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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Apr 03. 2019

디지털 제국의 탄생Ⅰ(미국)

#2-3 인터넷 - 디지털 제국주의 1.0

2000년대 들어 나스닥이 폭락하자 수많은 비관론자들은 닷컴 버블을 인간의 탐욕이 낳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취급했다. 하지만 닷컴 버블은 위대한 유산을 남겼다. 닷컴 버블 덕분에 인터넷 관련 인프라가 순식간에 깔렸고 우수한 인재와 자본이 인터넷 산업으로 몰려들었다. 수많은 기업들이 시행착오를 겪고 망하는 다시 태어나는 과정에서 인터넷 산업은 앞으로 진보했다. 혁신가들이 내놓은 각종 서비스 덕분에 이제 사람들은 인터넷을 단순히 이메일을 주고받는 용도 이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닷컴 버블 이후 혁신과 성장을 거듭해 성공적으로 살아남은 인터넷 기업은 거대한 디지털 제국이 되었다. 디지털 제국의 무기는 핵폭탄이 아니라 '데이터'이다. 활용할 수 있는 빅데이터의 규모에 따라 디지털 제국의 명암이 갈린다. 따라서 디지털 제국들은 정보의 바다를 한 뼘이라도 더 차지해 더 많은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 각자의 특기를 살린 거함을 내세워 치열한 전쟁을 벌인다. 바야흐로 디지털 제국주의 시대이다. 인상적인 점은, 디지털 제국이 과거에 번성한 제국이 식민지를 지배하는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것이다. 후술 하겠지만 사람들은 인터넷을 자유롭게 사용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우리는 디지털 제국이 설계한 교묘한 알고리즘에 의해 제국의 성장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조종당한다.


오늘날 인터넷 산업은 사실상 미국과 중국이 과점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애플, 구글,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같은 강력한 디지털 제국들 덕분에 미국과 중국은 인터넷 산업을 완전히 장악해 버렸다. 사실상 미국과 중국을 제외한 국가들은 디지털 식민지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인데 앞으로도 이러한 추세는 쉽게 바뀌지 않을 것 같다. 디지털 제국주의가 발발한 배경을 알기 위해서는 역사의 시곗바늘을 닷컴 버블 때로 돌려야 한다. 2000년 전후로 미국과 중국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먼저 미국의 사례를 살펴보자. 인터넷의 대중화를 앞당긴 넷스케이프는 1995년 나스닥에 상장되면서 닷컴 버블의 포문을 열었다. 그러나 마크 앤드리슨이 야심 차게 세운 넷스케이프 제국의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당시 윈도우로 PC 소프트웨어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마이크로소프트는 웹 브라우저를 앞세워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는 넷스케이프가 거슬렸다. 마이크로소프트는 1995년에 인터넷 익스플로어를 출시하며 넷스케이프의 기세를 꺾으려 했지만 성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넷스케이프는 여전히 압도적인 웹 브라우저 점유율을 유지했고 인터넷 익스플로어의 초기 점유율은 10%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1997년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에 인터넷 익스플로어를 끼워 팔기 시작하면서 전세는 역전되었다. PC 필수 소프트웨어인 윈도우를 설치하면 자동적으로 인터넷 익스플로어가 탑재되자, 사용자들 입장에서는 굳이 넷스케이프를 설치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악랄한 수법 덕분에 인터넷 익스플로워의 점유율은 비약적으로 상승했고 넷스케이프는 웹 브라우저 왕좌에서 내려와야 했다. 당시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점적 횡포가 도마에 오르자 제국의 황제 빌 게이츠는 법정에 올라야 했다. 법원은 마이크로소프트 사업 분할을 명령했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화려한 변호인단을 꾸리고 정치인들에게 로비 자금을 살포했다.


결국 친기업 성향이 뚜렷한 부시 정권이 집권하자 마이크로소프트는 사업 분할이라는 재앙을 피하고 적당한 수준에서 타협해 소송을 매듭지을 수 있었다. 물론 사건이 종결됐을 때는 이미 마이크로소프트 최대의 적이었던 넷스케이프가 AOL에 매각된 후였다. 넷스케이프를 뭉개버린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주는 한동안 지속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인터넷은 수많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했고 관습을 깨는 혁신적인 시도가 매일 일어났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모든 분야를 세세하게 감시하고 잠재적 경쟁자를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결국 빌 게이츠는 야심 찬 도전자들이 정보의 바다에 뛰어들어 자신의 제국에 위협이 되는 새로운 디지털 제국을 건설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전자상거래를 개척한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가 대표적인 예이다. 1994년 제프 베조스가 아마존을 창업하기 전 그는 이미 D.E. 쇼 앤 컴퍼니라는 유명 헤지펀드에서 고액 연봉을 받는 은행가였다. 상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의 폭발적인 성장력을 확신한 제프 베조스는 자기 사업을 위해 과감히 퇴사를 결심한다. 제프 베조스는 지구 최대의 온라인 서점을 만들겠다는 비전을 가슴에 품고 아마존을 창업했다. 책을 파는 것에서부터 시작한 아마존은 가구, 스포츠, 게임, 의류, 여행으로 카테고리를 거침없이 확장했다.


아마존은 1997년 나스닥에 상장했는데 닷컴 버블이 꺼진 후 주가가 폭락하자 사람들은 아마존이 파산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마존의 적자 규모는 매년 확대됐고 제프 베조스가 본업인 전자상거래뿐 아니라 개발자를 위한 무료 웹 솔루션 서비스 – 이것이 나중에 아마존의 클라우드 사업 AWS가 된다 - 와 같은 ‘돈 안 되는’ 비즈니스에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또한 벌어들인 이익의 대부분을 과감하게 재투자에 사용하는 제프 베조스의 경영철학 역시 아마존의 재무제표를 위험하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파산할 것이라는 세간의 우려와는 달리 아마존은 거대한 디지털 제국으로 거듭났다. 닷컴 버블이 꺼진 이후 20년 만에 아마존의 기업가치는 1,000배 넘게 증가했고 덕분에 제프 베조스는 지구 상 가장 부유한 상인이 되었다. 아마존은 더 이상 온라인으로 물건만 파는 기업이 아니다. 아마존의 클라우드 사업 – 출시 당시에는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 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어 아마존 전체 이익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며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게다가 아마존의 알렉사는 미국 집집마다 설치되어 인공지능 스피커 시장의 선두주자로 활약하고 있다.  


세계 검색엔진을 장악한 구글 역시 디지털 제국주의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다. 스탠포드 대학원생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논문을 쓰기 위해 웹을 연구하던 중 신뢰도가 높은 페이지를 상위에 노출하는 검색 알고리즘이 유용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터넷 산업의 태동기에 등장한 검색엔진들은 일반적으로 검색자의 의도와는 거리가 먼 페이지를 중구난방으로 노출했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의 검색 알고리즘은 관련도가 높은 페이지를 선별해 검색의 정확도를 높이는 솔루션이었던 것이다.


기존의 검색엔진 시장을 혁신할 수 있겠다고 판단한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1998년 구글을 창업했다. 사명인 구글은 10의 100 제곱을 의미하는 ‘고골 (Googol)’에서 착안했는데 이는 인터넷 상의 모든 웹 페이지를 다루겠다는 비전을 뜻한다. 그러나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처음부터 구글 제국을 세울 원대한 포부를 품었던 것은 아니었다. 사업 자금이 바닥나고 뚜렷한 수익모델도 찾지 못하자, 박사학위를 끝마치고 싶었던 이들은 구글을 100만 불에 팔기로 결심한다. 특기할만한 것은, 당시 검색엔진 시장을 주름잡고 있던 야후, 알타비스타 등의 대기업들이 -알다시피 이 기업들은 모두 구글과의 경쟁에 패해 지금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 모두 구글 인수를 거부했다는 점이다. 구글 매각에 실패한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기적적으로 앤디 벡톨샤임을 만나 10만 불 수표를 받고 사업을 지속하게 되었다.


2000년대 초, 구글은 검색광고 모델을 도입해 폭발적으로 성장했는데 결코 검색엔진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았다. 구글이 2006년 16.5억 달러 (한화 약 1조 8천억 원)라는 거금을 주고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인 유튜브를 인수한 것이 그 증거이다. 유튜브는 페이팔 마피아로 불리는 채드 헐리, 스티브 첸, 조드 카림이 창업한 회사로 초기의 사업 모델은 온라인 데이팅 서비스였다. 초창기 유튜브는 조악한 품질의 영상들이 주류였고 각종 저작권 문제로 인해 법정 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마땅한 수익모델이 없고 법적인 이슈를 일으키는 골칫덩어리 유튜브를 구글이 거금을 주고 인수하자 사람들은 경영진을 비판했다. 하지만, 유튜브는 온라인 동영상 시장을 평정해 오늘날 가장 영향력 있는 미디어로 자리 잡아 구글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역사가 주는 교훈은 시대를 앞서간 선구자는 언제나 대중의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북저널리즘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7월에 책이 출간됩니다. 저작권 문제로 인해 내용을 일부 삭제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www.bookjournalis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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