 양쯔강의 악어이다. 만약에 알리바바가 바다에서 이베이와 싸운다면 지겠지만 강에서는 이긴다” 리옌홍과 마찬가지로 마윈도 중국인들의 민족주의를 자극했다. 그는 '이베이가 미국 자본가들의 회사라면 알리바바는 중국 서민들을 위한 회사이다'라는 프레임을 내세웠고 이는 중국인들의 호응을 얻었다. 중국 정부의 암묵적인 지원과 철저한 현지화 서비스 덕분에 알리바바는 중국 전자 상거래 시장을 서서히 장악했고 2007년 마침내 마윈의 비전은 실현되었다. 알리바바의 최대 라이벌이었던 이베이가 중국시장에서 철수한 것이다.


여타 디지털 제국 대비 알리바바가 뛰어난 것은 인터넷에 금융을 접목시킨 혁신성이다. 2003년 알리바바는 ‘타오바오 (C2C 전자상거래 플랫폼)’ 소비자의 결제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처음 알리페이를 도입했다. 이듬해 타오바오로부터 독립한 알리페이는 간편 결제뿐 아니라 은행, 자산관리, 보험, 신용평가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알리페이는 오늘날 세계 최대 핀테크 제국으로 우뚝 선 앤트 파이낸셜의 모태이다. 사명에서 알 수 있듯이, 앤트 파이낸셜은 서민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종합 금융 플랫폼을 지향한다. 참고로 2018년 앤트 파이낸셜의 기업가치는 1,500억 달러 (한화 약 170조 원)을 기록했는데, 이는 월가의 그 어떤 금융 공룡의 기업가치 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양쯔강의 작은 악어였던 알리바바가 이제 전 세계 전자 상거래 및 핀테크 산업을 선도하는 고래가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중국 인터넷 산업에서 텐센트를 빼놓을 수 없다. 텐센트의 창업자 마화텅은 천천히 걷는 사람이라는 뜻인 ‘만만저우 만만주’ 로 불린다. 외부활동에 적극적인 마윈과는 대조적으로 마화텅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은둔자이다. 마화텅은 공산당 간부의 아들로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 심천에서 자란 그는 첨단 기술을 빨리 접했고 인터넷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어릴 때부터 컴퓨터를 가고 놀던 마화텅은 천재 해커로 이름을 날렸다. 대학을 졸업한 후 그는 중국의 소프트웨어 회사에 취직해 경력을 쌓았다. 


1998년 마화텅은 텐센트를 창업한다. 인상적인 점은 그가 창업한 이유가 부에 대한 갈증이나 세상을 바꾸겠다는 확고한 사명감 때문이 아니라 단지 인터넷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컴퓨터 엔지니어링 기술은 천재적이었지만 사업 감각은 미숙했던 청년 마화텅은 일단 주위를 살펴보았다. 텐센트도 바이두나 알리바바와 마찬가지로 모방에서 출발한 것이다. 텐센트는 이스라엘 개발자들인 만든 메신저인 ICQ를 베껴 PC용 메신저인 QICQ를 출시했다. QICQ는 단순한 메신저에서 사이버 아바타로 진화하며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했는데 참고로 이때 마화텅이 모방한 것이 한국의 싸이월드였다.


QICQ가 표절시비에 휘말리자 텐센트는 암초에 부딪힌다. ICQ를 인수한 미국 기업 AOL이 텐센트를 상대로 낸 소송에 승소하자 막대한 배상금을 물게 된 것이다. 그러나 시련은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는 법이다. 텐센트는 QICQ를 QQ로 바꾸고 서비스를 전면적으로 개편했다. 사용자가 직관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QQ 메신저는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이때 인기를 끈 QQ메신저는 오늘날 10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매일 사용하는 위챗의 모태가 된다. 중국인은 위챗을 통해 소통하고 쇼핑하고 이동하고 금융서비스를 이용할 정도로 위챗은 중국인들 삶에 필수적인 앱이 되었다. 


초창기 중국의 인터넷 기업들은 미국의 아류라는 오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오히려 중국 기업들이 미국 기업들을 능가하는 혁신적인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 과거에는 중국 기업들이 미국 실리콘밸리의 아이디어를 훔쳤지만, 이제는 미국 기업들이 중국 기업들을 흉내 내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핀테크 산업에서는 중국 인터넷 기업들이 여타 모든 경쟁 기업들을 압도적으로 능가하는 상황이다. 나중에 자세히 서술하겠지만, 비트코인은 미국 인터넷 기업들이 핀테크 사업을 키울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북저널리즘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7월에 책이 출간됩니다. 저작권 문제로 인해 내용을 일부 삭제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www.bookjournalis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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