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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섭 Apr 07. 2019

스마트폰 혁명

#2-5 인터넷 - 디지털 제국주의 1.0

21세기 최고의 발명품을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스마트폰을 꼽을 것이다. 스마트폰은 단순한 전자기기가 아닌 우리 삶의 일부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하루를 스마트폰 알람을 끄는 것으로 시작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끝낸다. 과거에는 PC를 사용하지 못할 때 약간의 불편을 겪을 뿐 극도로 불안해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주머니에 스마트폰이 없으면 초조해한다. 때문에 스마트폰은 마치 귀중한 신체의 일부인 양 좀처럼 우리의 곁을 떠나는 법이 없다. 우리가 수많은 의사결정을 내릴 때 스마트폰을 참고한다는 점에 기반하면, 스마트폰을 제2의 두뇌라고 불러도 무방할 듯하다.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전, 사람들은 PC가 설치된 사무실이나 가정에서만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었다. 노트북이 출시되기는 했지만 휴대하기 불편하고 활용에도 제약이 많았다. 아무리 노트북이 얇고 가벼워진다고 하더라도 화장실에서 노트북을 사용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나 스마트폰이 출시된 이후, 사람들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디지털 제국들이 스마트폰을 통해 제공하는 각종 서비스는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로 자리 잡았다. 스마트폰 덕분에 디지털 제국의 황제들은 엄청난 권력을 손에 쥐었고 더욱 큰 야망을 가지게 되었다. 스마트폰 혁명은 디지털 제국주의의 기폭제가 되었다. 


오늘날 전 세계 30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을 정도로 스마트폰은 현대인의 필수품이 되었다. 스마트폰의 대중화를 이끈 장본인은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이다. 물론 안드로이드 OS를 만든 앤디 루빈이나 아이폰의 모태가 된 뉴턴 PDA (Personal Digital Assistant)을 출시한 애플의 전 경영자 존 스컬리 역시 스마트폰의 발전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2007년 아이폰을 세상에 내놓아 스마트폰 대중화 시대를 연 스티브 잡스의 공로는 인정받아야 마땅하다. 


모든 제국은 저마다의 독특한 스토리를 가진다. 그중에서도 애플 제국과 스티브 잡스의 스토리는 마치 영화처럼 극적인 면이 있다. 시리아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난 스티브 잡스는 어렸을 때부터 컴퓨터에 관심이 많았다. 그가 십 대일 때, 고주파 측정기를 조립하던 중 부품이 부족하자 HP의 창업자인 윌리엄 휴렛에게 전화를 건 일화는 유명하다. 어린 소년의 진취성에 감명받은 윌리엄 휴렛은 스티브 잡스에게 HP에서 일해볼 것을 제안한다.  HP에서 일을 시작한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공동 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을 만나고 그와 친분을 쌓는다.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애플 제국을 세운 것은 1976년이다. 이들은 PC를 만드는 것에 주력했는데 1977년 출시한 애플 II 제품이 좋은 반응을 얻게 되면서 애플은 본격적으로 PC 대중화 시대를 선도했다. 그러나 창업 초기 기업이 시장을 선점하는 것을 대기업이 순순히 좌시할 리는 없는 법이다. 당시 거의 모든 면에서 애플을 압도하던 IBM은 1981년 IBM 5150 출시했고 PC 시장 경쟁에 불을 지핀다.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를 탑재한 합리적인 가격의 IBM 제품은 승승장구했고 애플의 PC 점유율은 곤두박질쳤다.  


사면초가에 몰린 애플은 1984년 매킨토시를 공개했다. 매킨토시는 기존의 투박한 PC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유려한 디자인의,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에 기반한 제품이었다. 이때, 매킨토시의 광고는 영화감독 리들리 스콧이 맡았는데 이 광고는 여전히 마케팅 산업 내 전설로 회자된다. 소설 <1984>에 착안한 이 광고는 한 용감한 여성이 해머를 던져 스크린 속 빅브라더를 깨부수는 내용이다. 빅브라더는 곧 IBM을 뜻하고 애플의 매킨토시 출시로 인해 1984년은 더 이상 암울한 디스토피아 1984가 아닐 것이라는 점이 광고의 메시지이다. 사람들은 애플을 신선하고 혁신적인 기업으로 여기기 시작했고 매킨토시는 소비자의 사랑을 받는 제품이 되었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에게도 시련이 찾아왔다. 독단적인 성격이었던 스티브 잡스는 그가 고용한 경영자 존 스컬리 (스티브 잡스는 펩시 경영자였던 존 스컬리를 설득하며, “설탕물이나 팔면서 남은 인생을 허비하고 싶습니까, 나와 함께 세상을 바꿔보시겠습니까?”라고 말했다)와 내분을 겪었고 그는 결국 존 스컬리를 지지한 애플 이사회에 의해 쫓겨난다. 1985년 애플을 퇴사한 스티브 잡스는 즉시 NeXT라는 기업을 창업하고 다음 해에는 루카스 필름의 그래픽 그룹을 인수한다. 이때 인수한 그룹이 토이스토리로 유명한 픽사인데 훗날 스티브 잡스는 픽사의 경영자로 취임한다. 


스티브 잡스를 쫓아낸 이후 당분간 애플은 선전하는 듯 보였다. 애플은 IBM이 놓친 틈새시장에 집중했고 확고한 2위 PC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PC 이후 1993년 존 스컬리가 내놓은 뉴턴 PDA는 실패했다. 뉴턴 PDA는 훗날 아이폰의 모태가 될 정도로 혁신적인 제품이었으나 당시에는 마땅한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에 소비자의 외면을 받았다. 결론적으로 뉴턴 PDA는 시대를 너무 앞서간 것이다. 또한, 애플이 독자적인 매킨토시 생태계를 구축하려 한 것도 패착의 원인이었다. 1990년대 PC 시장은 윈도우 소프트웨어와 인텔의 CPU가 탑재된 ‘윈텔’이 표준이었는데, 애플이 IBM의 CPU 사용을 고집하자 매킨토시는 대중적인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받은 것이다.


결국, 몰락의 길을 걷던 애플은 긴급히 스티브 잡스를 호출한다. 1996년 애플은 스티브 잡스가 창업한 NeXT를 인수하고 그를 경영 고문으로 앉힌다. 애플 제국의 황제로 화려하게 복귀한 스티브 잡스는 혁신의 기운을 불어넣는 데 성공한다. 2001년 애플이 출시한 아이팟과 이듬해 내놓은 아이튠즈가 음악산업을 근본적으로 혁신하면서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이것을 계기로 스티브 잡스의 창의성과 사업 감각은 다시 한번 인정받게 된다. 아이팟을 성공시킨 스티브 잡스는 이 제품에 휴대폰 기능을 붙이고 싶었고, 애플의 매킨토시, 아이팟, 뉴턴 PDA 등은 모두 그가 아이폰을 구상하는데 큰 영감을 주었다. 


스티브 잡스는 남들과는 다르게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좌뇌와 우뇌를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는 예술가이자 상인이요, 기술자였다. 스티브 잡스는 휴대폰에 부가 기능을 추가하는 관습에서 벗어나 전혀 새로운 제품을 내놓고 싶었다. 2000년대 초만 하더라도 휴대폰의 발전은 기존의 투박한 제품에 갖가지 기능을 추가적으로 붙이는 수준이었다. 노키아, 삼성, HP 등이 스마트폰을 표방하는 제품들을 출시하기는 했지만 그다지 주목을 끌지 못했다. 당시 사용자들은 휴대폰으로 PC 업무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오랜 구상을 마친 끝에 스티브 잡스는 결국 2007년 아이폰을 세상에 내놓는다. 지금은 전설로 남은 아이폰의 첫 발표 현장에서 그는 제품의 디자인과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강조했다. 스티브 잡스의 말대로, 아이폰의 디자인과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혁신적이었다. 아이폰은 당시 핸드폰 키보드 표준이었던 QWERTY (쿼티, PC 키보드 형태와 동일)가 아닌 정전식 터치스크린 방식을 사용했다. 게다가 아이폰은 멀티 터치 기능을 탑재해 사용자가 손가락만으로 손쉽게 조작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지금은 스마트폰 표준이 된 이 방식이 당시에는 무척 생소한 생각이었다.


아이폰이 원조 스마트폰은 아니다. 최초의 스마트폰은 IBM이 1993년 내놓은 사이먼이다. 또한, 휴대폰 시장의 제국으로 군림하던 노키아도 1996년 이후 스마트폰을 내놓았다. 그러나 기존의 스마트폰이 모두 휴대폰에 부가 기능을 추가하는 식이라면, 아이폰은 아예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닐 수 있는 PC인 셈이다. 애플은 단순히 아이폰 하드웨어뿐 아니라 2008년 앱스토어를 출시했고 모바일 소프트웨어 시장을 개척했다. 그 결과, 수많은 편리한 서비스들이 개발되었고 사용자들은 스마트폰으로 점점 더 많은 업무를 볼 수 있게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당시 휴대폰 산업의 전문가들이 아이폰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했다는 것이다. 2007년 당시, 전 세계 휴대폰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노키아 제국의 경영자는 아이폰을 장난감이라고 격하했다. 또한, 휴대폰의 아버지라 불리는 마틴 쿠퍼 박사 – 모토로라에서 일하던 그는 1973년 최초의 휴대폰을 만들었다 - 는 2009년 “모든 사람들에게 완벽한 기능을 제공하려는 만능 폰은 결국 그 어떤 것도 제대로 해내기 어렵다.”라고 발언하며 스마트폰의 대중화를 견인하던 아이폰을 비꼬았다.



북저널리즘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7월에 책이 출간됩니다. 저작권 문제로 인해 내용을 일부 삭제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www.bookjournalis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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